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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프 - 술의 과학 사소한 이야기
아담 로저스 지음, 강석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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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

어느 영화에서 '친구'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술(알코올)만큼 인류가 오랫동안 곁에 두고 가깝게 사귐을 가진 벗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 술은 인류에게 있어 오랜 벗이다.

이 책의 저자 아담 로저스는 우리의 오랜 벗인 술을 다각적으로 (특히나 과학적으로) 살펴본다. 그 구성의 본질, 그 바탕의 원료, 그 미묘한 변화, 그 향기와 맛,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풍미까지 속속들이 탐구한다. 심지어 그 친구()의 종류에 따른 독특한 취향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 친구와의 사귐이 가져올 수 있는 우리 몸의 변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사귐의 방법과 밀도가 우리의 생활(을 넘어서 삶)의 패러다임이 전환 될 수 있음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부부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떤 부분은 부부끼리도 서로 전혀 모르기도 한다. 완벽한 이해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그 완벽한 오해! 저자는 인류와 술의 관계가 마치 그런 부부 관계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특히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숙취'를 겪지만, 숙취에 대한 정의조차 최근에 합의되었고, 숙취에 관한 것은 아직 인류가 거의 모른다고 고백한다.) 그런 것처럼 이 책은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고 열광해 온 이 술이라는 친구의 은밀하고, 신비에 감춰진 모습을 과학적이고 분석적이면서도 때로는 유쾌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술이라는 친구에 대해 알아 갈수록 우리는 인류의 조상에 대해 알게 되고(역사학, 문화인류학), 신이 창조한 자연의 신비를 알게 되며(계통분류학), 몸 속(특히, )에서 일어나는 매커니즘(분자생물학, 생화학 및 신경과학)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게 된다.

이처럼 술은 인류의 역사다. 지금도 계속 진행되는 인류의 역사다. 역사일 뿐만 아니라 문화, 정치, 경제, 종교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독특한 역할을 맡아 각각의 본질을 미묘하게 변화시킨다. 술을 생성이 효모라는 생명체에서 시작된 것처럼 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지금도 인간을 움직이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효모를 통한 술의 생성이 효모가 인류를 '길들여 가는 과정'이라고 언급한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속 여우와 어린 왕자의 관계처럼 술과 인간은 서로를 친구 삼고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길들여왔다. 그리고 책은 그 길들임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 미묘한 변화의 결을 상사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과학책이기에 용어 자체가 조금은 딱딱하다. 하지만, 그 딱딱한 단어를 담아내는 작가의 어투는 결코 딱딱하지 않다. 좋은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며 허허허~ 농담을 건네는 것처럼 작가는 독자에게 유쾌하게 말을 건넨다. 작가는 '자칫 남용될 수 있는 합법적 약물'인 술(에탄올)을 모습을 보여줌에 있어서, 다양하게도 다루지만 결코 얄팍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과학적인 지식을 너무 깊게 다뤄서 조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마치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넘나드는 헤르메스(Hermes)의 두 얼굴을 가진 술.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그 벗이 지닌 카멜레온 같은 모습을 낱낱이 발가벗겨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실용적이면서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의 내용 조차도 그 친구()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방대하고, 깊으며,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이 친구()의 진면모를 아직 정확하게 모르기에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호기심이 생긴다.

