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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같은 맛
그레이스 M. 조 지음, 주해연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6월
평점 :
악조건도 이런 악조건이 없다. 외국인 혐오가 극심했던 시대에 워싱턴주의 삶은 전쟁 같은 맛을 넘어선 전쟁 후유증의 맛이다. 이 책은 저자인 그레이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상실의 슬픔을 글쓰기로 달래보려 시작했지만 이른 죽음을 맞이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닮은 사람들을 기리고 애도하는 데 실패한 한미 사회에 대한 정의 회복이기도 하다며 어머니를 애도하면서 온갖 꼬리표를 넘어서는 존재였던 그분의 모습을 기억하려는 개인적 여정의 일환이라고 소개했다. 이로 인해 새로운 종류의 탐구와 지식을 마주하게 되는데.
어머니가 사회적 죽음을 맞게 된 원인을 조사하던 중 혼혈 아동을 한국 국적자에서 배제하는 국가 정책과 어머니들에 대한 지독한 낙인으로 한국에서 추방당했다는 사실에 놀랐다. 인종차별이 아니라 인종 무시로 봐야 할까? 지금이야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각종 혜택을 자국민보다 더 주고 있지만, 현시대의 이런 상황이 발전이라는 말을 하기도 부끄럽다. 당연한 일을 지나온 시대의 사회적 문제와 비교해 가며 평등이나 존중이라 말하기가 죄송할 정도다. 왜 인간은 시절에 기대어 살아가는 걸까? 물론 예전보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미래의 누군가도 현시대를 어이없게 바라보는 날이 오지 않을까?
저자 그레이스는 백인 미국인 부친과 기지촌에서 일하던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뉴욕 시립 스태튼아일랜드대학 사회학, 인류학 교수이다. 모친의 조현병 발병을 경험하면서 어머니의 존재와 생애가 인생의 중대 지표가 되었다고 한다.
“진실되고 근면했던, 사랑과 고독으로 가득 차 있었던 어머니의 삶을 그려내보고자 했다. ‘타락한 여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았고, ‘정신병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이었던 어머니의 존재를 말이다.”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는 결연함과 미국에서 삶을 꾸려보겠다는 의지, 음식을 만들며 어떻게든 생존해 보려 했던 방식이 어머니의 생애를 가득 메우고 있다. 소외감과 향수병에 시달리면서도 생활력이 강한 엄마로 남은 그녀였다.
”어째서 우리 가족 말고는 아무도 엄마를 신경 쓰지 않은 걸까?“
한국전쟁, 기지촌 생활, 미국 이민과 조현병..
전쟁의 고통은 어디까지일까.. 폭력과 두려움 그리고 트라우마까지.. 죽지 못해 산다고 해야 하는 게 맞을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영웅처럼 살아낸 어머니 ‘군자’의 삶을 통해 반성해야 하는 건지 애도해야 하는 건지 복잡하지만, 시대적 배경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하면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심정이다.
전후 세대가 받는 고통은 고통 그 자체로 끝나서는 안 되며 그들이 다시 일어서기 위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들여다볼 수 있는 회고록이었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