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시의 낙서 입문
기타노 다케시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사실 기타노 다케시의 팬은 아니다. 나에게 그는 '하나비', '자토이치' 등의 작품을 만든 영화감독일 뿐이고 사실 그 작품들을 봤는지


안 봤는지조차 불분명하다. 내가 왜 이 책을 보고 싶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전문화가가 아닌 사람이 그림을 그렸다니 얼마나 잘했나 보자'


같은 호기심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읽은 감상은... 굉장히 만족스럽다. 


 책 제목부터 '그림 입문'이 아니라 '낙서 입문'이다. 거창한 예술활동이 아니라는 점이 직구로 뻥 꽂힌다. 작가 스스로 '화장실 낙서'로 


얘기할만큼 자유롭고 격식 없이 맘껏 그린 그림들이 등장한다. 초반부를 시큰둥하게 보던 중 '아이의 시점에서 본 잠자리의 얼굴을 그린 


그림'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저런 발상도 가능하구나'하는 생각이었다. '푸른 하늘을 나는 범고래', '최초의 풍경' 등의 그림도 발상이 


독특해서 기억에 남는다. 


 천수관음이 천 개의 손으로 온갖 놀이를 한다는 다소 발칙한 상상에서 출발한 그림들도 재미있었고 꽃으로 완성시키는 동물꽃병의


발상도 재미있었다.  


 전문화가가 아니어서인지 스킬에서 예술성을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전문화가가 아니어서인지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분방하고 독특한


냄새가 난다. 말 그대로 화장실 한 구석에 그려져 있는 춘화같은 느낌의 그림도 있고 키치 분위기도 있고. 보자마자 웃겨서 키득키득하게


만드는 것들도 있어 심심할 때 보기에도 좋다. 보는 사람 기분까지 처지게 만드는 좀 어두운 부분 이런 건 전혀 없었다.


 이 책이 좋은 점은 작가가 자기 작품을 직접 해설하는 형식이라는 것이다. 수백년 전 명화를 읽으려면 굉장히 많은 것을 배우고 익혀야


한다. 신화와 당시 사회분위기, 역사적 사건 등. 그런데 이렇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작가가 자신의 작품세계를 설명해주는 책이라니 얼마나 


시원한가. 그림을 보며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것도 나름의 재미지만 작가가 실제로 어떤 착상을 통해 작품을 시작했는지 그 표현은 어떤


식이었는지 말해주는 텍스트와 함께 그림을 보니 재미가 쏠쏠했다. '사실 실수해서 이딴 표현이 나왔다' 같은 거칠것없이 솔직담백한 


얘기까지 나온다. 


 엄숙한 예술이 아닌, 때로는 애들 장난같은 자유로운 예술을 만날 수 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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