친구 관계가 늘 그렇듯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약간의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인간을 먹어서 (효모가 당을 에탄올로 변화시키듯) 사람을 개()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변화가 발생한다. 술은 달콤한 유혹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도 달콤한 유혹이다. 가까이 할수록 가까이 다가오는 술이라는 친구를 혀의 맛과 몸의 취함과 뇌의 두통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과 과학적 사실과 명확한 논리의 틀 안에서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마치 술을 마신 뒤의 숙취처럼 머리를 아프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분 좋게 한 잔 걸쳤을 때의 쾌감과 흥겨움도 선사한다. 술이 가진 두 얼굴처럼 이 책도 두 얼굴이다. 고통을 이겨내고, 술의 과학이 선물하는 한 잔의 흥겨움을 마셔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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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일 잘한 일
박금선 지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 / 샨티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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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일에는 굳건한 용기 한 움큼과 단호한 결단 한 주먹이 필요하다. 한 움큼과 한 주먹이라고 해서 그것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모두 던져 넣는 존재론적 결단이 필요하다. 익숙한 항구에서 벗어나서 바다로 나가는 일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한 움큼의 용기가 없어서 아직 항구에 정박해 있는 우리네 인생들이 여전히 많은 현실이다. 이 책은 그 한 움큼의 용기와 결단으로 자신을 바꾸어 나가는 용기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성매매라는 익숙한 환경에 안주하기 보다는, 고통스럽고 힘들고 인내해야 하지만 우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평범'이라는 행복을 향해 항구를 떠난 항해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그 결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평범함을 찾기 위해 결단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엄마, 누나, 여동생들이 간직한 (그렇지만 우리는 잘 몰랐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누리고 있는 따뜻한 저녁식사, 엄마의 관심, 아빠의 대화, 이성과의 알콩달콩한 데이트, 결혼과 육아를 꿈꾸는 사람들. 평범을 향해 가지만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머리가 아닌 육체로 써낸 글이다. 많은 책들이 저자의 머리 속의 생각들을 정리해 놓고 독자들에게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그냥 7명의 여성이 육체에 써 내려간 삶의 기록이다. 이 책을 읽는 데에는 머리가 필요 없다. 들을 귀와 열린 마음, 그리고 따뜻한 시선이면 족하다. 그렇기에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며 억지 이해와 감동 요구하지 않는다.

 

 

