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나 홀로 미식수업 - 먹는다는 건,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 의식주(衣食住). (아마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인간 생활의 3요소인 '..'에 대해서 처음 배운다. 인간이 기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이 세가지 요소는 단골 학교 시험 문제일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국가의 3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만큼이나 내 기억에 중요했던 시험문제 필수 예상 문제로 남아있다.) 인간의 역사는 늘 생존에서 삶으로의 질적인 변화를 추구해온 역사다. (세계 모든 지역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소위 산업발전을 이룬 국가의 경우, ..주의 개념은 생존이 아닌 풍족한 삶을 대변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는지, 그리고 어느 동네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 사는지(), 그리고 얼마나 외식을 자주하며 그 외식으로 무엇을 먹는()지는 (보이지 않는) 구별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중 특히나 식()문화는 처한 환경과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발전하였다. 단순히 먹는 일()에서 음식이 가진 고유의 풍미 느끼고 음식을 요리라는 질서로 만들어내는 일 -미식(美食)- 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여전히 우리 다수는 생존을 위해 살아가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먹는 일에서 예술로서의 환희와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 책은 미식가인 저자가 음식을 즐기는 법 -저자는 이 즐기는 미식의 과정이 곧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음식을 즐기는데 있어서 총체적 감각을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이 서평의 도입부에서 내가 잠깐 언급했던 인간 생활의 세가지 요소인 의..주를 음식을 향유하고 즐기는 인간다운 삶이라는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먹는다'라는 행위를 곧 삶이자, 하나의 스토리를 지닌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확장한다.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 요리를 담는 식기의 중요성, 가게와 음식에 따라 미식가가 갖추어야 할 적절한 복장, 맛의 기억, 더 세세하게는 그릇과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와 울림, 질서가 결여된 음식이 가지는 카오스의 의외성 등등 요리는 준비하고 먹고 느끼고 계산하고 소화시키는 과정까지의 모든 것을 미식수업이라고 이야기한다. (, 이 책은 주로 가게에서 돈을 지불하고 사먹는 요리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요리를 만드는 과정과 설거지를 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설거지의 과정까지가 음식을 먹고 향유하는 과정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부분에 대한 기술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이 책의 저자가 음식(요리)을 대하는 태도는 남다르다. ()을 단순히 먹는 행위 혹은 영양소의 공급이라는 생물학적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먹는다는 행위를 구성하는 요소를 음식에 담긴 사람, 분위기, 태도, 그릇, 재료, 가공방법 등등으로 세심하게 고려하여 설명하고 있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으로 완성되는 한 편의 영화처럼, 그리고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소리의 사각거림, 소품의 디테일, 인물의 표정을 타고 흐르는 묘한 긴장,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공기를 담는 예술 영화처럼 저자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유려하면서도, 담담하고, 평범하면서도 극적이다.

 

 

저자는 프렌치(프랑스) 요리가 담고 있는 요소들을 마치 긴장감 넘치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음미하듯이 서술하는데,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얼마를 주더라도 그 가게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치 홈쇼핑 상품의 마감 임박을 외치는 쇼 호스트처럼, 아니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는 것처럼 그 가게에서 파는 요리는 무엇일까?” 궁금해서 미치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이 책이 사진집에 아니라 에세이이기에 책 속에 등장하는 요리에 관한 사진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그것이 오롯이 요리를 표현하는 저자의 글빨(?)에 기대게 만든다. 어쩌면 책을 읽기를 멈추고, 요리 이름을 구글링(googling) 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홈쇼핑처럼 자극적이고 광고적인 홍보성 어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밀당을 하는 연인처럼 내가 이런 데에서 이런 걸 먹어봤는데~ 그거 굉장하더라! 궁금하면 가보던가~”라는 자세를 취하는데, 그것이 때로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럽다. (그의 어투에는 일본인 특유의 겸양(이라고 불리는 개인성)이 묻어나면서도, 때론 까칠하면서 단호한 자기의 주장이 드러난다.) 이것은 독자에게 나쁜 남자가 주는 까칠하고, 불친절한 이름의 알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는 저자의 이 태도가 나는 이렇게 음식을 나의 존재가치처럼 중요하게, 풍부하게 음미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종의 잘난 척(?)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의 잘난 척의 내용, 즉 요리가 품을 수 있는 다양한 함의(공간, 관계, 식기(그릇), 기억과 추억, 요리사의 품격, 복장과 스타일, 가격, 매너, 풍미(냄새) )를 마치 켜켜이 풍미가 배어든 코스 요리처럼 다채롭고 정교하게 엮어가기에 오히려 그 잘난 척에 끌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루프 - 술의 과학 사소한 이야기
아담 로저스 지음, 강석기 옮김 / Mid(엠아이디)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

어느 영화에서 '친구'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의 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술(알코올)만큼 인류가 오랫동안 곁에 두고 가깝게 사귐을 가진 벗은 없을 것 같다. 그렇다. 술은 인류에게 있어 오랜 벗이다.

