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 현대 예술의 거장
앙투안 드 베크.세르주 투비아나 지음, 한상준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끝이 보이지 않는 바다를 향해 뛰어들 기세로 달리던 앙트완은 막상 바다 앞에 도착하자 멈춰 선다. 달리는 동안 스쳐 지나간 무언가로부터의 해방에 힘입어 뒤돌아 카메라를 응시한다. 구속과 같은 바다의 끝을 마주하지만 뒤돌아 또 다른 앞을 향해 세상과 맞설 준비가 된 앙트완. 그는 트뤼포였다.

영화 ‘400번의 구타’는 트뤼포를 널리 알린 작품이다. 영화로, 한 인간으로 이 작품만큼 트뤼포의 세계에 머물게 하는 작품은 없다.


트뤼포 : 시네필의 영원한 초상
앙투안 드 베크,세르주 투비아나 저 / 한상준 역
을유문화사 | 2022년


‘인생, 그것은 스크린이었다.‘

굴곡 많은 과거사는 훌륭한 소재거리였다. 그에게 풍요로운 원천이자 일차 자료, 일종의 이야기 보고였으며, 삶의 격렬했던 순간을 서로 연결해 주는 길잡이가 바로 영화였다. 그리고 스크린, 즉 영화관은 그의 피신처였다.


『나는 하늘을 오랫동안 쳐다보지 않는다. 나의 눈동자가 땅으로 되돌아올 때 세상은 내게 소름 끼치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에게 부모는 인간 그 이상이 아니었으며, 부모가 된 건 우연이고 타인에 지나지 않았다. 우정 또한 믿지 않았으며, 정치인이란 똑똑한 불량배라고 생각한 그의 세상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평화로운 한숨을 쉬느니, 쉴 틈 없이 직진하며 아웃포커싱 하듯 지나쳤고, 부모의 보호에서 풀려나면서 “늘 구멍 난 상태”로 자유로운 삶을 시작한다.


트뤼포는 스크린 속 여자들의 몸짓과 신체를 묘사하면서 에로틱한 페티시즘으로 채워진 표현을 멋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숙련된 시선으로 포착한 날카로운 앵글은 그의 사생활을 생각나게도 한다.

『얼굴은 속마음을 감출 수 있고, 수줍음도 거짓일 수 있고, 정조는 위장될 수 있지만, 브래지어는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적이고 은밀한 요소를 어필하면서 영화를 넘어 현실을 자극하는 그의 시선은 정말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벨 강스를 옹호하는 그의 말에서는 극도의 역설 취미를 가지고 특정 작품이 지닌 결점을 활용해 작가 정책을 설명하기도 했다. 아벨 강스는 전혀 재능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실은 재능이 그를 소유하고 있는 것이라며 실패가 곧 재능이라고 말한다. 뒤이어 완벽성과 성공 등의 표현이 비천하고 저속하고 부도덕하고 추잡한 것이라고 선언한다. 따라서 작가 정책이란 전부 이른바 “덜 중요한 영화의 역설”에 그 토대를 두며 비타협적이고도 매우 설득력 있는 비평을 이어간다.

『몇 년 전 순진무구한 스무 살의 나였다면 이 같은 영화를 통틀어 맹렬하게 비난했을 것이다. 오늘 나는 훌륭하다기보다는 영리한, 고결하다기보다는 빈틈없는, 다감하다기보다는 눈치 빠른 영화에 부분적으로나마 감탄하는 나 자신을 문득 깨닫고는 얼마간의 씁쓸함을 느낀다』

오직 자신의 비타협적인 비평만이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낼 수 있다고 여긴 걸까. 그를 잃어가는 순응적인 부딪침의 씁쓸한 말도 참 좋다.


수치스러웠을 자신의 욕망을 진정시키고, 과거 온갖 어려움을 잊도록 해준 시네필로서의 열정은 을유문화사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인 『트뤼포』에서 그의 영원한 초상은 계속 이어진다.

트뤼포의 인생을 흡수하고만 싶다. 영화에 담긴 메시지를 꺼내놓지도 못하겠다. 글로 표현하기엔 온통 감탄사로 뭉쳐진 여운이 지금 이 순간에는 언어화를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