이 책은 평범함을 꿈꾸는 7명의 이야기라는 같은 주제를 담지만, 담는 그릇(구성)이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니 예쁘다. 같은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서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느낌과 심지어는 맛조차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 책에 담긴 7명의 이야기는 박금선이라는 작가에 의해 이야기의 본질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요리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담기에 꼭 맞는 그릇에 담김으로써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시선을 잡아 끈다. 두 여성의 대화(평범에 대한 고찰)는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고찰하게 만들고, 엄마에게 보낸 딸의 편지(엄마와 내 안에 있는 괴물에게 커피 한 잔)는 진솔하면서도 생동감 가득한 말투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며, 상담원 선생님들과 주인공의 밀당 이야기를 콩트(잔소리쟁이 여자들과의 동거)형식으로 구성한 이야기는 마치 유쾌한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하다. 또한 일기와 편지 형식(나를 지켜주는 딸과 오뚝이)을 혼합한 이야기는 여자이자 엄마인 주인공의 상황과 심정에 독자가 기대어 울게 만들고, 다섯 가지 감정을 통해 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내 맘대로 사전: 고마워, 두려워, 무서워, 미워, 어려워)은 쉽고 명쾌하게 읽히면서도 주인공의 삶 속에 나타난 감정을 고스란히 잘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책을 읽는 것, 즉 글에만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게 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책 사이사이에 놓여진 일러스트 작가 홍시야의 그림 책 속의 주인공의 고단하고 힘들었던 삶을 위로하는 듯 따뜻하고 부드럽게 이야기 전체를 포근함으로 안는다. 또한 디자인에 있어서도 편지 형식을 취한 글은 편지지 모양으로 내지 디자인을 하고, 에세이 형식을 취한 글은 내지 배경을 모눈 종이처럼 디자인함으로써 글의 형식을 디자인으로 극대화해서 보여주어 독자에게 이야기 자체가 더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만든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책은 평범을 향해 나아가는 조금은 '특별한'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특별함은 그녀들의 용기와 결단에서 나온다. '한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알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7개의 우주가 있다. ! 이제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바꾸어가는 7개의 우주와 만날 시간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당신이란 우주는 조금 더 따뜻하고 포근한 우주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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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리더에게 - 대한민국 대표 CEO들에게 던지는 무례한 질문
이석우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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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수많은 흙수저들과 몇몇의 금수저들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다.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금수저와 흙수저로 표현되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것이다. 우리는 금수저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만 그것은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흙수저를 어떻게 지혜롭게 활용할 것인지가 우리 삶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이미 흙수저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책은 우리와 같은 대부분의 흙수저들이 사회, 특히 회사로 대표되는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대한 이야기, 흙수저로 떠 넣은 밥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 어떻게 금수저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은 신문기자인 저자가 (과거에 월급쟁이였으나) 지금은 대한민국의 대표 CEO가 된 전 현직 CEO 9명을 인터뷰 한 것을 바탕으로 편집 구성한 결과물이다. "리더가 리더에게"라는 제목만 보고 나름의 성공(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의 성공)을 이뤘다고 여겨지는 9명의 사장님들이 꼰대(?)같은 말투로 "우리 때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자신의 성공담을 늘어놓는 책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책은 오히려 "내가 과거에는 말이야. 이렇게 찌질~했었지."라는 고백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오히려 지금의 CEO가 된 인터뷰이(interviewee)들이 과거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머슴' 혹은 '월급쟁이'로서 겪은 실패담, 망가짐, 실수 등 '월급쟁이의 잔혹사'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찌질한 과거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실패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며 그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도록 드러내 보이는 인터뷰이들의 모습은 '리더'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이고, 배울 점이 많은 흙수저들의 성공이야기. 아니, 수많은 실패 이야기. 더 정확히는 굳건히 버텨낸 이야기는 화려하고 찬란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9첩 반상의 상차림 위에 놓여졌지만 눈길을 끌지 않는 음식들. 예를 들면 종지의 간장, 보시기에 소박하게 담긴 깍두기, 대접에 담긴 구수한 숭늉처럼 월급쟁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상 속의 사소하면서 중요한 고민들과 기초적인 의문점들이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직장인에게 월급이 갖는 의미, 직장내의 인간관계(특히 상사와의 인간관계), 진급과 이직의 적절한 때, 회사에서 갖게 되는 주인의식, 직장 생활을 통한 개인의 성장 등의 아주 기초적이면서 현실적인 단어들의 의미를 짚어준다. 그리고 실제적인 경험담(대부분이 통렬한 실패담이다)을 통해서 월급, 회사, 이직, 성장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주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단순히 멋모르고 사회에 뛰어든 사회 초년생이 몰랐을, 그리고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는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할아버지 옛날 이야기를 듣는 손자처럼 나도 모르게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허황된 '성공'의 단어들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에서 하나하나 해 나가야 할 목록과 관계들을 차분히 정리해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복싱을 배우러 가면 바로 복싱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두 세달 동안 줄넘기만 하면서 기초체력을 쌓는 것처럼, 회사 생활을 잘하고 성공하기 위한 궁극의 스킬(기술)이나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아니라 기초 중의 기초인 월급, 상사, 이직, 진급, 성장 등의 실제적인 의미를 다룬다.

 

 

기초가 튼튼한 운동선수가 롱런(long-run)하는 것처럼, 기초가 튼튼한 월급쟁이들이 롱런(long-run)할 수 있다. 월급쟁이 생활에 회의가 들 때, 이직을 고민하고 있을 때, 상사가 못살게 굴 때 등 이런 고민들이 스멀스멀 피어 오를 때, 이 책을 책장에서 꺼내어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직장생활의 기초()를 튼튼히 해주는 칼슘과 그 뼈에 탄력을 주는 콜라겐과 같은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누군가가 등을 토닥거려주는 위안과 나름의 해답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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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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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결과를 낳는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결과는 상황을 바꾸고, 사람을 바꾼다. 그렇기에 거짓말은 힘이 세다. 그 거짓말의 힘을 잘 이용해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작가 길리언 플린이 단편소설 『나는 언제나 옳다(THE GROWNUP)』을 발표했다.

