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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류츠신 지음, 이현아 옮김, 고호관 감수 / 단숨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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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삼체를 통해 SF소설을 처음 접했다. 중국 문학 또한 처음 접한 것 같다. 처음이다보니 무척 설레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읽어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삼체에는 풍부한 과학적 지식이 들어있고 중국의 역사 또한 들어있다. 이 모두에 무지한 나로서는 내용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다. 판타지 소설 한 권쯤 읽는다 생각했는데 엄청난 지식을 요해서 흠칫 놀랐다. 처음 접한 SF소설에서 호되게 당했다!

 

 중국 문화 대혁명 때 아버지를 잃은 예원제는 누명을 쓰고 레이더봉에 오른다. 죄를 씻기 위해 국가 기밀 사업에 참여하게 되고, 그러던 중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알게 된다. 삼체 행성은 세 개의 태양 주위에서 불규칙하게 난세기와 항세기를 겪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결국 태양에 흡수될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우주에서 신세계를 찾고자 했고 마침 지구에서 예원제가 보낸 신호를 받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한편, 예원제는 지구의 인류가 이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잃었다고 보고 그들에게 지구를 얻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한다. 그들은 이미 지구를 향해 출발했고, 450년 뒤에 도착할 것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흥미롭다. 초, 중학교 학창시절 과학 글쓰기를 해야 할 때면 한번쯤 생각해봤음직한 이야기. '외계인이 존재한다!' 막연한 상상이 전문적인 과학 지식들과 만나 마치 실제인 것처럼 그려지고 있어 삼체를 읽는 동안 긴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거대한 이야기가 세상의 모진 풍파를 겪은 한 여인에 의해 시작된다니 계기가 너무 허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작은 계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내었는지 잘 서술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책을 읽으며 류츠신이라는 작가의 상상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난세기를 견뎌내기 위해 탈수를 하고 항세기가 오면 입수를 통해 부활하는 사람들이 가장 재미있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야기의 대부분이 너무 어려워서 읽어내기가 지루했다.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이해하지 못하는대로 넘기며 겨우 읽어낼 수 있었다. SF 장르를 좋아하고, 이 분야에 기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매우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테지만 사실 나는 흥미보다는 지루함이 더 컸다.

 

 삼체에서는 지구가 외계 생명체들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다. 자신들이 살고자 한 인류를 멸망시키려 하다니 정말 부도덕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지구가 어떤 이유에서 살기 어려워지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다른 행성으로 가야만 한다면 우리의 선택을 어떨까? 과거 우리의 모습에서 해답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또한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고 핍박하지 않았는가.

 

 삼체는 '지구의 과거' 연작의 제1부에 해당한다고 한다. 막다른 상황에 놓인 지구, 더 이상 희망이 없다고 모두 좌절하고 있을 때 스창은 왕먀오에게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앞으로 인류가 지구를 지키기 위해 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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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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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황스러웠다. 책 표지에 쓰여진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빠져들어 즐거운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도무지 이건 너무 어려운 것이다. 몇 번이나 읽고 다시 읽어봐도 이해가 잘 안되고, 이해되었다고 생각했음에도 책을 덮고나면 내가 진정 이해를 했는가 갸우뚱. 뭐랄까. 읽긴 읽었으나 정말 내가 이 책을 읽었는지 스스로 의문이 생겼을 정도? 특히나 앞부분의 <말이 태어나는 곳>에 대한 좌담이 너무 어려워서 그만 힘이 빠지고 무력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이 치열한 무력을"인가 하는 우스운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리뷰를 쓰러 들어와보니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 이 책이 어려웠나보다.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며 리뷰를 쓰기 시작한다.

 이렇게 어려운 책을 계속 읽게 했던 힘은 바로 이 책에서 나왔다. 이 책의 54페이지에서부터는 <모르는 것은 재미없다?>라는 주제로 좌담을 하는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해가 안 되'면 "더 알기 쉽게 말해!"라고 화를 낸다는 것이다. 소설이나 만화같은 경우에는 "어려운 건 재미없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는 곧 내가 모르는 것은 시시한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경우에서는 완전히 그와 반대였다. 어려운 것이 재미없기는 하지만 내가 모르기 때문에 시시해하기 보다는 자신의 무지에 조금 절망한다고나 할까? 어찌되었든 이들은 '내가 모르는 건 시시한 거야'라는 생각은 독서에 '권력욕'을 투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아-'하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료함, 시시함을 즐기는 이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고나 할까. 이 중 사사키 아타루의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사사키는 작가 호사카 가즈시의 "소설은 울음을 받아주는 엄마 품속이 아니다"라는 표현을 빌려 "예술은 아~ 하고 입을 벌리고 있으면 초콜릿을 넣어주는 할머니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얼마 전까지 꽤 오랫동안 미술관에서 일을 했었는데 매번 전시가 바뀔때마다 전시가 명쾌하게 이해되지 않아 조금 꽁해져 나중에는 아예 전시장에 잘 올라가지 않게 되었던 경험이 있다. 사사키의 말은 예술을 접하는 데 있어 마음가짐을 고치게 해주는 말이었다.

