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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 - 부마민주항쟁 ㅣ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다드래기 지음,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기획 / 창비 / 2024년 5월
평점 :

사실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한국의 암울한 시기에 일어난 민주화 운동을 다루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긴 것은 사실이다.그리고 잔혹한 진압과 그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의 사연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분들의 희생을 보며 누군가는 꼭 알아야하고, 또 알려야하는 소명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비루하지만 책을 읽고난 뒤의 소회를 남겨보기로 한다.
이 책은 1979년 10월 16일부터 20일까지 부산과 마산의 각 지역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인 '부마민주항쟁'을 그린 책이다.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재구성했지만, 짧은 분량 속에서 부마민주항쟁의 이야기를 풀어내야했기에 주요 등장 인물은 작가의 상상에 의해 창조되었다.
상상이라해도 작가의 철저한 자료 조사와 고증을 통한 스토리텔링으로 구상되었기에 당시 실제 있었던 여러 인물들의 상황과 이야기를 한데 모은 것이지 명백한 허구는 아니다. 작중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당시 부산과 마산의 여러 인간 군상들을 대표한다 생각하고 읽어내면 될 것 같다.
230여쪽의 짧은 볼륨이지만 5일간의 부마항쟁의 경과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중간중간 배경 일러스트들도 당시 현장 사진을 보고 그려 현실감을 높이고 몰입을 도왔다.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책 답게 부마항쟁이 어떠한 민주화 운동인지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다.
다만, 부마민주항쟁의 이전의 정치적 상황은 분량 관계상 생략한게 아쉬워서 혹시나 이 책을 보기 전이나 보고난 후에 도움이 되도록 아래에 간략하게 요약해본다.
부마민주항쟁의 원인
1960년 부정 선거를 규탄하는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장면 정부가 집권하게 되었다. 국민들은 비로소 민주주의가 이룩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으나, 이는 곧 박정희의 5·16 쿠데타로 꿈처럼 사라지고 만다.
박정희는 무능한 정치인들을 대신해 잠시 국정을 운영하다가 안정이 되면 물러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뒤로는 중앙정보부를 설치해 언론을 장악하고 다른 정치 세력들을 탄압했다. 그리고는 자신이 한 일방적인 약속마저 어기고 민주공화당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출마하고 곧, 5대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후 경제 발전을 내세웠고 이런 그의 정책은 한 때지만 국민의 지지를 받아 6대 대통령으로 연임하게 되었다. 그의 야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대통령의 3선 연임을 가능하도록 6차 개헌을 통해 헌법을 뜯어고치고 7대 대통령 선거에도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미 독재 체제를 유지하려던 이승만을 몰락시켰던 경험이 있는 국민들은 박정희 정부의 이러한 움직임을 좌시하지 않았다. 국민들의 지지는 새롭게 떠오른 신민당의 김대중에게 있었다.
박정희 정부는 그를 견제하기 위해 막대한 금권 개입과 부재자 투표를 조작하는 등 부정 선거가 되도록 개입했고 이에 김대중은 당시 8%의 차이로 낙선하고만다. 그러나 국민들의 지지는 여전히 김대중과 신민당, 그리고 또 하나의 신진 정치인인 김영삼에게 있었다. 이런 신민당의 선전이 계속 된다면 차후 자신의 권력 연장이 불가능해지기에 박정희 정부는 김대중과 김영삼을 끝없이 견제하였고, 결국 유신을 선포하고 김대중을 납치하고 감금하기도 했다.
유신을 선포하고 제정된 유신헌법은 대통령이 국회의원과 법관을 임명케했고, 헌법 또한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초헌적 조치였다. 그리고 대통령의 중임 제한을 철폐해 영원토록 권력을 누리고자 했다.
이제 국민들은 참지 않았다.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분위기 속에서 첫 불씨는 부산과 마산에서 터져나왔다.
수많은 지역 중에서도 부산과 마산에서 가장 먼저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된 배경에는 물론 박정희 정권의 독재 체제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그 밖에도 불씨를 당기게 된 정황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부마민주항쟁 직전에 YH사건으로 고초를 겪은 김영삼의 정치적 고향이 부산이기도 했고, 당시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열악한 노동 환경으로 인해 노동자들의 불만이 크기도 했다. 또한 당시 석유 파동으로 인한 불경기로 급격한 경제 성장 속 숨겨져있던 빈부격차가 드러났다는 점도 이유 중에 하나일 것이다.
부마민주항쟁의 경과
1979년 10월 16일, 전 날 부산대학교에 배포된 민주선언문의 내용대로 5천여명의 학생이 봉기하여 부산시청과 남포동, 광복동 일대에서 유신철폐와 독재타도를 외치기 시작했다. 오후부터는 다른 대학과 청소년들도 합류하였고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숨겨주거나 보호해주었다. 퇴근 시간 이후에는 회사원과 노동자, 상인들도 합류하여 민중 항쟁으로 발전하였다. 시위대는 파출소를 습격하고 박정희 사진도 철거하여 불태우기도 했다.
