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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미식수업 - 먹는다는 건, 진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후쿠다 가즈야 지음, 박현미 옮김 / MY(흐름출판)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인간 생활의 기본 요소, 의식주(衣食住). (아마 내 기억으로는)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인간 생활의 3요소인 '의.식.주'에 대해서 처음 배운다. 인간이 기본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이 세가지 요소는 단골 학교 시험 문제일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 (국가의 3요소인 국민, 주권, 영토만큼이나 내 기억에 중요했던 시험문제 필수 예상 문제로 남아있다.) 인간의 역사는 늘 생존에서 삶으로의 질적인 변화를 추구해온 역사다. (세계 모든 지역이 동일한 것은 아니지만 소위 산업발전을 이룬 국가의 경우, 의.식.주의 개념은 생존이 아닌 풍족한 삶을 대변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어떤 브랜드의 옷(衣)을 입는지, 그리고 어느 동네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 사는지(住), 그리고 얼마나 외식을 자주하며 그 외식으로 무엇을 먹는(食)지는 (보이지 않는) 구별이라는 이름의 가면을 쓴 차별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 중 특히나 식(食)문화는 처한 환경과 지역의 특수성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발전하였다. 단순히 먹는 일(食)에서 음식이 가진 고유의 풍미 느끼고 음식을 요리라는 질서로 만들어내는 일 -미식(美食)- 은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했다. (여전히 우리 다수는 생존을 위해 살아가지만, 가끔 아주 가끔은 먹는 일에서 예술로서의 환희와 아름다움을 느낀다.)
이 책은 미식가인 저자가 음식을 즐기는 법 -저자는 이 즐기는 미식의 과정이 곧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음식을 즐기는데 있어서 총체적 감각을 사용(할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이 서평의 도입부에서 내가 잠깐 언급했던 인간 생활의 세가지 요소인 의.식.주를 음식을 향유하고 즐기는 인간다운 삶이라는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리고 '먹는다'라는 행위를 곧 삶이자, 하나의 스토리를 지닌 인문학적인 관점으로 확장한다. 함께 음식을 먹는 사람, 요리를 담는 식기의 중요성, 가게와 음식에 따라 미식가가 갖추어야 할 적절한 복장, 맛의 기억, 더 세세하게는 그릇과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와 울림, 질서가 결여된 음식이 가지는 카오스의 의외성 등등 요리는 준비하고 먹고 느끼고 계산하고 소화시키는 과정까지의 모든 것을 ‘미식수업’이라고 이야기한다. (단, 이 책은 주로 가게에서 돈을 지불하고 사먹는 요리에 대한 언급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요리를 만드는 과정과 설거지를 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 개인적으로는 설거지의 과정까지가 음식을 먹고 향유하는 과정의 완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부분에 대한 기술이 없는 것이 조금 아쉽다.)
이 책의 저자가 음식(요리)을 대하는 태도는 남다르다. 식(食)을 단순히 먹는 행위 혹은 영양소의 공급이라는 생물학적 관점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먹는다는 행위를 구성하는 요소를 음식에 담긴 사람, 분위기, 태도, 그릇, 재료, 가공방법 등등으로 세심하게 고려하여 설명하고 있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으로 완성되는 한 편의 영화처럼, 그리고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소리의 사각거림, 소품의 디테일, 인물의 표정을 타고 흐르는 묘한 긴장, 시간과 공간이 만들어내는 공기를 담는 예술 영화처럼 저자의 음식에 대한 이야기는 유려하면서도, 담담하고, 평범하면서도 극적이다.
저자는 프렌치(프랑스) 요리가 담고 있는 요소들을 마치 긴장감 넘치는 한 편의 드라마처럼 음미하듯이 서술하는데, 그의 글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얼마를 주더라도 그 가게에 가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치 홈쇼핑 상품의 마감 임박을 외치는 쇼 호스트처럼, 아니 파블로프의 개가 종소리에 침을 흘리는 것처럼 “그 가게에서 파는 요리는 무엇일까?” 궁금해서 미치게 만드는 힘이 느껴진다. (이 책이 사진집에 아니라 에세이이기에 책 속에 등장하는 요리에 관한 사진이 거의 없다. 그렇기에, 그것이 오롯이 요리를 표현하는 저자의 글빨(?)에 기대게 만든다. 어쩌면 책을 읽기를 멈추고, 요리 이름을 구글링(googling) 하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홈쇼핑처럼 자극적이고 광고적인 홍보성 어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마치 밀당을 하는 연인처럼 “내가 이런 데에서 이런 걸 먹어봤는데~ 그거 굉장하더라! 궁금하면 가보던가~”라는 자세를 취하는데, 그것이 때로는 단호하면서도 부드럽다. (그의 어투에는 일본인 특유의 겸양(이라고 불리는 개인성)이 묻어나면서도, 때론 까칠하면서 단호한 자기의 주장이 드러난다.) 이것은 독자에게 나쁜 남자가 주는 까칠하고, 불친절한 이름의 알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 나는 저자의 이 태도가 “나는 이렇게 음식을 나의 존재가치처럼 중요하게, 풍부하게 음미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일종의 잘난 척(?)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저자의 잘난 척의 내용, 즉 요리가 품을 수 있는 다양한 함의(공간, 관계, 식기(그릇), 기억과 추억, 요리사의 품격, 복장과 스타일, 가격, 매너, 풍미(냄새) 등)를 마치 켜켜이 풍미가 배어든 코스 요리처럼 다채롭고 정교하게 엮어가기에 오히려 그 잘난 척에 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