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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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라는 소설 제목은 주인공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는 주소 로마(이탈리아), 부티크 옵스퀴르 가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2번지라는 공간이다. 주소를 제목으로 삼았다는 것은 사람과 기억과 정체성에 대한 얘기를 거리로 풀어내고 싶었다는 의미리라.


처음에는 화자(기 롤랑)의 실제 이름이 무엇이고 직업과 그가 사랑해서 결혼했던 드니즈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 의존해 조각난 퍼즐조각을 맞추다 자꾸 기억맞추기를 의도적으로 흩으러 트리는 저자의 의도를 통해서 기억 찾기가 정체성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런데 우리들의 삶 또한 그 어린아이의 슬픔만큼이나 빨리 저녁 빛 속으로 지워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첫 문장부터 남김없이 얘기해준다.


기억을 잃어버린 내가 기억을 짜맞춘다고 아무것도 아닌 자에서 무언가로 혹은 무언가가 되는 걸까? 하는 질문을 말이다. 이 소설은 프랑스인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치른다는 바칼로레아 시험문제에 대한 저자의 답안지 같았다.

당신은 과거의 기억을 얼마만큼 정확히 가지고 있나요?


엊그제 점심에 뭘 먹었는지, 햇볕이 기울어질 때 당신과 함께 거리를 걸었던 사람의 이름은 무엇이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줄 수 있나요?

기 롤랑을 만나는 사람들이 기억해내고 소중하게 간직했던 낡은 사진을 건네는 것에 훨씬 못 미치게 나는 내 기억에 하나도 자신이 없고 또 무엇보다 나를 소중하게 기억해 줄 누군가가 있을지 조차 모르겠다.


저자(파트릭 모디아노)뤼디를 위하여와 아버지를 위하여이 소설을 바쳤다.

뤼디는 저자가 사랑했던 동생으로 전쟁이 끝난 1947년에 태어나 10살의 나이로 저녁 빛 속으로 지워졌고 유대인 혈통의 이탈리아 출신 사업가였던 아버지 알베르와 벨기에 영화배우인 어머니 루이자는 소설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회상과 아버지의 행적에 대한 오마주로 읽혔다. 파리가 독일에 점령되고 유대인계 비프랑스국적의 아버지가 겪어야 했던 또 감추어야 했던 삶에 대한 오마주말이다. 파트릭은 초기 소설부터 그래도 그 당시에 위험한 처한 사람들을 구해주려 애썼던 작은 공동체에 대한 고마움과 감격을 가져가며 동시에 기억과 정체성문제를 평생의 화두로 가졌다는 점에서 소설과 작가의 삶과 그에 대한 감정이 섞여있는 글로 읽었다.



 당시 등장했던 미술에 있어서 추상화처럼 더 이상 정확한 형태를 묘사하고 서사를 표현하는 것은 더 이상 적합한 표현방식도 아니었다. 오히려 뭉개진 형태와 색깔 속에서 창작자의 감정을 드러내는 게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법이었다면 파트릭이 사용한 표현방법은 오롯이 감정을 드러냈다. 유려하고 서정적인 문체로서.


바칼로레아 철학 시험문제가 기억과 정체성 문제를 논하라였다면 기억과 정체성을 각각 논해야 한다. 기억이란 내 기억인지 타인이 가지고 있는 조각 기억을 엮어서 만들어야 하는지 그리고 정체성을 보여줘야 한다.

전화번호부와 신사록에 기록된 기록들과 시대가 만들어준 배경 속에서 내 직업과 내이름 마저 기명으로 속이고 살았던 한 남자에게 정체성은 무엇이며 왜 찾아야 하는지를,


소설 속에서 답답증을 느낄 즈음이면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문체와 빛나는 정제된 언어들로 기꺼이 길을 계속 헤매며 도저히 찾을 길 없을 것 같은 목적지에 대한 막막함을 조금은 위로 받을 수 있었다. 가령 이런 문장에서다.

저녁 어둠이 내렸다. 저녁의 초록빛이 사위어가면서 함수호의 빛이 점점 더 흐릿해졌다. 물위에는 아직도 몽롱한 광채를 내면서 보랏빛이 감도는 그림자들이 흐르고 있었다.” (262p.)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날 저녁 어느 카페의 테라스에서 한낱 환한 실루엣에 지나지 않았다." 첫 문장부터 남김없이 얘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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