다음 날인 10월 17일, 시위의 온상지인 부산대학교에는 강제 휴교령이 내려졌다. 그러나 전날처럼 부산대 교정에서는 들불같은 움직임이 일어났다. 경찰들은 최루탄과 곤봉으로 시위 참가자들을 잔혹하게 제압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폭행을 당했고 경찰에 끌려가 가혹한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
10월 18일, 0시를 기해 박정희 정권은 이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계엄령은 일정한 지역의 행정권과 사법권의 전부 혹은 일부를 군이 맡아 다스리도록 하는 대통령령으로 군대의 개입을 명시한 것이었다. 곧 부산 지역에는 특전사 2천여명이 파견되었다.
그러나 한번 일어난 불길은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고 마산으로 번졌다. 경남대학교의 학생들을 중심으로 부산처럼 학생들과 시민들이 한데 모여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를 규탄했다.
당시 부산과 마산의 이러한 격화된 시위 양상에 군은 특전사 이외에도 해병단도 계엄군에 합류시켰고, 당시 고위 군 관계자(전두환을 포함한)들은 빠르고 강경하게 진압을 하기 위해 강력 대응에 나섰다.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당시 시위에 참가하지도 않았던 양민들을 불심검문하고 닥치는대로 폭행해 잡아 들이는 군의 행동에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고, 결국 건설노무자였던 유치준씨가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다. 이 날 군은 부산에서 약 천 여명을 강제로 연행하였고 10월 20일, 마산과 창원 등지에서는 500여 명을 추가로 연행해 총 100여 명을 군사재판에 회부하고 군 부대가 주둔하여 시위는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로부터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10월 26일, 부마민주항쟁의 진압을 둘러싼 박정희 정권의 내부 갈등이 격화되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박정희 대통령을 궁정동 안가에서 암살하며 부마민주항쟁은 마무리 되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2020년 이래로 [만화로 보는 민주화운동] 시리즈를 기획해 세상에 내놓았다. 순서대로 제주 4·3을 다룬 <빗창>, 4·19혁명을 다룬 <사일구>, 5·18 민주화운동을 다룬 <아무리 얘기해도>, 6·10민주항쟁을 다룬 <1987 그날>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다섯번째로 부마민주항쟁을 다룬 것이 <불씨>이다.
부마민주항쟁은 4·19혁명 이후 일어난 대규모 민중항쟁이고, 7개월 뒤 광주의 5·18민주화 운동에 영향을 준 분기점이 된 사건이다. 그러나 다른 민주화 운동에 비해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물론 당시 계엄군이 언론사에 주둔하고 기사를 통제했기 때문도 있다. 부산과 마산이라는 한반도 중심에서 다소 치우친 위치였기에 알음알음 입소문이 퍼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그리고 무엇보다 연달아 일어난 박정희 대통령의 암살과 전두환 군부의 12·12 쿠데타로 정국이 혼란스러웠기에 5일간의 단순한 소요로 받아들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가 아닌,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토록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관심도가 낮은 것은 개인적으로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 때문일 것이라 확신한다. 신군부에서는 당시 부산과 마산을 포함한 경남 지역의 민주화 세력을 분쇄시키고 자신의 정권 기반을 확립하기 위한 명분으로 81년 부림사건을 조작한다. 부림사건은 영화 <변호인>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던 사건으로 부산의 학생과 교사, 회사원들을 대상으로 불온서적을 읽었다는 명목으로 이들을 잡아들여 잔혹하게 고문한다. 전 대통령인 노무현이 이들의 변호를 하기도 했다. (당시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불온서적으로 지정했는데, 현재에 와서는 사학도라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고 청소년 필독도서로 널리 알려진 것을 보면 하급의 용공조작이 명백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이 부림사건으로 인해 부산 지역에서의 민주화 세력이 크게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고, 이후 김영삼으로 대표되는 그 지역의 민주 인사와 상도동계로 불리는 부울경 기반의 정치인들이 90년 3당 합당을 하며 지역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 3당 합당으로 만들어진 민자당이 지금의 국민의 힘이라는 보수정당으로 이어졌고 이들은 박정희 대통령에 우호적인 스탠스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재규명과 보상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양산이 뒤집히면 정권이 바뀐다는 자부심을 가진 지역민들과 이를 대표하는 정치인들 '일부'가 정치적 논리로 대한민국 역사에 획을 그은 민주 항쟁을 경시하고 심지어 잊혀지게 하려는 모습이 참으로 우스울 따름이다. 목숨을 걸고 독재에 맞섰던 이들을 빨갱이로 몰면서까지 자신들의 그 정당에 대한 지지를 합리화하고 싶은가? 차라리 솔직하게 부자감세와 지역에 배당될 예산때문이라고 솔직해졌으면 싶다 막말로 그렇게 옹호하던 그 대통령은 차지철이 주장한 '한반도 버전의 킬링필드'를 실현하려 했으니, 암살되지 않았다면 광주의 참상이 부산과 마산에서 벌어졌음이 명백한데 참..답답한 마음이다
