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존 버거 지음, 김우룡 옮김 / 열화당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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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삶에 대한 애정 '응시'와 '포착'

마음을 담는, 그리거나 찍거나

 

1996년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교 연구팀이 짧은 꼬리원숭이 두 마리의 532개 뉴런을 뇌파로 기록했다. 원숭이 B가 땅콩을 잡는 걸 본 원숭이 A의 뇌세포들은 마치 그 행동을 직접 하는 것처럼 변화하는 걸 발견한다. 1978년 인류가 발견한 일명 거울뉴런의 힘이다.

 

사진, 그림을 본다는 것은 바로 이 거울뉴런을 통한 간접경험일 것이다. 뿐만 아니다. 여기 누군가의 애정어린 관심을 통한 순간의 포착이 우리에게 또 다른 선물을 선사한다.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 원제 포토카피(사진복사)는 시각적 묘사와 설명을 통해 사람과 일상의 풍경을 그려냈다. 사진을 보는 것과 다른 것은 글의 흐름에 따라 장면이 느리게 완성되며, 시공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존 버거가 만난 인물들은 인류 누구나가 만날 수 있는 인물과 풍경이었다. 다만 존 버거의 애정어린 시선을 통해 우리가 볼 수 없었던 일상과 삶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무릎에 개를 올려 놓고 있는 여인, 라코스테 스웨터를 입은 남자, 턱을 괴고 있는 젊은 여자, 지하철에서 구걸하는 남자 등

 

오마 가는 버스에 만나 별의별 얘기로 수다를 떨던 17세의 한쪽 귀가 먼 수다쟁이 캐슬린. 감옥에서 책을 읽어주며 만난 안경 쓴 스웨터를 입은 죄수. 대머리 비둘기에게 젖병으로 우유를 먹이는 사프카를 쓴 노숙자 여인. 모성을 담는 사진가

 

존 버거가 묘사한 인물과 풍경은 어느덧 읽는 이가 경험했던 어떤 다른 사람과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떠오른 장면은 물끊는 주전자를 얹은 난로 곁에서 집어든 한장의 사진마냥 촉촉한 온기로 전해진다.

 

두껍고 뻣뻣한 종이로 된 부대를 비우려면 흰 실로 봉합된 곳을 헐어야 한다. 아무 데나 칼을 대서는 안 된다. 꼭 한 군데 매듭을 정확히 끊어야만 실 전체가 힘들이지 않고 풀려 나온다. 정확한 장소에 칼을 대면, 그 실을 당기는 재미가 마치 팽이를 돌릴 때와 같다.”

 

때로는 낮 시간에 조깅을 한다. 미니스커트의 젊은 여자들은 손목을 튕기고 손가락을 흔들면서, 경멸과 무시라는 양보할 수 없는 저들만의 권리를 확인한다. 간혹 바에 앉아 있는 손님이나 일광욕을 위해 아내 손을 잡고 벤치로 향하는 늙은 남편들 외엔, 이른 오후에는 남자들을 거의 볼 수 없다. 제대로 된 남자들은 좀 더 시간이 지나야 나타난다.”

 

일상의 관심과 애정에서 비롯된 관찰이 삶에서 어떤 의미인지 글 속에서 살펴보자.

 

"데생으로 돌아가기 위해 사진은 이십년 전에 접었어요. 사진은 적확한 순간에 방아쇠를 당기는 일, 손가락을 누르는 일일 뿐이에요. 어떤 것도 사라져 없어지지 않아요. 당신이 본 것은 늘 당신과 함께 있어요."

 

데생에 대해 말하고 싶군요. 데생은 명상의 한 형태입니다. 데생하는 동안 우리는 선과 점을 하나하나 그려 나가지만 완성된 전체 모습이 어떤 것일지는 결코 장담할 수 없습니다. 데생이란 언제나 전체의 모습을 향해 나아가는 미완의 여행이지요.”

 

사진은 끝없는 응시로부터 나오는 무의식적인 영감이다. 사진은 순간과 영원을 붙든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내가 느끼는 연대감은 너무도 커서, 한 개인이 어디서 태어나고 어디서 죽는가는 내게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마음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눈에 대한 끊임없는 훈련도 있다.”

 

'당신이 본 것이 당신과 늘 함께 있다'는 말을 믿는가.

<존 버거의 글로 쓴 사진>을 통해 당신이 본 것이 어떻게 기억되어 당신과 함께인지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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