 서두에서부터 책이 너무 어렵다는 말을 계속했지만 책이 내내 어려웠던 것만은 아니다. <연애의 시작>에 대해 쓰여진 부분은 재미있기까지 했다. 나는 무교에다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신으로부터 시작한 '사랑'이 어떻게 지금의 연애가 되는지에 대한 짧막한 이야기는 무척 흥미로웠다. 신의 사랑 혹은 신에 대한 사랑만이 '진짜'고, 그 창조물인 인간끼리의 관계는 육욕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지만 트루바두르라 불리는 음유 시인들에 의해 "연애가 발명"되고 난 후, '궁정 연애'가 성립되었다는 이야기는 특히나 더 흥미로웠다. 대학에서 독일문학을 전공하고 있기에 유럽 문학에 대한 수업을 들으면 항상 처음 배우게 되는 부분이 이 궁정문학 부분이다. 대부분 기사가 귀부인을 사모하는 내용인데 그 사이에 육체적인 관계나 불미스러운(?) 일은 전혀 없다. 귀부인의 남편은 기사가 자신의 부인을 사모하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이러한 귀부인에 대한 기사의 숭고한 사랑의 모습이 흡사 신에 대한 인간의 사랑과 유사하게 느껴져 신으로부터의 사랑이 지금의 연애가 되기까지 그 변화 과정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던 것이다. 또 사사키가 연애에 관해 인용한 사카구치 안고의 『연애론』의 구절이 정말 멋있어서 몇 번을 읽었다. 참으로 공감되었다.

 

교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앞 세대가 그 때문에 실패했으므로 후세 사람은 그걸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의 교훈이 하나. 앞 세대는 그 때문에 실패했고 후세 사람도 실패할 것이 뻔하지만,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는 교훈이 또 다른 하나.

 연애는 후자에 속하는 것으로 결국은 환상이고, 영원한 연애 따위는 거짓 중의 거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하지 말라'고는 말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그것을 하지 않는다면 삶 자체가 사라지는 종류의 것이니까. 이는 "사람은 죽는다. 어차피 죽는다면 빨리 죽어라"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영원한 연애, 영원한 사랑에 대한 환상이 있는데 그것이 거짓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그것이 환상이고 거짓이라 해도 벗어날 수 없다. "사람은 죽는다. 어차피 죽는다면 빨리 죽어라"라는 말이 성립하지 않듯이 "영원한 연애란 없다. 어차피 헤어진다면 빨리 헤어져라"라는 말도 성립하지 않는거겠지?

 

 대부분이 철학을 어려워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렇다. 철학에 대해 알고 싶어서 관련된 강의를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철학이 어렵다. 때문에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책 표지의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또한 그렇기 때문에 책을 펼치기 두렵기도 했다. 이 책은 철학에 대해 지혜와 친구로 지내는 것이라 답한다. 대등한 관계에서 지배하지 않고 친구 같은 사이로. 나는 철학을 지배하려 하지 않았나, 친구처럼 일상적으로 곁에 두려하지 않고 몇몇 강의에 의지했던 것이 부끄러워졌다. 이 책은 여자들의 '철학적 의문'에 답하고 있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철학이 "언제까지 '꾸미는' 혹은 '예쁜' 나로 존재해야 할까?", "이 시대에 출산은 옳은 것일까요?", "하나도 모르겠어요", "자원봉사나 모금을 안 하는 것은 죄일까요?", "일하는 의미를 모르겠다" 등의 일상적인 질문과 만나니 참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이런 것도 철학이구나. "일하는 의미를 모르겠다"에 대한 사사키의 대답 중 일에서 '안정'이나 '자극'을 구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잘못된 게 아닐까란 부분에 대해, 일이란 개인의 삶을 영위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주어진 일들을 누군가는 해야하는 상황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정한 일에 보람을 느끼고 의미를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일은 그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직업이라는 것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니만큼 원한다면 안정이나 자극 정도는 구해도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자원봉사나 모금을 안하는 것은 죄라는 난폭한 생각에 대해서는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시아준수의 선행이 떠올랐다. 그는 캄보디아 도시빈민을 위해 주거수리 및 개선 사업을 하고 소외계층 이웃을 위한 사랑의 집짓기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고 했다. 그와 관련한 댓글에 왜 캄보디아 빈민들만 도와주느냐는 이야기는 없는 것으로 보아 그런 난폭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매우 적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이 들었다.

