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암실문고
브라이언 무어 지음, 고유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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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게도 너무나 외로운데 만족스럽다. 감정을 풍족하게 전달받는 과정에 무리가 없다. 처절하게 망가지는 열정은 시대적 배경이나 환경이 이미 만들어 놓은 수순에 따르는 결과라 외로움에 공감 한 표 던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딱 한 사람만이라도 곁에 있었으면 그녀의 열정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것이다. 브라이언 무어는 그녀를 이용해 ‘공감’을 얻어내는 데는 성공했지만, ‘거부’라는 불편함을 독자로 하여금 선택하게 한다.

『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 』
브라이언 무어 저 / 고유경 역 | 을유문화사 | 2023년 04월

외로움을 보존하는데 신이 내린 삶의 균형마저 파괴해 버린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무어는 고립을 갖추기 위해 바쁘다. 주디스 헌을 한심하게 몰아세우는가 하면 오직 그녀의 상상 속에서만 잠시의 추앙을 허락한다.

주디스는 고아로 다르시 이모의 손에 맡겨진다. 늙고 병든 이모를 헌신을 다해 간병했고, 이모의 사망 후에는 적은 금액의 연금을 받으며 살게 된다. 40대 못생긴 노처녀, 궁상맞은 피아노 선생님, 가구 딸린 좁은 셋방에서 혼자 쓸쓸히 살아가는 그녀의 유일한 낙은 주일마다 만남을 갖는 오닐 부부에게 들려줄 얘깃거리를 찾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책의 초반에는 그녀의 시선이 많은 말을 한다.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라이스 부인이 운영하는 하숙집에 머물게 되면서 얘깃거리 소재는 활기를 띤다.

『 주디스는 미소를 지으며 매든 씨가 보일 행동을 기다렸다. 몸을 돌리고 그녀를 외면하는 행동. 남자들이 그녀에게 늘 보여 주었던 행동. 하지만 매든 씨는 기분이 좋아지는 푸른색 눈으로 주디스에게 눈짓하며 몸을 숙였고, 그녀가 앉을 의자를 식탁에서 끌어내 주었다. 그는 그녀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

남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일에 익숙한 주디스는 라이스 부인의 하숙집에서 매든 씨가 보인 행동에 로맨스를 부여하며 결혼까지 갈망하지만, 타인의 시선으로 처리된 그녀를 향한 독백은 한심함을 읊어대는 데에도 노력을 섞지 않았다. 잠시 지나가는 바람보다 못한 존재감을 안겨주는 주디스에게 연민은 짜증 날 정도로 허락된다.

빛바랜 옛꿈조차 가볍게 만지작거리다 곧 놓아주어야 하는 절름발이 매든 씨, 거울에 비친 평범한 여인이 고혹적인 미인으로 탈바꿈하는 즐거운 환상 속 기나긴 밤의 죄수인 주디스. 이 둘의 가벼운 상상조차 사기꾼과 다른 사기꾼의 조합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 책의 저자 브라이언 무어. 주변인들의 시선에 의지하여 읽히는 이 소설은 아무런 노력 없이 그대로 ‘방치’하는 일에 열중한다.

『 무슨 소리야. 주디스는 술병을 바라보며 웃었다. 너도 참 고리타분한 소릴 하네. 내가 너한테 왜 미안해야 해. 그녀는 술병에게 말했다. 내가 죄책감을 느낄 이유는 하나도 없어. 왜냐하면 그 이유를 알려 준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었거든. 그래서 난 그 이유가 드러나길 기다리는 중이야. 친애하는 술병 씨, 난 지금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중이야. 벌써 새벽 5시인데도. 』

주디스 헌의 외로운 열정에 동정은 답이 아니다. 신의 존재 여부를 따지는 물음은 성심의 의심을 낳고 종교적 상실로 인한 눈앞의 현실은 주변인들의 결점으로 포장한 극도의 고립뿐이다. 나는 여기서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고아로 인해 이미 외로운 여정을 걷고 있었던 그녀는 외로움을 쌓는 일에 열중하면서도 작은 단추가 달린 길고 뾰족한 신발의 눈만이 자신을 지켜본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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