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린생활자
배지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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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심코,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고 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소개를 보고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특히 궁금했던 부분은 태극기 부대 어르신들이나 박카스 할머니 등, 노인들의 생각들이었다.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해해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으로 『근린생활자』를 펼쳤고

이 책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바라보게 되었다.

이야기들은 전반적으로 너무나 아프고 어둡지만, 그에 비해 잘 읽힌다.

감정을 과잉되게 표현하지 않은 덤덤한 문체로, 묘사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가슴에 꽂힌다.

지극히 현실적이고, 마무리조차도 현실적인 각각의 이야기들을 읽어내려 가면서

가슴 속에서 묵직한 돌이 나를 깊은 물 속으로 끌어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소설 속 인물들에게 '안전', '안정'은 백만 광년쯤 먼 이야기다.

젊은 엘리베이터 수리기사, 태극기 부대 할아버지, 위해물품 매립기사, 발전소 도수관 청소부, 박카서 할아머니, 재고담당 영업사원으로 좌천된 왕년의 우수연구원까지.

이들 모두가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대부분 미련해보일 정도로 우직하고 성실하다.

결국 이들이 처한 불행한 삶은 이들의 불성실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여러 편 중 위해물품 매립기사의 이야기인 「그것」,

도수관 청소부들의 이야기를 다룬 「삿갓조개」가 가장 인상깊고 가슴이 아팠다.

이 두 편은 읽고 난 뒤 마음이 너무 무거워서 다시 책을 펴기까지 시간이 더 걸렸다.

「사마리아 여인들」을 읽으면서는 영화 <죽여주는 여자>가 생각났다.

영화를 통해 박카스 할머니, 트랜스젠더 등의 사람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단편에서는 보다 생생한 시선으로 생존 그 자체를 위한 할머니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에 부끄럽기도 했다.

지극히 여유있고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청년으로서,

타인의 아픈 이야기를 스낵컬처처럼 소비하고 있는 위선자는 아닐까 하고 말이다.

이 작품을 읽고 마음이 심해 속으로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해도,

뒤돌아서면 나는 또 밝은 해변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런 내게 이 책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생의 불안정 위에서, 절벽 위 줄타기를 하는 것만 같은 이들을 보면서

그들의 불성실을 탓하거나 나의 행운에 안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사회의 어두운 면모를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없던 이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 삶 속에서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나쁜 마음들을 돌이켜보고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을 하나하나 알아가다 보면, 두둔하지는 못하더라도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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