 

 

단편 소설은 긴 서사보다는 단순한 줄거리, 압축적이면서 간결한 문체, 그리고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쓰여진다. 그렇기에 등장 인물의 다양한 관점이나 다채로운 심리 묘사, 그리고 장황한 서사보다는 한 인물(주인공)을 축으로 놓고 그(혹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단편적이면서도 파편화된 기억을 서술하는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화자인 주인공이 자기 이야기를 자기 호흡으로 자기 관점에서 서술하기에 마치 귓속말을 나누는 것처럼 사적이고 비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길리언 플린의 단편 소설 『나는 언제나 옳다(THE GROWNUP)』는 그러한 단편 소설의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특히나 ''라는 주인공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도입부는 그녀의 직업에 관한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위 손일’(남성들의 자위행위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성매매 여성이었던 그녀가 지금 어떻게 점을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과거 서사(어렸을 적 엄마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압축적으로 기술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의 묘사를 바탕으로 인물이 마주하게 되는 상황의 변화와 주인공의 마음의 변화를 1인칭 시점에서 혼잣말하듯이 그리고 일기를 쓰듯이 서술한다. 그리고 이것은 책을 읽는 이가 주인공의 상황에 깊게 공감하고 감정에 밀착하도록 만든다.

 

 

거짓말을 능숙하게 다루는 작가 길리언 플린은 그녀의 다른 소설인 『나를 찾아줘』나 『다크 플레이스』에서 보여준 거짓말이라는 소재를 관점을 달리하여 더욱 독특하게 녹여낸다. (이 소설 역시 거짓말이 중요 모티브로 작용한다.) 그런데 그 거짓말이 상대, 즉 타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일종의 자기 기만이나 자기 최면같은 것, 혹은 요즘 말로 하면 정신 승리라고 하면 맞을까?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신포도(라고 믿는 포도)를 따지 않았던 여우 이야기처럼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주인공이 오히려 통제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스스로 믿어버리는 진실(같은 거짓말)은 놀랍도록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나는 내가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고 믿기로 선택했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수많은 일들을 믿도록 했지만, 이번만큼은 내 생애 최고의 업적이 될 참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나 스스로 믿도록 하는 것!” -마일즈에게 속은 주인공이 침대에서 스스로에게 하는 말 중에서 (p87)-

 

 

어쩌면 작가는 어른(THE GROWNUP)이란 자기 기만에 빠져, 자기가 옳다라고 믿어버리는어리숙한 존재들이라고, 그리고 자기 기만만이 거짓말이 가득한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 “THE GROWNUP이란 원제에 나는 언제나 옳다라는 한국어 제목이 붙었는지를. “나는 언제나 옳다(라고 믿는다)”가 더 정확한 제목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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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메시스 - 건강과 질병의 블랙박스
이덕희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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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예방의학을 전공한 의사로서 자신이 호메시스라는 현상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연구하게 된 과정을 담담히 이야기 한다. 한 편의 소설처럼 다이내믹하고, 술술 책장이 넘어가는 에세이처럼 쉬운 어법을 구사하고 있는 이 책은 과학 지식의 딱딱함을 저자의 열정과 수다스러움에 버무려낸다.

 

우연히 관심을 갖게된 GGT라는 물질과 당뇨병과의 상관관계에 대한 연구가 POPs라 불리는 잔류성 유기오염 물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그것이 호메시스(Hormesis) 이론(많은 과학자들은 '사기꾼의 과학'이라 부르는 이론)으로 이어지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을 PART 1과 PART2에 걸쳐 상세하면서도 재미있게 소개한다. PART 1과 PART2 부분을 읽으면서 저자가 자신이 알고 있는 호메시스 이론, POPs, 낮은 농도와 만성노출의 위험성, 화학물질 허용기준치의 맹점에 대해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죽겠다는 인상을 받았다.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임을 알게된 이발사처럼 근질거려 외치고 싶은 욕망. 혹은, 재미있는 영화를 보았을 때, 누군가를 붙잡고 그 이야기를 몇 시간 동안이나 하는 그런 모습이랄까? 신바람이 나서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에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고 빨려들수 밖에 없었다.
 
