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엣과 줄리엣 - 희곡집 에세이
한송희 지음 / 더퀘스트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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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손등이 닿거나 치마가 스친다.

“지워지지 않아.”


단순히 보고 싶다는 말로 이 둘의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뇌리에 박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작가는 표현하고 싶었나 보다. 이 한 줄을 완성해놓고 눈물을 쏟아냈다고 한다. 공포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대사가 사랑을 표현함에 있어 그 어떤 것보다 절실하게 다가오다니 신기하다. 갈망의 절정을 빈틈없이 꽉 채운 느낌이랄까. 좋다.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의 동시대 스핀오프로, ‘줄리엣과 줄리엣’ 희곡과 탄생 비하인드를 담은 묵직한 희곡집 에세이다. 이미 갓극으로 유명하여 ‘줄앤줄’ 대본집을 고가에 구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었으니, 이번 희곡집 에세이 출간은 매니아층에게 기쁜 소식이 아닐 수가 없다.


‘줄리엣과 줄리엣’ 제목을 보는 순간 스토리는 이미 내 머리 안을 가득 채웠고, 대본은 완벽하게 적중하여 신나게 읽었다. 작가가 제목을 듣는 순간 자신 있게 대본을 쓰겠다며 대박을 외치던 모습이 내가 이 책을 만났을 때 짜릿함을 느끼던 순간과 많이 닮았을 거라 믿는다.


『자신들의 사랑에 당당한 줄리엣들을 내가 이미 사랑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이 이야기가 세상에 나와야 할 가치는 충분했다. (…) 그냥 내가 사랑에 빠져버린 이야기를 꺼내놓으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누구나 예상 가능한 스토리에 혹시나 거부당하지 않을까 걱정한 작가의 마음은 공감하지만, 사랑이라는 주제는 누군가에게 눈에 띄기 마련이다. 사랑의 가치는 언제나 충분하기에 망설일 필요 없다.


『 줄리엣M : (바라보다) 니가 나의 집이야.
줄리엣C : (바라본다.)
줄리엣M : (손에 입을 맞추며) 내 울타리 (팔에 입을 맞추며) 나의 정원 (목에 입을 맞추며) 아주 따뜻한 (끌어안는) 나의 침대. 』

긴 말이 필요 없다. 충분하다.


『어둑하고 좁은 승려의 방 안에서 낯선 종교를 가지고 수행하는 이방인 앞에 선 두 줄리엣을 그려보면 그냥 그 그림이 꼭 알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두 줄리엣의 절실함이, 낯선 수행자의 포용력이, 고귀하다 느껴질 만큼 생경한 결혼식이 이 작품에 필요했다. 결혼이라는 가장 전통적인 사랑의 약속을 최대한 낯선 형태로 끌고 가는 것이 우리 주인공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이었다. 뚜렷한 개별성을 가진 이들, 각자가 가진 고유한 질감 때문에 세상과의 불화를 느끼는 이들이 함께함으로써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다』

결혼식 장면을 연습하는 날, 승려 역을 맞은 배우가 줄리엣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물이 터져버려 대사를 잇지 못하고 고개를 돌리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작가가 써 내려간 결혼식 장면을 상상하니 이해할 것 같다. 절실함을 낯선 포용력에 의지하며 외줄 타듯 행해지는 결혼식이라 불안하지만, 그 속에서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스페셜 커튼콜로 등장인물 모두가 하객으로 참여한 결혼식 장면을 연출한다. 작품 외적으로라도 줄리엣들에게 눈부시게 행복한 순간을 온전히 쥐여준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쁘면서 동시에 가슴이 아파 다른 배우들도 모두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끝이 빨개졌다고 작가는 생생하게 그때 상황을 이 책을 통해 전달한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올라 눈물이 맺힌다. 모두가 바라는 순간을 연출하기까지의 여정은 마침내 뜨겁게 목을 감싸며 환호하지만, 희곡이 낳은 또 다른 희곡으로 만족해야 하는 현실과 그녀들의 마지막을 알고 있는 한, 환호 속의 눈물은 마르지 않겠지.

“줄리엣은 변하지 않아. 그리고 줄리엣이 떠나도 내가 남아. 그 사랑을 지킨 나는 남는 거야.”

사랑은 영원하다고 믿는 항변인가. 변심을 원망하지 않고 사랑 그 자체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의지는 어디로부터 오는 걸까. 확고한 믿음인가 아니면 회상이 불러온 사랑의 힘인가.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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