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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지음, 문미선 옮김 / 북산 / 2022년 10월
평점 :
품절
취향을 쌓이게 하는 문장들이 많다. 페이지는 느리게 넘어가며, 스토리와 상관없이 오직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집중한다. 현재 나는 아무 기억도 안 난다. 하지만 왜 이렇게 마음이 충만한지 모르겠다.
『토니오 크뢰거』
토마스 만 저 / 문미선 역 | 북산 | 2022년
사랑이 찾아오는 길은 복잡하지만 반드시 심장을 건드리는 지점까지 다가온다. 사랑의 시선은 언제나 한곳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주변의 가지들을 쳐내버리는 것도 잊은채 따끔거리는 심장을 두근거림이 잠재우며 가슴의 환희만 벅차 오른다. 사랑은 그렇게 찾아온다.
『그날 저녁 그는 그녀의 모습을 가슴에 품고 돌아왔다. 굵게 땋아 내린 금발 머리, 웃고 있는 길고 파란 눈, 주근깨가 보이는 부드러운 곡선의 콧마루, 그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들었던 그 울림 때문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래서 그 하찮은 단어를 그녀가 발음했던 그 강세 그대로 흉내 내려 조용히 애써보았다. 그러자 그때, 짜릿한 전율을 느꼈다. 경험은 이것이 사랑일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그는 사랑이 많은 고뇌와 번민, 굴욕을 가져다줄 것을 알고 있었다. 더 나아가 평화를 깨뜨려 온갖 선율로 마음을 가득 채워, 형태만 대충 잡아놓은 데서 침착하게 뭔가를 온전하게 만들어내야 하는 평온을 빼앗아갈 것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사랑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사랑에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혼신을 바쳐 이 사랑을 가꾸고자 했다. 왜냐면 그는 사랑이 마음을 풍요롭고 활기차게 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침착하게 뭔가를 온전하게 만들어 내는 것보다 풍요롭고 활기찬 마음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시선을 사로잡는 이에 대한 집중된 묘사로 사랑을 얘기하고, 그의 존재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굴욕적인 모순의 교차가 그를 예술가의 길로 끌어당겼다.
오롯이 역경을 견디는 삶의 압박 속에서 좋은 작품은 탄생하고, 진정한 창작자가 되려면 죽어야 한다고 깨닫는다. 하지만 예술가가 인간이 되어 뭔가를 느끼기 시작하는 순간, 예술가로 끝장이라는 말은 쫓지 않는다. 예술가와 시민(인간) 사이의 선택에 대한 방향성은 어린 시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어쩜 그의 길은 정해져 있었는지 모른다.
『난 지금의 내가 딱 좋아. 고치고 싶지도 않고, 고칠 수도 없어. 내가 이렇듯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고집스럽게, 다른 사람들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것에 마음을 쓰고 있으니, 이런 나를 적어도 엄하게 꾸짖으며 벌을 주는 것이, 입맞춤이나 하며 음악 같은 것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보다 옳고 마땅한 일이 아닐까』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인 생각을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