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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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결과를 낳는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결과는 상황을 바꾸고, 사람을 바꾼다. 그렇기에 거짓말은 힘이 세다. 그 거짓말의 힘을 잘 이용해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작가 길리언 플린이 단편소설 『나는 언제나 옳다(THE GROWNUP)』을 발표했다.

 

 

단편 소설은 긴 서사보다는 단순한 줄거리, 압축적이면서 간결한 문체, 그리고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쓰여진다. 그렇기에 등장 인물의 다양한 관점이나 다채로운 심리 묘사, 그리고 장황한 서사보다는 한 인물(주인공)을 축으로 놓고 그(혹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단편적이면서도 파편화된 기억을 서술하는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화자인 주인공이 자기 이야기를 자기 호흡으로 자기 관점에서 서술하기에 마치 귓속말을 나누는 것처럼 사적이고 비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길리언 플린의 단편 소설 『나는 언제나 옳다(THE GROWNUP)』는 그러한 단편 소설의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특히나 ''라는 주인공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도입부는 그녀의 직업에 관한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위 손일’(남성들의 자위행위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성매매 여성이었던 그녀가 지금 어떻게 점을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과거 서사(어렸을 적 엄마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압축적으로 기술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의 묘사를 바탕으로 인물이 마주하게 되는 상황의 변화와 주인공의 마음의 변화를 1인칭 시점에서 혼잣말하듯이 그리고 일기를 쓰듯이 서술한다. 그리고 이것은 책을 읽는 이가 주인공의 상황에 깊게 공감하고 감정에 밀착하도록 만든다.

 

 

거짓말을 능숙하게 다루는 작가 길리언 플린은 그녀의 다른 소설인 『나를 찾아줘』나 『다크 플레이스』에서 보여준 거짓말이라는 소재를 관점을 달리하여 더욱 독특하게 녹여낸다. (이 소설 역시 거짓말이 중요 모티브로 작용한다.) 그런데 그 거짓말이 상대, 즉 타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일종의 자기 기만이나 자기 최면같은 것, 혹은 요즘 말로 하면 정신 승리라고 하면 맞을까?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신포도(라고 믿는 포도)를 따지 않았던 여우 이야기처럼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주인공이 오히려 통제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스스로 믿어버리는 진실(같은 거짓말)은 놀랍도록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나는 내가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고 믿기로 선택했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수많은 일들을 믿도록 했지만, 이번만큼은 내 생애 최고의 업적이 될 참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나 스스로 믿도록 하는 것!” -마일즈에게 속은 주인공이 침대에서 스스로에게 하는 말 중에서 (p87)-

 

 

어쩌면 작가는 어른(THE GROWNUP)이란 자기 기만에 빠져, 자기가 옳다라고 믿어버리는어리숙한 존재들이라고, 그리고 자기 기만만이 거짓말이 가득한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 “THE GROWNUP이란 원제에 나는 언제나 옳다라는 한국어 제목이 붙었는지를. “나는 언제나 옳다(라고 믿는다)”가 더 정확한 제목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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