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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지기 전에
권용석.노지향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평점 :
존재 방식이 달라진 사랑하는 사람의 흔적이 가슴 아프게 자리했지만, 곳곳에 남겨진 그의 선한 영향력은 슬픔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죽음이 구체적인 가능성으로 다가왔을 때 생각의 혼잡과 충돌로 소통의 교류가 막혀버리고, 시간의 퇴적을 들춰보는 일에 열중하게 된다. 살날은 무섭기에 지나온 시간을 후회하는 일이 심적으로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삶은 과거와 미래만 있는 게 아니다. 제일 중요한 현재를 사는 일의 외면은 죽음을 앞둔 자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다. 이 책은 다가올 죽음과 타협하며 사랑 가득한 현재를 살아가는 검사와 변호사로, 행복공장 공장장과 암 환자로 짧은 생애를 살다 간 선한 사람 권용석의 유고집이다.
수술은 잘 끝났고, 건강도 많이 회복되어 관악산을 다시 찾은 저자는 봄이 어떻게 오고 가는지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의 흐름을 깨우치는 일은 아주 단순하다. 그저 한 번 더 쳐다보고 시간을 두고 머무르면 된다. 삶을 살아내느라 바쁜 현대인은 자연이 주는 세상의 이치를 얼마나 놓치고 사는 걸까? 하지만 세상이 고정되어 있지 않고 바뀐다는 것이 다행스럽고 얼마나 기쁜지. 변화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라면, 모든 변화를 기쁘게 맞이하겠다는 저자의 말에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죽음까지 다 받아들이는 것이니. 인정에 있어 어쩔 수 없다는 결론보다 변화로 해석한다면 생의 이어짐이 더 자연스럽고 위안이 되는 것 같다.
갈등과 이혼 위기도 많았지만, 마지막 5년은 종일 붙어 지냈음에도 불편함이 전혀 없었고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만 확고히 자리 잡아 사랑이 뭔지, 살면서 할 일이 뭔지 깨달았다는 부인 노지향 님. ‘그저 사랑할 뿐’이라고 남긴 말에서 후회와 진심, 아픔이 한꺼번에 느껴졌다. 죽음 앞에 나약해지는 건 병든 몸뿐만이 아니었다. 사랑의 포용은 절대 약하거나 작은 게 아니지만 죽음이라는 예외는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모든 게 영원할 것처럼 산다. 모든 게 변하고 사라져 없어지는 당연한 진리를 외면한다. 누군가의, 무언가의 부재를 진정으로 떠올릴 수 있으면 삶이 달라질 텐데”
부재를 앞당겨 실감하는 일의 기쁨과 슬픔을 잘 안다. 존재의 소중함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최고의 사람과 마지막까지 최고의 사랑을 나누며 함께한 시간이 수놓듯 장식된 그림과 함께 차분하게 이 책에 담겨 있다. 긍정적인 삶, 죽음을 맞이하는 자세 그리고 위로를 받는 일보다 위로하는 일을 배우고 싶은 분께 권용석, 노지향의 ‘꽃 지기 전에’를 권하고 싶다.
(남편은 홍천길을 위해 더 살아낸 건 아닐까요? 눈물겨운 해피, 토리와의 재회, 그렇게 사랑하는 행복공장과 마주했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요. 잘하셨어요. 노지향 님)
컬처블룸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