이 책의 저자 아담 로저스는 우리의 오랜 벗인 술을 다각적으로 (특히나 과학적으로) 살펴본다. 그 구성의 본질, 그 바탕의 원료, 그 미묘한 변화, 그 향기와 맛, 그리고 그 변화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풍미까지 속속들이 탐구한다. 심지어 그 친구()의 종류에 따른 독특한 취향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그 친구와의 사귐이 가져올 수 있는 우리 몸의 변화를 설명한다. 그리고 사귐의 방법과 밀도가 우리의 생활(을 넘어서 삶)의 패러다임이 전환 될 수 있음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마치 오랜 세월을 함께 지낸 부부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어떤 부분은 부부끼리도 서로 전혀 모르기도 한다. 완벽한 이해를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그 완벽한 오해! 저자는 인류와 술의 관계가 마치 그런 부부 관계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특히나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고 '숙취'를 겪지만, 숙취에 대한 정의조차 최근에 합의되었고, 숙취에 관한 것은 아직 인류가 거의 모른다고 고백한다.) 그런 것처럼 이 책은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고 열광해 온 이 술이라는 친구의 은밀하고, 신비에 감춰진 모습을 과학적이고 분석적이면서도 때로는 유쾌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술이라는 친구에 대해 알아 갈수록 우리는 인류의 조상에 대해 알게 되고(역사학, 문화인류학), 신이 창조한 자연의 신비를 알게 되며(계통분류학), 몸 속(특히, )에서 일어나는 매커니즘(분자생물학, 생화학 및 신경과학)에 대해서 어렴풋이 알게 된다.

이처럼 술은 인류의 역사다. 지금도 계속 진행되는 인류의 역사다. 역사일 뿐만 아니라 문화, 정치, 경제, 종교이기도 하다. 그 속에서 독특한 역할을 맡아 각각의 본질을 미묘하게 변화시킨다. 술을 생성이 효모라는 생명체에서 시작된 것처럼 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지금도 인간을 움직이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효모를 통한 술의 생성이 효모가 인류를 '길들여 가는 과정'이라고 언급한다. 생텍쥐베리의 소설 <어린왕자>속 여우와 어린 왕자의 관계처럼 술과 인간은 서로를 친구 삼고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길들여왔다. 그리고 책은 그 길들임의 과정 속에서 일어난 미묘한 변화의 결을 상사하게 보여준다.

이 책은 과학책이기에 용어 자체가 조금은 딱딱하다. 하지만, 그 딱딱한 단어를 담아내는 작가의 어투는 결코 딱딱하지 않다. 좋은 친구와 술 한잔 기울이며 허허허~ 농담을 건네는 것처럼 작가는 독자에게 유쾌하게 말을 건넨다. 작가는 '자칫 남용될 수 있는 합법적 약물'인 술(에탄올)을 모습을 보여줌에 있어서, 다양하게도 다루지만 결코 얄팍하게 다루지는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과학적인 지식을 너무 깊게 다뤄서 조금 숨이 막힐 지경이다.) 마치 이쪽과 저쪽의 경계를 넘나드는 헤르메스(Hermes)의 두 얼굴을 가진 술.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그 벗이 지닌 카멜레온 같은 모습을 낱낱이 발가벗겨 이해를 돕는다는 점에서 이 책은 실용적이면서 피부에 와 닿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의 내용 조차도 그 친구()의 극히 작은 일부일 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방대하고, 깊으며, 아직도 끝을 알 수 없는 이 친구()의 진면모를 아직 정확하게 모르기에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호기심이 생긴다.

