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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노니는 집 - 제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보름달문고 30
이영서 지음, 김동성 그림 / 문학동네 / 2009년 1월
평점 :
두 페이지를 가득 채운 아름다운 그림이 마음에 와 닿는다.
복숭아 꽃, 오얏꽃 피어있는 낙산의 도리원 누각의 동서남북 기둥에는 제 등이 걸렸고,
두둥실 뜬 보름달은 오얏꽃잎을 눈부시도록 환하게 비추고 있다.
말수 적은 선비 몇 명과 기생들, 장이와 만배, 낙심이, 최서쾌, 손직장, 허궁제비, 청지기, 홍교리, 부엌에서 일하는 아낙들, 나무 져다 주고 물 길어 주는 일꾼들이 모두 모여, 흥부가 마침내 부자가 되어 잘 먹고 잘 살았다는 전기수(傳奇叟)의 이야기에 온 통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평생 일 안하고 해주는 밥 먹으며 글만 파는 양반들도, 예닐곱만 넘어도 물동이를 지고 나무를 하며 제 몫의 노동을 하고도 굶는 날이 허다했던 서민들도, 거드름 피우며 돈 좀 모은 장사치들도, 여인으로 태어난 것, 천하게 태어난 것이 원망스러운 기생들도 이날 밤만큼은 자신의 신분, 타인의 신분을 잊었을 것이다.
내일 아침 일어나 해야 할 일도, 당장의 먹고 사는 애로사항도, 불투명한 미래도 모두 잊고서 같은 공간에서 흥부전이라는 문화를 함께 공유하고 있다.
장이 아버지 같은 상놈은 큰 잘못 없어도 재수 없으면 끌려가 매질당할 수 있는 양반 세상은 온전한 세상이 아니었다. 기존의 철저한 유교 중심의 사회에서 백정이건 망나니건 세상 모든 사람들은 다 똑같이 귀하고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천주학은 당시로서는 청천벽력과 같은 이론이었을 것이다. 가혹한 탄압 속에서도 장이 주변의 인물들이 결국 이루고자 꿈꾸었던 것은 바로 그날 밤, 도리원의 누각과 같은 세상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