특히나 저자의 주장 가운데 관심이 갔던 주장은 '허용기준치'로 대표되는 현재 진행되는 모든 연구들이 가지는 맹점을 지적한 부분이었다.
 
“우리 인간이 실제 환경 속에서 경험하고 있는 노출의 형태, 즉 수많은 화학물질에 대한 동시노출이라는 것에 대하여서는 고려하지 않고 만들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어떤 화학물질에 대하여 허용기준을 정할 때는 현실에선 결코 존재하지 않는, 단 하나의 화학물질만 존재하는 상황을 만들어서 실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허용기준이란 것의 진실 중에서(p81)-
 
이처럼 이 책이 가지는 가장 큰 장점은 현대 과학을 맹신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정말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눈으로 현상을 보고 분석하는 점이다. 생명이라는 시스템이 가지는 복잡성과 다양한 화학물질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 채로 실험실 내의 환경에서 단 하나의 물질에 대한 세포 혹은 조직의 반응을 연구한다는 것은 과학이 과학적이지 않다는 것을 방증한다.

 

뉴스에서 어떤 연구 결과가 나오면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시대는 지난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유효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뉴스에서 어떤 제품이 암에 좋다고 하면 그것을 믿어버리고, 다음 날에는 그 제품의 품귀현상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커피가 항산화 작용을 하기에 몸에 좋다라는 연구결과가 발표되면 커피를 마시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다. 그리고 몇 달 뒤 커피를 마시는 것은 암을 유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는 것이 현대 과학의 모습이다. 사람들이 겪게 되는 이런 어리둥절한 혼란에 대해 저자는 충분히 공감하고 그 이유를 밝히고 지적한다.

 

실험 환경과 변인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른 결과를 낼 수 있기에, 많은 논문들은 통계적 유의성(확률적으로 봐서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의미가 있다는 뜻)을 중요시하지만 통계적 유의성이라는 것이 오류를 동반한다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이 느껴진다. (저자는 책에서 통계적 유의성이라는 것에 대해 설명하면서 세계 3대 거짓말 중 하나라고 말하는데, 그 의견에 나도 동의한다)
 
또한 책은 PART3에서 이런 호메시스와 POPs,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생생한 이슈들과 연관 지어 이야기한다. 고혈압과 관련된 콜레스테롤의 신화, 임산부의 엽산 섭취 문제, 일일 권장 기준치의 소금을 섭취하는 문제, 모유수유가 가지는 의미, 그리고 MSG 등등 우리 생활과 밀접한 주제들을 낮은 농도와 만성 노출이라는 관점, 그리고 호메시스의 작용이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나름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 의견들은 물론 저자의 평생의 연구결과이고 존중할 만한 의견이다. 저자의 관점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현대과학의 환원적인 연구방법이 가지는 맹점 혹은 사각지대를 냉철하고도 분석적으로 지적하고 그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일러두기 부분에서 “이 책은 의학적인 연구 결과를 다루고 있지만, 의학서적은 아니다”라고 선언하는 점은 이 책이 가지는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 책은 저자의 의견일 뿐이지만, 과학적 바탕이 없는 허무맹랑한 주장은 아니다. 이 책은 그렇기에 현대과학을 바라보는 균형적인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에 있어서 중요하다. 현대의학과 대척점에 서있는 자연 치료, 그 두 관점을 잇는 다리로써의 역할을 호메시스가 할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호메시스가 사기꾼의 과학이 아니라, 단지 아직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라는 점은 그 연구가 아직도 생생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저자가 머릿말에서 이 책에서 쓰고 싶었다는 갈릴레오의 중얼거림('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자신의 신념)은 유효하다. 왜냐하면 생명에 대한 연구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만큼이나 역동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여전히 의미있는 이 시대의 갈릴레오의 중얼거림에 귀 기울여보는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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