친구 관계가 늘 그렇듯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약간의 문제(?)가 생긴다. (인간이 술을 먹는 것이 아니라) 술이 인간을 먹어서 (효모가 당을 에탄올로 변화시키듯) 사람을 개()로 변화시키는 놀라운(?) 변화가 발생한다. 술은 달콤한 유혹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도 달콤한 유혹이다. 가까이 할수록 가까이 다가오는 술이라는 친구를 혀의 맛과 몸의 취함과 뇌의 두통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과 과학적 사실과 명확한 논리의 틀 안에서 만나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이 책은 마치 술을 마신 뒤의 숙취처럼 머리를 아프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분 좋게 한 잔 걸쳤을 때의 쾌감과 흥겨움도 선사한다. 술이 가진 두 얼굴처럼 이 책도 두 얼굴이다. 고통을 이겨내고, 술의 과학이 선물하는 한 잔의 흥겨움을 마셔보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제일 잘한 일
박금선 지음,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성매매방지중앙지원센터 / 샨티 / 201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익숙함에서 벗어나는 일에는 굳건한 용기 한 움큼과 단호한 결단 한 주먹이 필요하다. 한 움큼과 한 주먹이라고 해서 그것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과거의 나, 현재의 나, 미래의 나를 모두 던져 넣는 존재론적 결단이 필요하다. 익숙한 항구에서 벗어나서 바다로 나가는 일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한 움큼의 용기가 없어서 아직 항구에 정박해 있는 우리네 인생들이 여전히 많은 현실이다. 이 책은 그 한 움큼의 용기와 결단으로 자신을 바꾸어 나가는 용기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성매매라는 익숙한 환경에 안주하기 보다는, 고통스럽고 힘들고 인내해야 하지만 우리들이 지금 누리고 있는 '평범'이라는 행복을 향해 항구를 떠난 항해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그 결단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이 책은 자신에게 주어지지 않았던 평범함을 찾기 위해 결단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특별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책은 어쩌면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엄마, 누나, 여동생들이 간직한 (그렇지만 우리는 잘 몰랐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가 흔히 누리고 있는 따뜻한 저녁식사, 엄마의 관심, 아빠의 대화, 이성과의 알콩달콩한 데이트, 결혼과 육아를 꿈꾸는 사람들. 평범을 향해 가지만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은 머리가 아닌 육체로 써낸 글이다. 많은 책들이 저자의 머리 속의 생각들을 정리해 놓고 독자들에게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그냥 7명의 여성이 육체에 써 내려간 삶의 기록이다. 이 책을 읽는 데에는 머리가 필요 없다. 들을 귀와 열린 마음, 그리고 따뜻한 시선이면 족하다. 그렇기에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며 억지 이해와 감동 요구하지 않는다.

 

 

이 책은 평범함을 꿈꾸는 7명의 이야기라는 같은 주제를 담지만, 담는 그릇(구성)이 다양하고 아기자기하니 예쁘다. 같은 재료를 어떻게 요리해서 어떤 그릇에 담느냐에 따라서 느낌과 심지어는 맛조차 다르게 느껴지는 것처럼 이 책에 담긴 7명의 이야기는 박금선이라는 작가에 의해 이야기의 본질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는 방법으로 요리되어, 각자의 이야기를 담기에 꼭 맞는 그릇에 담김으로써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시선을 잡아 끈다. 두 여성의 대화(평범에 대한 고찰)는 평범함이란 무엇인가 고찰하게 만들고, 엄마에게 보낸 딸의 편지(엄마와 내 안에 있는 괴물에게 커피 한 잔)는 진솔하면서도 생동감 가득한 말투와 이야기로 가득 차 있으며, 상담원 선생님들과 주인공의 밀당 이야기를 콩트(잔소리쟁이 여자들과의 동거)형식으로 구성한 이야기는 마치 유쾌한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하다. 또한 일기와 편지 형식(나를 지켜주는 딸과 오뚝이)을 혼합한 이야기는 여자이자 엄마인 주인공의 상황과 심정에 독자가 기대어 울게 만들고, 다섯 가지 감정을 통해 주인공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글(내 맘대로 사전: 고마워, 두려워, 무서워, 미워, 어려워)은 쉽고 명쾌하게 읽히면서도 주인공의 삶 속에 나타난 감정을 고스란히 잘 전달하고 있다.

