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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평점 :

슬라보예 지젝(왼쪽)과 이택광 교수(왼쪽)
이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유용할지는 모르겠으나 사회 전반적인 것에, 특히 미학에 세심한 통찰이 필요한 나에게 충분히 흥미로운 책이다.
경희대 교수인 저자 이택광은 얼마 전 ‘에미넌트 스칼러’(ES)로 경희대에 임용된 슬라보예 지젝을 필두로, 이미 한국에서 유명한 철학자들, 그리고 조금은 생소한 철학자들을 소개하고 인터뷰한 내용을 책으로 출간했다. 동시대를 관통하는 질문을 통해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해결책을 묻고 있었다. 나는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을 이미 조금 알고 있거나 이름은 들어봤던 사람들이라서 흥미로웠지만, 혹시라도 이 책을 인문 교양서적 정도로 읽으려고 한다면 조금 어려울 듯하다. (이 책을 읽으려면 적어도 마르크스부터 사르트르, 라캉, 푸코, 알튀세르 등의 사전지식이 있으면 훨씬 좋을 듯하다.) 특히 2차 세계대전 후나, 후기구조주의 이후에 전개되는 전 세계적인 문화, 정치, 사회, 경제, 예술의 전반적인 통찰이 없을 경우는 거의 절망적이다.
저자는 여덟 명의 철학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하기에 앞서 후기구조주의 이후에 나타난 현상과 영국,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그리고 아시아 등 각 나라별로 다른 상황들이 나타난 것을 주시하며 “철학자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약도”를 제시하고 있다. 나는 후기구조주의를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관 지어 미학적 관점에서 공부한 사람으로서, 이택광의 정치, 사회, 경제 부분에서 보는 관점은 나의 지적인 사고를 넓혀주었고 전반적으로 이해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미학적 관점에서 서술하는 방식은 이 책보다 더 어려운 내용을 제공한다...) 특히 아시아 부분에서 일본의 가라타니 고진과 중국의 왕후이를 서구의 것과 나란히 서술한 것이 흥미로웠고, “상대적으로 침묵에 빠진 한국의 지식계”를 더욱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일본인의 특수한 윤리의식을 칸트로의 회기로 제시한 가라타니 고진이라던가, 중국의 막대한 부에 불구하고 자본주의적 근대를 달성하지 못한 원인을 탐구하는 왕후이는 상당히 흥미로운 지점이었고, 지금 한국이라는 나라의 지식계에 커다란 반성을 안겨주는 씁쓸한 것 이었다. 얼마 전 읽었던 ‘사사키 아타루’를 떠올리며 이 책의 인터뷰로 넘어가는 장은 아쉬움과 함께였다고 말하겠다. (현재 사사키 아타루의 <잘라라, 기도하는 그 손을>은 미학, 철학, 사회학 등등을 연구하는 대학에서 강력하게 추천되고 있는 책 중에 하나이다.)
나는 여기서 인터뷰의 세세한 내용을 적지는 않겠다. 하지만 인터뷰에서 티격태격하면서도 모아지는 관점을 여기서 얘기하고 싶다. 일단 저자는 현재 지식계에 유행하는 자본주의에 대한 파국, 종언, 위기에 대한 의견을 각 철학자들에게 묻고 있는데 이 생각은 일맥상통한 대답으로 모아지는 경향이 있었다. 지젝은 자신의 책 <멈춰라, 생각하라>를 말하며 파국을 얘기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며 파국을 점치기에 앞서 ‘멈춰서 생각하고, 행동할 것(움직여야 한다는)’을 강조한다. 지그문트 바우만도 파국을 외치는 사람들의 ‘진위 여부에 대해 의심’하면서 ‘파산의 기회를 대체하는 새로운 시작을” 말하고 있었다. 나는 2년 전 자음과 모음에서 출판된 문강형준의 <파국의 지형학>이라는 책을 보며 지금 이 자본주의의 시대는 파국에 도래했다는 말에 강하게 동감하고 했던 차라, 이 직접적인 인터뷰가(그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로) 나를 파국에서 구해줬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나는 이 자본주의의 모순의 홍수 속에서(문강형준이 이 사회에서 읽는 파국의 지형학이) ‘지금 현재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실천적인 해답을 제시하지 않아서 두려웠었다. 특히 지젝의 현재를 대하는 방법이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의 길을 터 준 것 같았다.
