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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이는 물결 - 작가, 독자, 상상력에 대하여
어슐러 K. 르 귄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23년 2월
평점 :
“나는 남자다.”
젠더에 대해 멍청한 실수를 저질렀거나 속이는 게 아니라 했는데, 제대로 속아서 검색까지 하다니. 그러나 속은 게 아니다. 르 귄이 세 차례 전쟁을 겪으며 아이들을 키우던 시절에는 여자가 전혀 없었다. 위대한 존재 ‘어머니’를 내세웠으면 더 설득력 있었을 텐데, 픽션과 논픽션을 논하는데 ‘남자’만큼 잔소리나 안줏거리로 삼을만한 게 더 있을까. 르 귄답게 아주 잔치를 벌여 놓았다.
또한 오스틴이나 브론테는 너무 복잡했고, 울프는 자신의 시대를 너무나 앞서 있어, 여자가 아닌 남자의 모방품으로 인정하는 일이 더 쉬웠을 터. 눈밭에 소변으로 이름을 쓰지 못하는 일 빼고는 남자의 아주 한심한 모방품, 대용품임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남자가 되려고 노력한 탓에 젊음을 유지하는 법을 몽땅 잊어 늙어버렸다는 르 귄은 늙은 여자가 되어보는 것도 가치 있는 일이라며 우월성을 살짝 내비치는 걸로 자기소개를 마친다.
이게 픽션이야, 논픽션이야?
르 귄은 픽션이 논픽션으로 밀고 들어오는 최고의 통로는 자전적인 글, 회고록이나 개인적인 에세이라 한다.
“기억은 상상이다. 우리가 자신의 경험에 대해 하는 말은 모두 자신을 재창조하는 연습이다. 우리는 과거 사건, 사람, 물건, 장소, 발생 순서를 정확히 보고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도, 사실은 자신과 세상을 각색 중이다.”
뉴욕타임스 북리뷰에 실린 W.S. 디피에로의 글이다. 각색을 위해 무심코 쓰게 될 수밖에 없는 픽션은 인간이 생각이라는 걸 하는데 필수적이지 않나? 굳이 논픽션을 따진다면 그냥 24시간 CCTV를 보라고 하는 게 맞다. 내 추측과 내 의견을 담은 글이 내 글과 같아 자전적인 글쓰기는 픽션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다.
왜 소설을 읽지 않고 역사를 읽는가?
소설은 불신하는 반면 역사나 전기에는 신뢰한다. 이러한 논픽션은 사실을 관찰하고, 조직하고, 서술하고, 해석하는 작가의 능력에서 나오며 이는 전적으로 상상력에 기대고 있지만, 이때의 상상력은 창작이 아니라 관찰한 것을 서로 연결해서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이상한 오류에 르 귄은 멋지게 일침을 날린다.
“미학적인 편의, 자신의 희망 사항, 영적인 위안, 정신적 치유, 복수, 이득 등 여러 이유로 사실을 ‘창조’해 작품에 집어넣는 논픽션 작가들은 상상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배신하는 중이다.”
어슐러 K. 르 귄은 환상적이고 독특한 작품을 펼쳐내어 미국 SF 판타지 작가 협회의 그랜드 마스터로 선정되기도 한 작가이다. 이 책 ‘마음에 이는 물결’은 독자와 평단의 찬사에 힘을 싣는 열정이 담긴 에세이라 뭉클했다. 픽션의 우월성을 논픽션으로 풀어내기까지 그녀와 공모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뿌듯함을 느꼈다.
현재 우리의 삶이 과거의 픽션 덩어리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논픽션에 의지하는 일에 한 번쯤 의문을 가져보는 것도 꽤 흥미로운 일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