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 영화 한 컷과 맥주 한 모금의 만남
김효정 지음 / 싱긋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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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허기가 돌 때, 아울러 적당한 갈증까지 장착되어 있을 때 마시는 맥주는 ‘이대로 죽어도 좋다’고 요절을 선언하게 할 정도로 짜릿하다』

말이 씨가 된다지만, 맥주가 쏘아 올리는 하얀 거품과 뒤따르는 방울방울 팡팡 기포, 맥주잔을 감싸는 탁한 찬 기운이 손으로 스며들며 이어서 목을 적시는 순간! 이 기억만으로도 죽기 전에 ‘나는 참 행복했다’고 말할 것 같다. 이런 요절은 정말 소중하다. 요절의 순간을 기록하다 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을까? 저자에게 철학보다 더 큰 힘이 되는 맥주임이 틀림없다.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
영화 한 컷과 맥주 한 모금의 만남
김효정 저 | 싱긋 | 2023년

이 책은 지난 5년 동안 다닌 브루어리 중 가장 매력적이고 인상적이었던 열 곳을 선정하여 영화와 매칭했다. 영화와 브루어리에 대한 회고록을 시작으로 맥주에게 바치는 러브레터라며 편의점 맥주 네 캔 행사가 성경의 율법보다도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외칠 때는 편의점 캔맥주를 상쾌하게 따는 소리와 함께 거품이 넘칠세라 입을 갖다 대는 찐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적인 배경과 명분을 지닌 영화로운 맥줏집을 마지막 파트에서 소개하는 데 맥주의 셀렉션과 맛을 양보하지 않는 곳이니 믿고 들러봐도 좋다는 고급 정보도 남기고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브루어리와 맥줏집 목록은 엔딩 크레디트다.

『뙤약볕이 피부를 뚫을 것처럼 더운 날의 오후, 야외 노동을 마친 죄수들에게 물방울이 송긍송글 맺힌 차가운 맥주가 배달된다.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며 앤디에게 박수를 보내고, 앤디의 단짝인 레드 역시 큰 미소를 지으며 맥주 한 병을 집어 든다. (…) 누군가는 벌컥벌컥, 누군가는 홀짝홀짝 아껴 마신 스트로스 보헤미안 맥주의 맛은 어땠을까. 그 순간만큼은 다들 죄수가 아니라 멋지게 일과를 마친 노동자의 일상을 누리는 기분이지 않았을까』

원고 감옥의 탈출 같은 역할을 한 출장 중에 마신 ‘유자 페일에일’에서 이어지는 영화 <쇼생크 탈출>이다. 정말 당장 맥주를 들이켜게 할 장면이고 저자는 옆에서 맛있는 안주를 만드는 셈이다.

노매딕 브루잉과 <경마장 가는 길>을 말할 때 ‘에로틱 시네마’의 일부를 인용한 부분과 카페 구석에서 저자의 첫 책인 ‘야한 영화의 정치학’을 처음 받아 본 날 파울라너의 짜릿함이 기억에 남는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시원함과 상쾌함의 잔향이 따라다닌다. 책 표지에 한 캔, 쇼생크 탈출에서 한 캔, 극장에서 맥주 마시는 이야기에서 두 캔, ‘맥주는 간이 아니라 마음에 스미는 법’을 읽는 순간 정신 차리고 세 캔. 1664를 최애 맥주로 뽑으셨길래 마침 1664가 있어 사진 찍다가 또 한 캔. 리뷰를 쓸려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취해서 실패로 돌아갔다. 다 읽고 나면 쓴 트림만 남아 이 책이 남긴 좋은 기억을 쏟아버릴 것만 같았다. 시뻘게진 얼굴로 아주 행복해하며 책을 덮긴 했다.

맥주와 영화,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는 분(쓰고 보니 전 국민이네)이라면 강한 동지애를 느낄만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주량 높이고 싶은 분께 맥주에 진심인 김효정 영화평론가의 『보가트가 사랑할 뻔한 맥주』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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