그리고 저자가 공통적으로 질문했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와 ‘영국 폭동’, 아랍 혁명, ‘촛불 시위’ 등의 일련의 사건들을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해서 물었던 답변들도 각기 달랐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지젝이 사이먼 크리츨리의 <무한하게 요구하기>를 “자유주의적인 아나키즘”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해 크리츨리의 답변이 그러했는데, 크리츨리는 이러한 시위를 아나키스트적인 것으로 판단하며 훨씬 복잡하고 민주적인 운동이었다고 지젝을 되려 비판했다. (이 부분에서 크리츨리의 <무한하게 요구하기>에 흥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꼭 읽어봐야겠다!)
또 다른 저자의 공통된 질문은 SNS에 대한 생각이었는데 이 부분에서는 거의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것 같았다. 바우만의 아직 알 수 없다는 생각과, 랑시에르의 SNS를 도구로 보는 관점, 지젝의 SNS의 양가적인 속성을 강조하는 것, 가야트리 스피박의 ‘누가 그걸 이용하는 가가 관건’이라는 생각은 SNS 자체가 현재 어떤 현상을 말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고, 그것을 사용하고 이용하는 사례자체가 더욱 중요한 듯이 보였다. 새로운 기술은 그 시대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을 만큼 강력한 것이어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아직 시기상조라는 일맥상통한 의견이었다. 이보다 훨씬 앞선 발터 벤야민의 기계, 기술이 이 세상에 얼만큼 변혁을 줄 것인지에 대한 통찰력은 가히 놀라울 만큼 우리 현실에 적용되고 있는데, 나는 이 SNS를 기계만큼이나 우리 세상을 다시 한 번 전환점의 계기로 이끌 것이라고 감히 말해본다. 물론 그게 어떤 현상을 초래할지는 아직 모르지만(이런 점에서 시기상조라는 말은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그게 파국이든,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위한 도구이든, 무척 궁금한 것은 사실이다.
이 책에는 이 질문 말고도 다시 한 번 이 시대에서 새롭게 해석되는 ‘알튀세르’의 효과라든지, 푸코의 권력 이론에 반하는 입장이라든지 여러 흥미로운 지점이 교차하면서 후기구조주의에 머물러 있었던 나의 뇌를 더 넓혀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야말로 생동이 넘치는 인터뷰는 나에게 ‘라이브’ 그 자체로 다가왔다.
피터 싱어 이후로부터 인터뷰한(사이먼 크리츨리, 그렉 렘버트, 알베르토 토스카노, 제이슨 바커) 철학자, 문화비평가들은 나에게 좀 생소했지만(그리고 저 위의 질문보다는 현재 자신의 철학 이념을 소개하는 질문과 답변으로 마무리 지어졌지만) 이 철학자들이 5년 후(너무 시기를 늦게 잡은 것인가란 생각도 해본다...2년? 1년?..아님 몇 개월?)엔 또다시 나에게 지젝과 랑시에르 책처럼 다시 한 번 나의 손에 쥐어져 읽혀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기의 순간을 사는 우리들에게 이 책의 제목 ‘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는 사실 망설여지는 상당히 위험해 보이는 그런 말이다. 오늘날의 ‘실패’라는 단어는 우리 모두 다 두려워하는, 마치 세상이 끝난 것처럼 다시 회복되지 않을 깊은 상처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다시 더 낫게’라는 점이다. 철학에서 실패는 철학이 있는 이유와도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철학은 실패에 대한 사유”인 것이다. 지금 우리가 대학 강단에서, 책에서 배우는 철학은 실패를 거듭한 후 얻은 결과물이다. “철학은 또다시 실패할지언정 다시 시도하기를 요청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금 우리는 ‘다시 더 낫게 실패’해도 괜찮다.
마지막으로 저자에게 바라는 것은 몇 년 후에 다시 한 번 이 철학자들과의 인터뷰를 속편처럼 출판해 주길 바라는 것과, 알랭 바디우와 더불어 가라타니 고진이나, 왕후이, 사사키 아타루 등 (우리나라의 지식계에서도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시아의 철학자의 인터뷰도 성사시켜 출판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이런 철학자들의 직접적인 목소리를 듣기란 사실 어려운 일이므로(책에서 접하지 않는 이상, 한국에 오는 강연으로는 턱없이 부족하지 않은가..) 저자의 통찰력 있는 질문을 통해 현 시대의 실천적인 방안이 가득담긴 또 다른 책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