 사사키가 파울 첼란을 읽어보자고 하는 부분이 참 인상 깊다. 독문학도로서 이야기를 해보자면, 파울 첼란의 가족은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게 되는데 그의 부모는 수용소에서 살해당하고 첼란은 극적으로 도망쳐 나오게 된다. 그는 나치 강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모든 후유증세를 다 지니고 있었는데, 그 중의 한 가지는 '살아남은 것에 대한 죄의식'이었다. 사사키가 언급했던 '줄 서기'에서 첼란은 그가 줄을 옮기면서 그 대신 죽게 된 자에 대한 죄책감에 빠져 평생을 속죄하고자 했다. 첼란의 시는 고통을 표현하고 고통을 언어로 감당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즉, 현실에 상처를 입은 채 현실을 찾고 얻으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원전 사고로 위기를 맞은 일본인에게 파울 첼란을 추천하는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사키는 읽을 책을 고를 때 "또 읽게 될까?" 여부로 정한다고 했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책을 반복해 읽음으로써 몸에 배게 한다. 마지막으로 내게 그런 책을 당신이 만들었다고 사사키에게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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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자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34
선자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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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알음은 소희와 유치원 때부터 단짝 친구인 여중생이다. 알음은 소희의 짝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대가없이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계약자를 찾아 빈집을 들어선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계약자는 소희가 아닌 알음에게 찾아오고 알음은 계약자가 소희가 아닌 자신에게 찾아왔다는 것에 대해 묘한 희열을 느낀다. 알음이의 집은 부유했지만 한없이 다정하다 못해 남에게까지 지나치게 다정한 나머지 여자관계가 복잡한 아빠가 어디에선가 아이를 데려오게 되고, 그 아이로 인해 집안이 불행해졌다고 여긴 알음이는 계약자에게 이아이를 없애달라고 소원을 빈다. 계약이 시작된 이후, 알음은 소희가 짝사랑하게 된 신율에게 끌리며 소희에게 알 수 없는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이전에는 귀엽고 동생같은 소희를 자신이 먼저 이해하고 배려하려 했지만 이제는 소희의 행동 하나하나에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한편, 알음이는 같은 반 나비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소희는 일명 잘 나가는 무리의 대장인 셈이었다. 소희 몰래 신율과 가까워지고 나비를 쫓는 가운데 알음은 뜻하지 않게 친구를 배신하고 친구의 남자친구를 뺏은 나쁜 친구가 되어 소희와 멀어지게 되고 나비의 친구에게 협박을 당하게 된다. 나쁜 일이라는 것을, 또한 일이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저히 멈출 수 없는 알음. 그것은 계약자와의 계약이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약자의 정체는 바로 알음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던 욕망이라는 이름의 악마였다.

 알음이가 한 계약은 바로 어른이 되기 위한 계약이었다. 나보다 귀엽고 제멋대로인 소희를 더 이상 참아줄 수 없게 되었을 때 알음은 생각한다. '내가 원래 이렇게 나쁜 애였을까? 나는 원래 착한 애였는데.." 또한 나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을 때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다. 마치 어른같이 말이다. 또한 나비에게 다가가고 싶어했던 알음의 마음은 권력자의 힘에 편승하고 싶어하는 어른들의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알면서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이미 시작된 욕망은 계속 커지기만 할 뿐 스스로 제어를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욕망이 현실로 실현되었을 때, 그것이 진정 내가 원하던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미지수이다. 자그마한 욕망이 계속 자라 더이상 내 손을 떠나게 되면 스스로 욕망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내면의 욕망을 들여다보며 점점 자신만의 작품을 완성해가는 알음.

 청소년 문학이니만큼 한 인물이 욕망을 통해 어떻게 성장해나가는지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가 갑자기 끝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이야기는 아직 전개되어 가는데 페이지는 점점 줄어들어감에 따라 '아직...벌써..?'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야기가 조금 더 섬세하고 풍부하게 더 계속되어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가 무엇을 의미하고 이야기하려는지는 알겠으나 조금 부족한 느낌이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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