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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여름
김희진 지음 / 폭스코너 / 2022년 8월
평점 :
「저와 하루 동안만 같이 있어 주시는 분께는 에르메스 트렁크는 물론, 이 안에 든 것까지 몽땅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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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 지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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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이 달라 겪어야 하는 주인공의 고통을 이해하고, 우리의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면, 세상 뒤처진 생각이다. 피부색이 다르게 태어났으면 쿨하게 인정하고, 다름으로 얻을 수 있는 자기만의 개성을 찾아 일어설 생각을 해야지, 왜 그 따가운 시선을 다 받아내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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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돌연변이인지 흑인으로 태어난 주인공 세호. 어렸을 때부터 ‘깜둥이’로 불리며 친구들과는 물론 가족과도 잘 지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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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이 되어 그가 선택한 직업은 자신의 피부색을 감출 수 있는 놀이공원 호랑이 탈 인형이다. 사람들은 웃었고 즐거워했으며,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 그래서 이 직업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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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무더운 여름, 호랑이 탈과 털옷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다른 여름을 보내리라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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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다른 여름의 시작은 쉬웠다. 돈. 그리고 다른 여름을 보낼 사람도 찾아 나선다. 된장녀와 다투고 게이에게 차이고 나서 만난 소라. 스페인어로 된 편지 번역 때문에 만나긴 했지만, 에르메스 트렁크와 거래한 하루를 승낙한다. 얼굴이 검은 자신만 억울하게 내 삶을 포기한 채 살아가는 줄 알았는데, 스페인에서 소라의 운동화 끈으로 이어진 사랑의 편지를 통해, 원하는 삶을 살수 없고 마음속에 품고만 사는 타인의 삶도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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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 트렁크, 프라다 구두, 오성급 호텔, 고급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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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똑같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거나 우월감에 빠지고 싶었던 걸까?
한없이 친절하고 어딜 가나 대접받는다는 생각에 다른 여름을 확실히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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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를 만난 후 그의 하루하루는 풍성했다. 남자도 하기 힘든 목공 일을 하며 식탁을 만드는 강인함과 다시 만난 된장녀와 맞서 싸우던 소라를 통해 작가는 세호에게 살아가는 힌트를 준 것 같다. 그리고 세호는 처음으로 타인의 삶에 가까이 다가가며, 지금껏 대접받지 못했던 자신의 삶에 작은 변화가 다가옴을 느끼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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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하루는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날을 살아내는 거다. 다르게 말하면 시작이다. 지나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매 순간 매시간마다 시작의 기회를 놓치고 사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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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의 풀린 운동화 끈을 보며 사랑을 시작하고 싶었을 세호를 생각한다. 시작하지 않으면 즉, 하루를 살아내지 않으면 사랑 또한 없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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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없지만 당신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랑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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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세호도 소라도 한 말이 아니다. 다른 여름의 승자는 이 말을 남긴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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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도서의 서평단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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