 

 

이 책의 장점은 책을 읽는 것, 즉 글에만 초점을 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게 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이다. 책 사이사이에 놓여진 일러스트 작가 홍시야의 그림 책 속의 주인공의 고단하고 힘들었던 삶을 위로하는 듯 따뜻하고 부드럽게 이야기 전체를 포근함으로 안는다. 또한 디자인에 있어서도 편지 형식을 취한 글은 편지지 모양으로 내지 디자인을 하고, 에세이 형식을 취한 글은 내지 배경을 모눈 종이처럼 디자인함으로써 글의 형식을 디자인으로 극대화해서 보여주어 독자에게 이야기 자체가 더 잘 전달 될 수 있도록 만든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이 책은 평범을 향해 나아가는 조금은 '특별한'여성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특별함은 그녀들의 용기와 결단에서 나온다. '한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은 하나의 우주를 알게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에 7개의 우주가 있다. ! 이제 용기 있게 자신의 삶을 바꾸어가는 7개의 우주와 만날 시간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덮는 순간 당신이란 우주는 조금 더 따뜻하고 포근한 우주가 되어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더가 리더에게 - 대한민국 대표 CEO들에게 던지는 무례한 질문
이석우 지음 / Mid(엠아이디)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세상은 수많은 흙수저들과 몇몇의 금수저들이 함께 존재하는 곳이다. 최근 이슈화 되고 있는 금수저와 흙수저로 표현되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하던 것이다. 우리는 금수저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지만 그것은 우리의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흙수저를 어떻게 지혜롭게 활용할 것인지가 우리 삶에서는 더욱 중요하다.

 

 

그렇기에 이 책은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우리는 이미 흙수저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인정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 책은 우리와 같은 대부분의 흙수저들이 사회, 특히 회사로 대표되는 시스템 안에서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대한 이야기, 흙수저로 떠 넣은 밥을 먹고 자란 사람들이 어떻게 금수저를 갖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 책은 신문기자인 저자가 (과거에 월급쟁이였으나) 지금은 대한민국의 대표 CEO가 된 전 현직 CEO 9명을 인터뷰 한 것을 바탕으로 편집 구성한 결과물이다. "리더가 리더에게"라는 제목만 보고 나름의 성공(회사라는 시스템 안에서의 성공)을 이뤘다고 여겨지는 9명의 사장님들이 꼰대(?)같은 말투로 "우리 때는 말이야~"라고 하면서 자신의 성공담을 늘어놓는 책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책은 오히려 "내가 과거에는 말이야. 이렇게 찌질~했었지."라는 고백을 담담하게 담고 있다. 오히려 지금의 CEO가 된 인터뷰이(interviewee)들이 과거 수십 년의 세월 동안 '머슴' 혹은 '월급쟁이'로서 겪은 실패담, 망가짐, 실수 등 '월급쟁이의 잔혹사'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찌질한 과거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실패를 자신의 일부로 여기며 그것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도록 드러내 보이는 인터뷰이들의 모습은 '리더'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게 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현실적이고, 배울 점이 많은 흙수저들의 성공이야기. 아니, 수많은 실패 이야기. 더 정확히는 굳건히 버텨낸 이야기는 화려하고 찬란함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9첩 반상의 상차림 위에 놓여졌지만 눈길을 끌지 않는 음식들. 예를 들면 종지의 간장, 보시기에 소박하게 담긴 깍두기, 대접에 담긴 구수한 숭늉처럼 월급쟁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상 속의 사소하면서 중요한 고민들과 기초적인 의문점들이 이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직장인에게 월급이 갖는 의미, 직장내의 인간관계(특히 상사와의 인간관계), 진급과 이직의 적절한 때, 회사에서 갖게 되는 주인의식, 직장 생활을 통한 개인의 성장 등의 아주 기초적이면서 현실적인 단어들의 의미를 짚어준다. 그리고 실제적인 경험담(대부분이 통렬한 실패담이다)을 통해서 월급, 회사, 이직, 성장이라는 단어를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켜주는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단순히 멋모르고 사회에 뛰어든 사회 초년생이 몰랐을, 그리고 나중에서야 깨닫게 되는 직장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마치 할아버지 옛날 이야기를 듣는 손자처럼 나도 모르게 귀 기울이게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허황된 '성공'의 단어들을 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현실을 인정하고, 그 현실에서 하나하나 해 나가야 할 목록과 관계들을 차분히 정리해 준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치 복싱을 배우러 가면 바로 복싱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두 세달 동안 줄넘기만 하면서 기초체력을 쌓는 것처럼, 회사 생활을 잘하고 성공하기 위한 궁극의 스킬(기술)이나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 아니라 기초 중의 기초인 월급, 상사, 이직, 진급, 성장 등의 실제적인 의미를 다룬다.

