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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 앞에 선 사상가 10인의 대답
미하엘 하우스켈러 지음, 김재경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8월
평점 :
《살자》
‘왜 살아야 하는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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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음표도 마침표도 찍을 수 없어, 쉼표로 이어 갔다.
결국은 물음이 답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궁극적인 해답은 찾을 수 없는게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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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식의
찾으면 찾을수록 미로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고,
결국 읽다 보면 제자리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는 답답함에
마치 살아야 하는 이유를 없애기 위해 달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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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삶이 아닌, 죽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는 편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 보면 끝이 없어,
머리를 빠르게 좌우로 흔들며 잊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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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는 죽음에 대해 고민하던 내게,
제목 그대로 ‘왜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죽음 보다 삶을 살아내는 게 먼저라는 사실을.
이것만은 기억하자.
「삶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는가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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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의 10명의 인물 중
3명의 대답에 대한 생각을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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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어 쇼펜하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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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본질이 고통 그 자체이다.
끊임없이 갈구하다가 욕망의 부재 발생 시 행복이 찾아온다.
본질이 고통이면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니라,
끝없는 사막에서 물 한 모금 축이는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을 붙잡고 있는 건,
삶의 의지 때문이다.
달리 말하자면, 고통받지 않으려면 의지를 부정하면 된다는 뜻이다.
고통도 행복도 아무것도 원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계속해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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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존재하는 것 외에는 무엇을 바라는지도 모르는 채 하염없이 바라기만 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 세계에는 이런 사실만이 반영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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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계속해서 존재하기 위해 산다.
왜 존재해야 하는가, 고통받기 위해 존재한다.
왜 고통받아야 하는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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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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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계가 우리 존재와 조화를 이루는 곳, 우리의 집이 되기를 바라지만 세계는 이에 호응하지 않는다. ‘갑자기 환상도 빛도 사라진 세계’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이방인이자 제삼자’로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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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함 속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은
서로가 부딪치며 나아가는 싸움이기에
개인을 고독으로부터 끌어낸 반항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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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반항’한다. 고로 우리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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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반항하기 위해 산다.
왜 반항하는가, 존재하기 위해 반항한다.
왜 존재하는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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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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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하기 위해서는 파괴하기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온전히 인정한다. 신의 죽음은 인간이 스스로를 재창조할 기회를, 더 고등한 형태의 인간으로 소생할 기회를 주었다. 신의 죽음은 곧 우리 인류의 부활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 우리는 반드시 스스로 신이 됨으로써 우리에게 신을 죽이는 것을 비롯한 위대한 업적을 달성할 능력이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다시 말해 명령을 듣지 않고도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영혼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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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죽었다. (신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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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존재의 출현을 위해 낡은 존재가 소멸됨으로
인간은 재창조할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창조가 창조를 소멸함으로써
창조가 꼭 재탄생 되는 건 아니다.
재창조된 나 자신의 소멸 없이 즉, 낡음을 무시한 채
시간을 극복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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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살아야 하는가,
내가 완성한 나 자신을 찾아 삶을 되풀이하기 위해 산다.
왜 삶을 되풀이하는가,
다른 창조물에게 틈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왜 틈을 주지 않는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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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급격한 발달로 인간은 편리함을 얻었지만,
우리가 과거에 신의 뜻에 따랐듯,
우리가 심어놓은 매뉴얼에 따라 복종하고 있는
로봇을 보면 예전의 인간과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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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는가?
‘인간은 죽었다.’로 시작하는 문장의 주인공이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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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도서의 서평단으로 개인적인 생각을 성의껏 남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