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그림책 숲 37
밥 길 지음, 민구홍 옮김 / 브와포레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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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석 달이 되었다.

그 즘에 이 책을 선물받았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참 동안 책을 펼쳐보지 못했다.

이유가 뭘까?

'선물'을 허투루 열어보고 싶지 않은 맘이었을까?

쫓기듯 준비에 허덕이던 강박 같은 강의 준비가 없는 오늘이 되어서야

이 책을 비로소 찬찬히 보게 되었다.

생일을 2주 앞둔 아서는 아빠 옷장에서 뭔가를 찾다가 선반 위에 있는 선물 상자를 발견한다.

반짝이는 별무늬 포장지로 싸여졌고 빨간 리본으로 묶여 있는 상자.

아서는 틀림없이 깜짝 생일 선물이 들어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선물은 케이크 아닐까?

고리 던지기 세트라면 매일 연습해서 세계 챔피언이 될 거야.

돛단배라면 맨 앞에 밧줄을 매달 거야.

트랙터라면 친구 트럭에 연결해서 차고까지 끌고 가볼 거야.

볼링 세트라면?

포근한 곰 인형?

초콜릿? 알록달록한 껌? 새 가방? 일본에서 만든 전등?... 등등등

그렇게 아서는 상자 속의 어떤 선물이 들어있을지 상상하며 나름의 기대를 키워간다.

아서는 생일이 돌아 오기까지 매일 선물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한다.

영영 오지 않을 것 같았던 생일 전날,

아서는 현관에서 엄마가 어떤 아주머니와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는다.

아주머니는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장난감을 모으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아서는 아빠 옷장에서 선물을 꺼내와 아주머니에게 준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건 2010년이라고 한다.

2010년 그 당시엔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전 세계를 휩쓸던 디지털 시대가 본격화하던 시기였고,

SNS에선 언박싱영상이 인기를 끌던 때였다고 한다.

작가는 상자 속 물건이 아닌,

뜯지 않은 상자 속에 대한 상상력과 나눔의 가치를 전한다.

상자를 바라보며 펼치는 상상의 나래,

어떤 물건이 나올지 아서 자신의 욕망이 담겨있으면서도 아서 자신의 감정을 놓치지 않는다.

파티의 즐거움, 연못 위의 돛단배를 타는 모험, 배구공으로 친구들과 함께하는 어울림 등 물질(물건)에서 그치지 않고 관계와 경험을 섬세하고 담아내고 있다.

아날로그 시절,

편지의 오고 가는 기다림을 즐겼던 나는 편지가 오면 바로 뜯지 않았었다.

주변의 일을 다 끝내고 편지 커터 칼로 편지를 뜯기 전까지 상상 속에서 여러 짜릿함을 즐겼었다.

그 즐거운 짜릿함이란 편지를 주고받았던 분들은 다 알지 않을까?

오래전 신혼 시절에 시어머니께 편지를 드렸던 기억이 있다.

답장은 없으셨지만 어머니는 돌아가시면서 우리 가족에게 큰 답장(선물)을 주고 가셨다.

세대차를 극복하지 못했던 남편은 몇 년 만에 딸을 만나게 되었고,

남편과의 결혼을 후회한 걸로 알던 중매 아저씨는 잘 사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확인하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동안 못 만났던 지인들도 만나게 되며 회포를 푸는 자리,

어머니가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 아니었을까 한다.

책 면지에 있는

"내가 먹는 사과보다 남에게 건네는 사과가 더 값지다."라는 글 귀.

가져도 가져도 배부르지 않는,

가진 게 많은데 여전히 허전한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오늘의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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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력 #욕망 #즐거움 #어울림 #모험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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