 

 

기초가 튼튼한 운동선수가 롱런(long-run)하는 것처럼, 기초가 튼튼한 월급쟁이들이 롱런(long-run)할 수 있다. 월급쟁이 생활에 회의가 들 때, 이직을 고민하고 있을 때, 상사가 못살게 굴 때 등 이런 고민들이 스멀스멀 피어 오를 때, 이 책을 책장에서 꺼내어 다시 읽어보면 어떨까? 직장생활의 기초()를 튼튼히 해주는 칼슘과 그 뼈에 탄력을 주는 콜라겐과 같은 이야기들을 읽고 나면 누군가가 등을 토닥거려주는 위안과 나름의 해답을 얻게 될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언제나 옳다
길리언 플린 지음, 김희숙 옮김 / 푸른숲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거짓말은 결과를 낳는다.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 결과는 상황을 바꾸고, 사람을 바꾼다. 그렇기에 거짓말은 힘이 세다. 그 거짓말의 힘을 잘 이용해서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작가 길리언 플린이 단편소설 『나는 언제나 옳다(THE GROWNUP)』을 발표했다.

 

 

단편 소설은 긴 서사보다는 단순한 줄거리, 압축적이면서 간결한 문체, 그리고 치밀한 구성을 바탕으로 쓰여진다. 그렇기에 등장 인물의 다양한 관점이나 다채로운 심리 묘사, 그리고 장황한 서사보다는 한 인물(주인공)을 축으로 놓고 그(혹은 그녀)가 가지고 있는 단편적이면서도 파편화된 기억을 서술하는데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화자인 주인공이 자기 이야기를 자기 호흡으로 자기 관점에서 서술하기에 마치 귓속말을 나누는 것처럼 사적이고 비밀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길리언 플린의 단편 소설 『나는 언제나 옳다(THE GROWNUP)』는 그러한 단편 소설의 특징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작품이다. 특히나 ''라는 주인공의 현재 모습을 보여주는 도입부는 그녀의 직업에 관한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소위 손일’(남성들의 자위행위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 성매매 여성이었던 그녀가 지금 어떻게 점을 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그녀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과거 서사(어렸을 적 엄마와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압축적으로 기술한다. 그리고 그러한 인물의 묘사를 바탕으로 인물이 마주하게 되는 상황의 변화와 주인공의 마음의 변화를 1인칭 시점에서 혼잣말하듯이 그리고 일기를 쓰듯이 서술한다. 그리고 이것은 책을 읽는 이가 주인공의 상황에 깊게 공감하고 감정에 밀착하도록 만든다.

 

 

거짓말을 능숙하게 다루는 작가 길리언 플린은 그녀의 다른 소설인 『나를 찾아줘』나 『다크 플레이스』에서 보여준 거짓말이라는 소재를 관점을 달리하여 더욱 독특하게 녹여낸다. (이 소설 역시 거짓말이 중요 모티브로 작용한다.) 그런데 그 거짓말이 상대, 즉 타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거짓말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일종의 자기 기만이나 자기 최면같은 것, 혹은 요즘 말로 하면 정신 승리라고 하면 맞을까? 이솝 우화에 나오는 신포도(라고 믿는 포도)를 따지 않았던 여우 이야기처럼 상황을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주인공이 오히려 통제하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 스스로 믿어버리는 진실(같은 거짓말)은 놀랍도록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나는 내가 사기를 당하지 않았다고 믿기로 선택했다.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속여서 수많은 일들을 믿도록 했지만, 이번만큼은 내 생애 최고의 업적이 될 참이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합리적이라고 나 스스로 믿도록 하는 것!” -마일즈에게 속은 주인공이 침대에서 스스로에게 하는 말 중에서 (p87)-

 

 

어쩌면 작가는 어른(THE GROWNUP)이란 자기 기만에 빠져, 자기가 옳다라고 믿어버리는어리숙한 존재들이라고, 그리고 자기 기만만이 거짓말이 가득한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어렴풋이 알게 될 것이다. “THE GROWNUP이란 원제에 나는 언제나 옳다라는 한국어 제목이 붙었는지를. “나는 언제나 옳다(라고 믿는다)”가 더 정확한 제목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