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에드거 앨런 포 지음, 황소연 옮김 / 윌북 / 2022년 12월
평점 :
품절


“세월은… 세월은 흐를지 모르지만 그 시절은… 절대로 흐르지 않는다!”

느낌표는 점프 스케어인가.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윌북 클래식 호러 컬렉션
에드가 앨런 포 저 / 황소연 역 | 윌북(willbook) | 2022년 12월


절대 흐르지 않는 시절의 기억이 녹은 납물처럼 머릿속에 흘러 들어가 괴기하게 토해내는 작품집이다. 단편 대부분의 화자가 사이코패스 성향이 짙지만 그가 내뱉는 공포를 유발하는 문장 속에서 뭐 하나 건져내는 일이 즐겁다. 기꺼이 홀림을 당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나를 너무나 좋아했던 존재가 노골적으로 혐오감을 내비치는 것에 처음에는 슬픈 감정이 들었다. 곧 그 감정 역시 분노에 밀려났다. (…) 그 비뚤어진 반항심이 인간의 마음에 깃든 원시적 충동, 즉 인간의 성향을 결정짓는 근원적인 요인 혹은 정서라고 확신한다. (…) 이 비뚤어진 반항심은 나의 최후의 정복자였다』 - 검은 고양이


욕구의 저지와 강요의 밸런스가 맞지 않으면 이에 대한 저항심은 인간의 내면을 장악한다. 한쪽으로 기울거나 참지 못해 깨지면 극도의 반항이 생각을 지배하고 행동으로 표출된다. 인간의 잔인함을 끌어올렸던 검은 고양이는 끝내 영물의 본분을 다하고 공포감과 승리감이 반씩 섞인 소리를 내며 승리에 이르는데, 그 과정이 숨이 막혀 고요할 수밖에 없는 작품이다.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선천적이고 원초적인 원리로서 자기모순적인 것이 존재함을 인정했을 것이다. 더 정확한 명칭이 없으므로 ‘비뚤어진 성향’ 정도로 불러도 좋으리라. 사실 그것은 동기 없는 동인, 승인되지 않은 동기다. 우리는 이것에 이끌려 납득할 만한 목적 없이 행동하게 된다』 - 비뚤어진 악령


인간 성질의 사유를 끌어내는 문장이라 좋았다. 모순덩어리에 빠지다 보면 목적의 휘발은 순식간이다. 그래서 편하게 양쪽 다 인정해버리는 삶을 택한다. 모순을 즐기면 정상인이고 모순에 답답함을 느끼면 사이코패스일까? 이 작품의 화자는 사형 집행과 지옥행을 결정짓는 문장을 유독 강조하는 말투로 말이 끊길까 두려운 사람처럼 서두르면서도 또박또박 답을 마쳤다고 한다.


공포란 우리 내면의 비뚤어진 실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어둡게 포장한 조바심은 아닐는지.


“그것을 잠재우지 않으면 우리는 파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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