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노키오로 철학하기
조르조 아감벤 지음, 박문정 옮김 / 효형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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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읽은 피노키오는 거짓말을 하면 벌을 받는다. 착하게 살아야 한다 정도로 기억되는 동화다. 나이 먹고 안데르센 동화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의 이야기가 결말이 바뀌거나 내용이 잔혹하다는 얘기를 알고 놀랐고 흥미로웠다. 그래서 이 책도 궁금했다. 이름은 알지만 처음 읽는 조르조 아감벤 책이라 두렵기도 하지만 새로운 걸 알고 싶은 설레는 마음이 컷다. 


<피노키오로 철학하기>는 한 권이지만 두 권이기도 하다. 조르조 아감벤의 철학책과 원전에 가까운 새롭게 번역한 <피노키오의 모험>도 부록으로 실렸기 때문이다. 묵직한 양장판 책은 글 아래 꼼꼼한 각주와 번역, 원서에 실렸던 피노키오 삽화들로 읽는게 힘들진 않았다. 이걸 다 소화하고 이해하는 건 어려울 수 있어도 철학, 역사, 문학을 넘나드는 게 재밌고 피노키오라는 동화를 이렇게 해석하고 의미를 찾을 수 있구나 감탄했다. 또 편집도 좋았던 게 밑에 각주가 있어 궁금한 건 바로 찾아볼 수 있고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중간 중간 나오는데 마지막에 보면 세로로 긴 피노키오까지 감각적으로 배치되어 있어, 종이책으로 읽는 재미가 있었다. 


저자가 새로 정의하는 피노키오 이야기 중에 가장 흥미있었던 건 보통 피노키오가 나무에서 인형으로 그리고 당나귀로 마지막엔 인간으로 변하는거라고 하지만 사실, 그건 다 따로 존재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에 피노키오의 인형은 의자에 늘어져 있고 인간이 된 피노키오가 그 꼭두각시 인형을 보는 장면을 근거로 든다. 나도 인형이 따로 남아있었다는 건 기억에 없어서 다시 읽으며 놀란 부분이다. 


결국 아감벤은 피노키오가 인간이 된 적 없다고 말하는데… 이 주장에서 난 허물을 하나씩 벗는 존재를 생각했다. 나무라는 물질, 피노키오 라는 시키는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그리고 당나귀라는 동물. 하지만 인간이 꼭 그들보다 나은 존재인가 라는 의문도 들었다.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난 생각하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하지만 동물도 피노키오도 생각이 없진 않다. 그건 또 인간 위주의 생각이다. 게다가 인간이라고 동물보다 나은 인간이 얼마나 있는가. 요즘엔 인간보다 나무가 더 도움이 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니까 말이다. 


이탈리아에선 피노키오로 여러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난 살짝 발을 담근거지만 책을 읽는 내내 안 쓰는 머리를 쓰는 것처럼 재밌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연구가 있다면 찾아보고 싶고, 아감벤의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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