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평점 :
시계 소리와 키보드 소리, 불 켜진 방에 스탠드까지. 낮보다 시끄럽고 밝은 새벽이다. 최저 음역대를 갖은 악기 중 튜바가 있다. 기분이 다운될 때 튜바 연주를 듣는다. 낮은 울림이 목에 뭐가 걸린 것처럼 거슬리고 답답하지만, 분위기를 끝없이 가라앉히는데 이만한 게 없다. 분위기에 취하는 걸 좋아해서 지금, 충실하고 있다. 오늘은 한술 더 떠 호러 소설 명수가 전하는 상실의 세계를 펼쳤다. 그녀가 전하는 남편을 잃은 슬픔과 일상의 미묘한 틀어짐이 지금 분위기를 더욱 선명하게 한다. 분명 모든 게 어두워야 정상인데. 고독인지 모를 빌미로 온갖 외로운 것들을 갖추며 즐기고 있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저 / 정영희 역 | 시공사 | 2022년 12월
‘호러 소설의 명수’로 잘 알려진 고이케 마리코가 남편인 후지타 요시나가의 암 투병 기간 동안 겪은 예견된 이별에 대한 슬픔과 이어서 찾아온 이별의 아픔을 남긴 에세이집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연결되는 이별은 상실을 넘어 무너짐 그 자체다. 그녀는 스트레스를 수치화한 순위표를 살펴보며 다른 순위와 큰 격차를 벌리고 1위에 오른 항목은 ‘배우자 혹은 연인의 죽음’이라는 사실에 공감한다. 상실의 형태는 지극히 개인적이라 전부 다르고 누군가와 그 감정을 공유하기란 진정성이 뒷받침된다고 해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배우자 혹은 연인의 영원한 빈자리에서 오는 상실감에 대한 스트레스는 모두에게 압도적이다.
예전에 남편이 내동댕이쳤던 말들, 억지를 부려 화를 솟구치게 하던 말들을 이것저것 떠올려 보며 그녀는 어두운 기억의 몸집을 불려 나가다가도 눈부시게 맑은 가을날과 하늘에 별이 가득한 밤을 맞이한다.
『죽기 몇 주 전 남편이 내게 말했다. “나이 든 너를 보고 싶었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게 되니 섭섭하다.“ 들을 때는 몰랐는데 눈물 나는 이야기를 했던 거구나, 지금에서야 생각한다. 영정 속 얼굴은 거기서 시간이 멈춘 채 영원히 변치 않는다. 이제부터는 나만 나이를 먹는다』
『남편은 사장님 등에 업혀 비행기 조종실 같은 서재가 있는 작업실에 작별 인사를 하러 갔다.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그는 사장님 등에 업혀 중얼거렸고, 우리의 눈물에는 아랑곳없이, 마지막 소원이 이뤄지기라도 한 듯 꽤나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나무들은 잎을 거의 떨어트렸고 그만큼 하늘의 면적은 더 넓어졌다. 별이 깜빡이는 소리를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세상은 몹시 고요했다』
투병이 시작되면 즐기던 일상의 속삭임은 멈추게 된다. 함께 하던 평화로운 대화들은 언젠가의 추억으로 미루게 되고 더 이상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읽는 내내 행복한 시간이었다. 남겨진 것들에 대한 따듯한 묘사와 남편과도 함께한 고양이 두 마리가 아주 귀엽게 등장한다. 남의 아픔이 담긴 에세이로 행복을 느낀다는 사실에 입꼬리 위치 선점이 꽤 힘들었지만.
*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