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아 거울아
그레고리 머과이어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과거의 기억, 욕망, 그리고 그 너머의 '현재의 시간'

 

 

읽은지는 좀 됐는데 글을 계속 쓰기는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면서도 참 뭐라 말하기가 어려운 경우가 있기도 합니다. 이 책도 그런 경우라 해야겠군요.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거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아주 힘든 일이 있은 뒤라 무언가 이것저것 미쳐서 할 일이 필요했는데 마침 이 책을 보게 된 것도 그 중에 한가지였거든요. 그리고 빨리 서평 하나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아이디어 정리까지 했는데... 이후로 이것저것 할일이 더 있기도 했고 무언가 착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기도 했구요.

 

애초에 이 책의 독서는 착각으로 시작했답니다. 애초에 보르지아 집안 사람들의 이야기 정도가 아닐까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으니까요. 책을 시작하면서 나오는 시라고 할지... 아니면 뭐라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왠지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이야기들인 듯 하기도 했구요. 물론 그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냥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나오는 인물들과 여자아이가 자라가는 과정에서 있게될 일들에 대한 것이더군요. 한마디로 착각의 연속이었던 거죠.

 

그건 그렇고...

 

오늘 넘기면 또 한주 동안 글쓰기가 어려울 듯한 느낌이 들어 후딱 써버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리곤 이런 생각을 해 보는거죠. 이 책이 백설공주라는 동화를 재구성한 형태의 이야기라는 것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테니까 별달리 줄거리를 이야기 한다던가 하는 것은 멍청한 일일테니 그냥 약간은 다른 이야기를 해 본다면 어떨까. 다시 고백합니다만 이 책을 반 이상 읽기 전까지도 이게 백설공주 이야기라는걸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답니다. 당연히 '머과이어'라는 작가가 어떤 소설가인지도 알지 못했구요. 별 관심이 없었다는게 정답이겠죠. 어쨌든 책을 읽다보면 하얗다는 뜻의 비앙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백설공주, 계모 역을 맡은 루크레치아 보르지아, 멍청한 거위소년이었지만 동시에 왕자가 되기도 하는 미첼로토, 사냥꾼, 일곱인지 아니면 여덟인지 알기 어려운 (돌)난장이들 등등 아주 정겨울 정도로 친숙한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소설의 줄거리를 다시 이야기 한다던가 하면서 남들과 똑같은 이야기로 그냥 시간을 보낸다는 건 재미없는 일이겠죠. 그래서 거울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마침 소설 제목이 '거울아 거울아'이기도 하군요. 그만큼이나 이 거울이란 물건이 이야기 전체에서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반증이겠죠.

 

참 그 전에 'Se non e vero, e ben trovato' 라고 쓰는게 맞다는군요. 어떤 말인지 알아보려고 구글에 찾아봤더니 이탈리아 속담이라는군요. '사실은 아니지만, 좋은 이야기' 정도로 번역이 된다구 하구요. 참 위키피디아가 좋기는 좋군요. 이런 속담도 들어있고... 하여간 이 이야기를 보고도 왜 이런 이야기를 해 놨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거든요.

 

그럼 제대로 거울 이야기를 좀 해볼까요? 이 거울이 발견된 것은 베르데 호수에서였죠. 비첸테 나바로(비앙카의 아버지) 이 거울을 호수 바닥에서 찾아서 자신의 성으로 가져다 둡니다. 이 거울은 원래 이야기에 나오는 돌난장이들이 만든 물건이었는데 이들이 분실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계모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누군지를 물어보는 용도로 쓰였다가, 이후에 비앙카가 죽고 돌난장이들이 거울을 다시 가져왔을 때 거울에서 생기(또는 수은, quickness와 quicksilver는 서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죠)가 빠져버린 후에는 비앙카의 관뚜껑이 되기도 하구요. (사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잘 기억도 못하고 그냥 거울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려고 했는데 블로그 이웃 중에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해 주시더군요. 그래서 찾아보기도 했답니다. 여하튼...)

 

우리가 거울이란 것을 떠올릴 때 어떤 생각들을 하게 될까요? 우리는 거울을 볼 때 스스로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자신의 모습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일종의 왜곡된 형상이죠. 생각해 보자면 거울에 비친 상은 언제나 거꾸로 뒤집어지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매일 아침 화장실에 가서 이빨 딱으며 보게되는, 혹은 화장대 앞에서 보게 되는 거울, 아니면 지하철 유리에 비치는 자신의 상은 일종의 타인의 형상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걸 우리 자신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게 되는거죠. 그리고 그 타인에게 어쩌면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게 된다는 것이죠.

