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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프 - 술의 과학 ㅣ 사소한 이야기
아담 로저스 지음, 강석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
어느 영화에서 '친구'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술(알코올)만큼 인류가 오랫동안 곁에 두고 가깝게 사귐을 가진 벗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 술은 인류에게 있어 오랜 벗이다.
이 책의 저자 아담 로저스는 우리의 오랜 벗인 술을 다각적으로 (특히나 과학적으로) 살펴본다. 그 구성의 본질, 그 바탕의 원료, 그 미묘한 변화, 그 향기와 맛,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풍미까지 속속들이 탐구한다. 심지어 그 친구(술)의 종류에 따른 독특한 취향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 친구와의 사귐이 가져올 수 있는 우리 몸의 변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사귐의 방법과 밀도가 우리의 생활(을 넘어서 삶)의 패러다임이 전환 될 수 있음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부부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떤 부분은 부부끼리도 서로 전혀 모르기도 한다. 완벽한 이해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그 완벽한 오해! 저자는 인류와 술의 관계가 마치 그런 부부 관계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특히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숙취'를 겪지만, 숙취에 대한 정의조차 최근에 합의되었고, 숙취에 관한 것은 아직 인류가 거의 모른다고 고백한다.) 그런 것처럼 이 책은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고 열광해 온 이 술이라는 친구의 은밀하고, 신비에 감춰진 모습을 과학적이고 분석적이면서도 때로는 유쾌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술이라는 친구에 대해 알아 갈수록 우리는 인류의 조상에 대해 알게 되고(역사학, 문화인류학), 신이 창조한 자연의 신비를 알게 되며(계통분류학), 몸 속(특히, 뇌)에서 일어나는 매커니즘(분자생물학, 생화학 및 신경과학)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게 된다.
이처럼 술은 인류의 역사다. 지금도 계속 진행되는 인류의 역사다. 역사일 뿐만 아니라 문화, 정치, 경제, 종교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독특한 역할을 맡아 각각의 본질을 미묘하게 변화시킨다. 술을 생성이 효모라는 생명체에서 시작된 것처럼 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지금도 인간을 움직이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효모를 통한 술의 생성이 효모가 인류를 '길들여 가는 과정'이라고 언급한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속 여우와 어린 왕자의 관계처럼 술과 인간은 서로를 친구 삼고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길들여왔다. 그리고 책은 그 길들임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 미묘한 변화의 결을 상사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과학책이기에 용어 자체가 조금은 딱딱하다. 하지만, 그 딱딱한 단어를 담아내는 작가의 어투는 결코 딱딱하지 않다. 좋은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며 허허허~ 농담을 건네는 것처럼 작가는 독자에게 유쾌하게 말을 건넨다. 작가는 '자칫 남용될 수 있는 합법적 약물'인 술(에탄올)을 모습을 보여줌에 있어서, 다양하게도 다루지만 결코 얄팍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과학적인 지식을 너무 깊게 다뤄서 조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마치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넘나드는 헤르메스(Hermes)의 두 얼굴을 가진 술.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그 벗이 지닌 카멜레온 같은 모습을 낱낱이 발가벗겨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실용적이면서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의 내용 조차도 그 친구(술)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방대하고, 깊으며,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이 친구(술)의 진면모를 아직 정확하게 모르기에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호기심이 생긴다.
친구 관계가 늘 그렇듯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약간의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인간을 먹어서 (효모가 당을 에탄올로 변화시키듯) 사람을 개(犬)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변화가 발생한다. 술은 달콤한 유혹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도 달콤한 유혹이다. 가까이 할수록 가까이 다가오는 술이라는 친구를 혀의 맛과 몸의 취함과 뇌의 두통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과 과학적 사실과 명확한 논리의 틀 안에서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마치 술을 마신 뒤의 숙취처럼 머리를 아프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분 좋게 한 잔 걸쳤을 때의 쾌감과 흥겨움도 선사한다. 술이 가진 두 얼굴처럼 이 책도 두 얼굴이다. 고통을 이겨내고, 술의 과학이 선물하는 한 잔의 흥겨움을 마셔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