최근 김재규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유신 독재 체제를 끝낸 것은 그라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물론 재조사 결과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해왔고 부마항쟁에 대한 강경 진압을 주장하는 차지철과 박정희에 반대의 목소리를 낸 것만큼은 사실로 보인다. 그의 암살로 강제적인 정권의 교체는 이루어냈다는 점도 의의가 있기는 하고. 그러나 이러한 불완전한 결말은 결국 권력의 공백을 차지하려는 신군부의 등장을 막지 못했고, 신군부가 그로부터 몇 개월 후 광주에서 끔찍한 참상을 저질렀기 때문에 완전하게 유신 독재체제를 마무리했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불씨>에서는 김재규에 대한 갑론을박을 피하기 위함인지 그의 행동에 대해 자세하게 풀어내지는 않는다. 다만 김재규가 부마항쟁의 진압을 둘러싸고 박정희 정권 내부에서 갈등을 빚었다는 것과 그만큼 부마항쟁이 유신 독재 체제에 커다란 균열을 가져왔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결국 부마항쟁의 불씨가 이후 광주로 이어지고 1987년의 6월까지 이어져 민주주의의 확립을 가져왔다는 명백한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나는 사학도였고, 사학도라면 사회의 불의에 분연하게 일어나 맞서는 것이 도리라고 믿었다. 물론 지금도.
그래서 이명박 정부 시절, 여러 사회 문제에 대응하여 서울 소재 대학생들의 연합 시위에도 여러번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처음 겪은 시위는 거세고 무서웠다. 민간인처럼 위장한 사복 경찰들이 사진을 찍어 사찰하니 얼굴을 가리라는 수뇌부의 외침도 무서웠고 시위대를 자신들의 정치 세력의 확장에 이용하려는 찐 종북파들도 무서웠다. 방패로 거세게 밀어대는 전경들도 무서웠고, 경찰 버스로 세운 장벽에 가려 끌려가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더더욱. 만약 잡히게 되면 반드시 여경을 요청하고 이 변호사에게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 받을 때는 눈물이 찔끔 나올정도로 두려웠다. 청와대 앞에서 평화롭게 앉아 민중 가요를 부르던 늦 가을, 갑작스레 쏟아진 차가운 물대포를 맞으며 뒤로 넘어가지 않게 동기들과 손과 팔을 엮어 스크림을 짜서 울면서 버티기도 했다. 역대 민주화 운동이 그러했듯 학생들이 이렇게 나서자 시민들도 동참했다. 퇴근해서 합류하던 회사원들과 유모차를 끌고 시위에 합류하는 엄마들, 시위대의 노래소리에 클락션으로 박자를 맞추던 버스와 택시 기사님들 모두 불타는 정의감만으로 나선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때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의 한가지 목적만은 일치했다. 이 움직임으로 우리의 미래는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1979년의 부산과 마산 시민들도 그랬으리라 믿는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나라와 미래를 위해 나섰을 것이다. 비교적 민주화된 21세기에도 무서웠는데 그 시절에는 오죽했을까. 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보상받지 못했다. 국가는 지금까지도 구체적인 유공자관련법과 보상안을 마련하지도 못했다. 부마민주항쟁의 강력 탄압을 지시한 이들의 책임 소재도 가리지 못하고 피해자에 대한 예우와 지원도 미비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민주주의 국가라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민주화 운동'인 부마민주항쟁에 대한 패싱은 이제 그만하고 어서 빨리 재조사와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적절한 보상안이 나오기를 바란다.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제품만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작은 불씨라도 바람을 타면 멀리 날아가기 마련이다.
오빠가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이틀째 날,
부산대에는 휴업령이 내려졌다.
그런데 진숙아,
어떻게 신문이나 뉴스에는 단 한줄도 그 얘기가 없을까?
니 그그 아나?
마산에서 데모가 일어나면 정권이 바뀐대이.
빨갱이라 그런게 아이다!
빨갱이라 3선개헌 반대하고 유신 반대하는게 아이다!
옳은 말은 옳다 하고 틀린 말은 틀렸다 하고
그런 기 우째 그냥 빨갱이가 된단 말이고?
그거는 사람들 사람들의 권리인 기라!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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