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른이니까, 디저트가 나오려면 기다려야 해 - 하루하루 살아가는 서른의 이야기를 담은 인터뷰
심국보 지음, 김단비 그림 / 북스고 / 2019년 8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능을 치른 것이 엊그제 같은데, 내게는 해당이 없을 것만 같던 20대 후반이라는 나이가 되었다.
혼란스럽던 20대 초중반을 거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기는 했지만, 서른이 점점 가까워져 올수록 생각이 많아진다.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걸까. 현실에 타협해서 어린 시절의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10년 전 에너지 넘치던 학창시절의 내가 타임머신을 타고 와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면 크게 실망하지는 않을까.
그러던 중 만난 Booksgo 출판사의『서른이니까, 디저트가 나오려면 기다려야 해』라는 책은 내 답답한 마음에 물을 끼얹어 주는 오아시스 같은 책이었다.
친구 사이인 심국보, 김단비 두 저자가 각각 쓰고 그린 이 책에서는, 다양한 분야에서 각각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열 명의 서른 살들을 인터뷰한다.
인터뷰이들의 직업은 벤처기업 직원, 교사, 고시생, 파티시에, (전)사보제작사 직원, 대기업 엔지니어, 대학원생, 모델 겸 유튜버, NGO직원 등으로 다채롭고, 대부분이 저자들의 아는 친구들이기 때문에 속깊은 고민들까지 물어볼 수 있었고 또 대답도 솔직하게 해주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첫 번째 인터뷰이인 벤처기업 직원 리아에게서는 공감되는 점이 많았다.
특히 지방 사람이 서울에 올라가면 느끼는 "복잡함과 시끄러움이 주는 당황스러움 그리고 외로움"에 대해 "내가 힘들 때 마음 둘 곳이 없다는 사실이 참 슬펐지" (그래서 서울에 올라온 첫 해 약간 우울증이 있었어." 라는 구절(p26)은 내가 쓴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와닿았다.
진학하며 상경한 열아홉 살의 나는 너무나 당황스럽고 외로워하면서도 스스로를 유난하다고 생각했었는데, 할 수만 있다면 이 구절을 그 시절의 나에게 보내주고 싶었다. 너만 그런 것이 아니니까, 네가 별난 것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또 "예전 어른들은 미래에 희망을 품고 오늘에 노력했다면, 우리는 오늘 노력하지 않으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함 때문에 노력하는 게 아닐까"하는 리아의 말(p31)에 오늘날 우리 청년들이 불안한 이유가 담겨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면 잘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과, '열심히 하지 않으면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으니까. 보람을 얻기 위해 정상을 바라보며 등산하는 사람과, 살아남기 위해 절벽에 매달린 채 안간힘을 쓰는 사람의 차이 정도라고 해야할까.
교사인 두 번째 인터뷰이 요정곰미는 순수하고 솔직한 아이들을 접하면서 자신을 성찰하고 반성하며 인격도야에 힘쓰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아이들의 인간관계를 '로그오프' 관계라고 생각해"(p47), "어느 순간 '아, 난 쟤가 싫어.' 이러면 그냥 로그오프하고 차단하듯이 딱 끊고 무시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과 트러블이 있을 때 그걸 해결할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달까."(p48) 하는 부분에서는 아이들의 모습을 유심히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로그오프'라는 표현처럼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 면이 있는 것 같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책 속의 인터뷰이들 중 요정곰미가 인상깊었던 점은, 또래 서른들이 일이나 가정 등에 집중하고 있는 것과 달리 내면 수양에 힘쓴다는 느낌이 강했던 점이다.
요즘 보기 드문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장 인상깊었던 인터뷰이는 디저트 셰프를 하고 있는 제과인이었다.
성적에 맞춰 대학을 가고, 안정적인 길을 택해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나와는 달리, 제과인은 자신이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집중하고,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는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길에 도전하고 배워나가는 점이 멋지게 느껴졌다.
"사실 남들과 다른 길을 걷기도 했고, 장사에 실패해서 아직 빚도 많이 있거든. 그러니까 다른 또래들보다는 경제적으로 이뤄놓은 게 없고, 좀 늦었다는 느낌도 있지. 그렇지만 지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이 일을 죽을 때까지 계속할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당장 돈을 많이 버는 건 사실 중요한 일이 아니야."(p97)라는 부분이 내 마음 속에 메아리처럼 맴돌았다.
좋아하는 일,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부럽고 멋졌다.
비슷한 나이인 지금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데, 이 방향대로 쭉 가다가 은퇴할 나이가 된다면, 제과인은 자신의 길에서 대가가 되어 있을 것이고, 나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의 노후를 보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니 방향이라는 것이 참 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시절 나는, 연구자로 좀 더 공부하고 싶은 분야가 있었지만 시간 강사의 열악한 처우와 교수 임용의 어려움에 짐짓 겁이 나 도전조차 해본 적이 없었는데, 왜 제과인처럼 좀 더 도전해보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는 말처럼, 그를 보며 나도 조금씩 도전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이런 도전, 방향성의 측면에서는 대학원생인 강유의 말도 일맥상통했다.
"지금까지는 좀 급하게 살았던 것 같아. 주변 사람들이 나보다 뭔가 앞서나가면 마음이 급해지고, 졸업이나 취업 같은 정해진 통과의례들을 빨리 해치워야 할 것 같았지. 그래서 남들보다는 조금 빠르게 스물 여섯쯤에 일을 시작했는데, 막상 그렇게 회사에 들어가서 몇 년 일하다 보니까 그냥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내가 그렇게 조급하게 살아도 어차피 남들과 똑같은 삶을 사는구나. 그렇게 행복하지 않구나.' 어차피 좀 천천히 여유 있게 살아도 다 자기 갈 곳을 찾아가잖아? 나보다 더 오래 준비했던 동기들이 결국에는 자신과 맞는 곳에서 만족하면서 일하는 것도 보다 보니까, 살면서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 (p174)
스물다섯부터 일을 시작한 나도 강유와 비슷한 생각이었고, 또 작년부터 내가 원하는 분야의 대학원을 생각해보고 있다는 점에서 공감되는 면이 많았다. 왜 그리도 급하게 통과의례를 해치우려 했을까. 나는 뭐가 그리도 불안하고 급했을까 싶었다. 늘 나를 따라다니는 승부욕 때문일까.
결혼에 관한 문제에서는 NGO모금전문가 호경의 말이 인상깊었다.
"확신하는 것이 아니에요. 선택하는 거예요", "그 사람이 정말 좋은 사람인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내가 그 사람을 선택한다면 그 이후에 뭔가 실망하거나 아쉬운 점이 있더라도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인 거야", (…) "서로에 대한 선택이자 약속" (p253) 이라는 부분이 마치 내게 해주는 말 같았다.
요즘 나는 결혼 준비를 하며 종종 짝궁에게 괜스레 서운한 마음이 생길 때가 있는데, 행복한 결혼 생활을 꾸려나가는 호경처럼 '결혼은 확신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마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러스트도 귀엽고 문장도 쉽게 쓰여서 잘 읽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은,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나만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는 자체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는 책인 것 같다.
'오춘기'를 맞은 주변의 친구들에게도 이 책,『서른이니까, 디저트가 나오려면 기다려야 해』를 선물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