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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 시 정본 해설
이숭원 지음 / 휴먼앤북스(Human&Books) / 2008년 7월
평점 :
'교과서에 시가 없었으면......' 이런 가정을 해보고 싶다.
교과서에 시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시에 밑줄긋고 형광펜을 집어 들고 마구 시어를 난도질하고 했다. 어떤 시가 나오든지 시를 기계적으로 분석하기 바빴다. 낱낱의 시어들로 쪼개놓고 다시 어떤 의미로 구성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시험에 나오는 문제와 연관된 부분만을 천편일률적으로 해석해 단어장의 적힌 영어 단어를 외우듯이 빼곡히 머리에 채우기 급급했다. 그런 교과서의 시에는 어떤 울림도 없었으며 그저 어려운 시험 문제를 위한 내 삶과는 유리된 이질적인 지식 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시교육을 통해서 시를 읽고 눈물 흘릴 마음이 어디에 있겠는가? 이보다 더 폭력적인 시 교육이 어디에 있겠는가?
교과서에 수록된 언어의 정수를 만나며 학생들은 외워야만 하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 해석보다는 암기를 해야만 하는 시들을 만난다. 시의 형식, 수사법, 주제를 빡빡이 하듯이 차곡차곡 외워 채우기 바쁜 현실이다. 학교 교육을 받는 동안 어떤 선생님도 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주는 시간을 선물해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이런 시 교육의 현실에서 문학 소녀의 눈물과 문학 청년의 꿈은 또 다른 해석을 낳지 않는 냉혹한 교실에서 철저하게 생매장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척박한 땅에 단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바로 '교과서 시 정본해설'이란 책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한 마디가 아닌가 싶다.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듯, 궤도를 이탈한 비행기가 정상궤도를 찾듯, 그렇게 시심을 잃어버리고 시를 내 삶을 이해하기 위한 한 척도로 해석해보는 경험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새로운 시 탐방지도를 그릴 수 있는 여행길을 선사해주는 책이다.
시마다 말이 있고 시마다 삶이 있다. 그리고 시마다 웃음과 눈물이 있다. 시에는 마음이 있다. 아직 잊혀지지 않은 한 마디 마음이 있는 것이 바로 시다. 그런 마음 한 마디를 끊어 내어 다른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시다. 그것이 내 삶일지 또 다른 사람의 삶일지 그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서로의 마음을 읽으며 그 해석의 경험을 통해 새롭게 세상을 보고 그 세상을 구성하는 수많은 대상들과 대화할 수 있음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만나는 시는 이런 삶을 볼 수 있는 해석들로 가득하다. 이 시를 이렇게도 읽을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도대체 어떻게 공부를 하면 시를 이렇게 읽을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교과서를 통해 시를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아무리 공부를 못하고 국어 시간에 졸았더라도 김소월의 '진달래꽃'은 안다. 이육사의 '광야'도, 만해의 '님의 침묵'도 안다. 하지만 그 시들이 내게 주는 의미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이 교과서가 가르친 시의 맛이었다. 그런 하나의 맛은 우리의 혀를 마비시키기에는 더할 나위 없는 음식이었다. 그런 감각 잃음의 교육에 한 마디 외침을 던져주는 책이 바로 교과서 시 정본 해설이다.
마음은 말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이 책을 읽으며 잃어버렸던 가슴을 찾고 그 가슴에 품었던 소년, 소녀 시절의 꿈을 찾아보자. 정말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에 깃들어 있는 우리들의 마음을 낚시질 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의미 있는 새로운 시들을 하나씩 마음에 채웠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