 

루크레치아가 거울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인지도 모르겠군요. 결국 그녀의 환상은 자신의 미모를 영원히 유지하고자 하는, 언제까지라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로 남고 싶은 그런 것이니까요. 자신의 오빠이자, 정인이었고, 가문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체사레가 매독으로 죽어버린 이후 그녀에게 남은 것이라곤 몬테피오레라는 작은 영지였습니다 (적어도 소설에서는). 그런 상황에서 자신의 미모는 그래도 손에 남아있는 마지막 욕망의 대상이었던 것이겠죠. 하지만 시간이 감에 따라 언젠가는 사라져 버릴 봄눈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에 있던 거울에 바로 그 욕망에 대상을 반영하게 되는 것이죠.

 

물론 이 이야기의 세계는 현실이 아니라 허구입니다. 재구성을 했지만 결국 동화속의 세상이기도 하고, 또 'Se non e vero, e ben trovato'라는 속담이 말해주는 것 만큼이나 허구적인 세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과거의 현재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해 볼 숟 있겠죠. 그러나 여전히 그 허구 속에도 과거와 현재의 구분은 있습니다. 재밌는 것은 거울을 만들었던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 돌난장이들이라는 것입니다. 돌난장이들은 현재가 아니라 영원의 시간에, 다시 말해 과거의 기억 속에 속한 존재들이죠. 돌난장이들은 무언가를 훔치지 못합니다. 단지 인간만이 그럴 수 있을 뿐이죠. 하지만 이들의 훔치지 못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잠시 되새겨 보면, 그것은 단순히 무엇을 훔치는 '행위'가 아니라 '행위' 자체에 대한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행위는 바로 현재에 속합니다. 그리고 돌난장이들의 무능력은 바로 이들이 과거에 속한다는 반증이 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가 무언가를 비추어 본다면 무엇에 비추어 보게 될까요? 당연히 과거입니다. 현재나 미래에 비추어볼 수는 없습니다. 과거의 기억만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죠.  돌난장이들의 생기quickness나 거울에 발라져 있던 수은quicksilver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거울이 '이들 과거에 속한 자들'에 의해 만들어 졌으며, 그것도 그들의 생기를 머금어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계모(루크레치아)의 욕망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죠. 과거에 자신이 누렸던 것들은 이미 다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루크레치아의 욕망의 대상이 되는 자신의 미모라는 것은 미래 보다는 현재에, 또 현재 보다는 과거에 오히려 더 높을 수 밖에 없는 것이었죠. 당연히 그녀의 욕망은 과거를 향합니다. 그리고 '과거에 속한 자들'의 생기로 만들어진 거울에 비추어진 것이죠. 바로 거기서 그녀는 자신의 욕망을 반영하기 위한 대상, 이제 덜자란 '새끼 오리'의 모습을 벗어나 백조와 같은 아름다움의 정점에 들어서고 있는 비앙카(백설공주)를 찾게 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욕망의 투영이란 파괴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밖에 없는 것이었죠. 욕망의 대상이 죽어야 자신의 욕망(미모의 보존)이 달성되는 것이었으니까요.

 

그러나 비앙카(백설공주)의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나버리지는 않습니다. 세월은 무심결에 몇년이 흘렀을지도 모르지만 비앙카는 돌난장이들이 비앙카의 권유로 가져왔던 거울에, 돌난장이들의 생기, 과거의 시간이 응축되어 반짝이던 수은이 빠져버려 투명한 관뚜껑으로 덮인 상태에서, 그대로 자는 것과 같이 보존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왕자님 또는 거위소년 미첼로토가 아니라 사냥꾼 라누치오에게서 키스를 받고 깨어난 것이죠. 수은이 빠져버린 거울은 더 이상 비추는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단지 투명하게 반대편에 있는 것을 보여주게 되는 것이죠. 이 편에서 보고싶어 하는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거울 아니 유리판의 반대편에 있는 진정한 형상을 말이죠.

 

그 때 시간은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마지막 장인 '몬테피오레'에 나오는 비앙카의 시각은 바로 이런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죠. 모든 것이 마치 '거울에 비추어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대면하여 보게' 되는 것과 같이 말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더 이상 계모의 욕망과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히지 않은 현재의 시간에 서서, 거울 아니 유리판의 저편에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모든 것은 과거와 같을지 모르지만 더 이상 과거와 같지 않습니다. 인간은 과거의 기억을 안고 살아가지만 과거의 기억을 넘어서 미래에서 오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성으로 가득한 현재의 시간을 살아갑니다.

 

꽤 재미있는 소설을 보고나서도 약간은 심각한 이야기를 하고 글을 맺게 되는군요. 일단 여기까지가 이 책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쨌든 꽤 즐거운 독서였고 마침 뭔가 할일이 필요한 판에 그런 일을 만들어준 소설이라는 의미에서는 고맙기까지 하군요. 무엇보다 백설공주라는 고전적인 동화에서 이런 여러가지 표상들을 끄집어 낸 머과이어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좋은 이야기를 읽게되어서 참 다행이군요.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좀 더 읽어보고 싶군요. 이런 형태의 재구성들. 시간이 되려나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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