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황선미 지음, 봉현 그림 / 사계절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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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시름시름 앓는다. 혹시 아버지가 죽게 되면 어쩌나. 아이의 불안과 공포가 책 속에 밝은 그림에 대비되어 한참을 서성거린다. 엄마가 없는 10살 소년에게 아버지는 세상의 전부다. 아버지가 죽으면 모든 게 다 끝이다. 갈 곳도 없고 영원히 혼자가 되는 것이다. 어떠한 배려나 동의, 예고도 없이 세상은 불친절하게 돌아갈 것이고 어린 소년의 감정 따위는 어느 누구에게도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인생 초기인 12세 이전에 애착의 고통이 생기게 되면 뇌의 배선이 정상적이지 못하게 형성된다고 한다. 아마도 강 노인이 어린 상훈의 한마디에 자존심이 바닥까지 무너져 버릴 수 있었던 것도, 집밖에 울타리를 치고서 아무도 들여보내지 않았던 것도, 5년간의 짧은 기억을 평생 안고 살다가 다시 옛집으로 돌아온 것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 아버지와 아프게 헤어진 고통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진실이 오롯이 진실일 수 있는 확률. 개나리 덤불처럼 엉킨 강 노인의 오해와 착각이 하나하나 풀려가고 송이 할머니와 유리, 장영감과 미호, 피엘과 그의 아버지를 함께 어우를 수 있는 개발계획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마치 내 일이라도 되는 냥 신이 났다.

나도 100번지 버찌고개 마을에서 그들과 함께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미호의 엄마도 되주고, 창식씨 말벗도 되주고, 닭들이 여기저기 낳아놓은 달걀을 모아서 유리엄마 반찬도 해주고, 송이 할머니를 도와 텃밭도 가꾸고 앵두 효소도 만들고 상호가 잔디를 잘 깎는지 감시도 해주고 그러면서 말이다.

황선미 작가의 바닥을 알 수 없는 우물과 차마 끊어내지 못하는 두레박줄, 목까지 차올라 삼켜지지 않는 외로움이 강 노인과 장영감에게, 송이할머니에게, 상훈이에게, 피엘의 아버지에게 겹겹이 묻어난다.

쉬려고 머문 낯선 땅 오스트리아 빈에서 무심코 본 의자 하나에 고향집 아버지의 기울어진 의자를 떠올리고, 한 달 만에 탄생시켰다는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글 쓰는 일이 일상이라는 그녀의 따뜻한 감성과 섬세함이 너무 부러워서 눈물도 나고, 한숨도 나고 오래된 나의 아버지 기억도 난다. 오늘 밤에는 모두 잠이 들 때를 기다려 책방 구석 먼지 쌓인 앨범을 뒤적여 아버지 사진을 꺼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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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선미 2015-03-05 2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맙습니다. 섬세한 분이시네요. 독자의 작품후기에 처음으로 글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