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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보통 사람이 아닌, 드 보통이 들려주는 진부한 사랑에 대한 놀라운 발견
보통사람이 늘 빠지는 사랑, 보통 사람이 아닌 알랭 드 보통을 만나면 놀라운 발견이 된다. 일상을 남다른 눈으로 해석하는 비상한 재주를 가진 드 보통이 지극히 평범하고 진부한 스토리에 도전했다. 우리나라 나이 25살에 쓴 처녀작이란다. 생각 많은 어느날 새벽, 잠을 깨서 다시 든 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다. 보통의 통찰력을 빌어, 사랑의 본질을 바라보길. 또한, 내가 겪거나 했던 사랑이란 이름하의 행동들.. 그 은밀한 내면을 들여다볼 기회, 과거란 이름에 묻힌 실수가 앞으로 나가는 지혜가 되길 바라며.
사랑에 있어 한번쯤 겪었을 24가지 담론
1인칭 화자 주인공과 연인 클로이와의 만남부터 사랑하고 헤어지는 과정을 일련의 사건과 사건에 대한 철학적 고찰로 풀어헤쳤다. 아리스토텔레스, 파스칼 등의 생각을 인용하고 분석했는데... 미스터리한 건, 사랑하면서 저런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면 쓸 수 없는 사소하고 낯간지러운 이야기들인데... 직접 경험하면서 이야기를 써내려갔다고 생각하기엔 너무나 냉철하다.
* 밑줄친 단어들은 24가지 담론의 제목들이다.
운명론에서 편집적 의미찾기
‘사랑에 빠진다. 만날 확률이 없었는데.. 이건 운명이다.’ 첫만남은 낭만적 운명론으로 사랑을, 만남을 정당화한다. 아이러니한 건, 필연이라고 느끼지 않게 된 순간, 사랑 또한 끝난다는 것. 우리의 실수는 사랑하게 될 운명을 어떤 주어진 사람과 사랑할 운명과 혼동한다는 것이다. 운명론에 힘이 실린 사랑이란 놈은 필연적 무지를 배경으로 이상화된다. 이후 사전에도 나와있지 않는 의미찾기가 시작된다. 악착같이 실마리를 찾는 사냥꾼이 되어 의미를 읽는 편집증 환자가 된다.
사랑의 덫, ‘친밀감’이 ‘소유권’이 되면
어긋나기 시작하는 건, 사랑의 그 본질적 특성. 마르크스주의(희극인)때문. 줄기차게 구애했는데 정작 상대가 넘어오면 매력이 사라진다는 것. 이뿐 아니다. 온통 그녀뿐인 시간이 지나 언젠가 ‘나’가 등장하면서 취향과 의견의 사소한 차이로 위협 당한다는 것(틀린 음정). 상대를 자신의 이상형에 더 끌어들이려는 일상적 시도는 친밀감을 얻지만, 친밀감이 소유권으로 전락하면 자유를 방해(사랑이냐 자유주의냐)하는 방해꾼이 된다.
흔들리는 사랑이 그 끝나갈 때
이밖에 사랑이 흔들리는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드 보통이 얘기한 담론에서 몇 가지 원인을 찾아본다. 사랑의 요구가 해결되었다고 갈망의 요구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므로 “마음의 동요”가 인다. 일상의 시간을 벗어난 여자 혹은 남자가 갈망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 사랑이 흔들릴 땐 다른 사람들(특히 친구)이 있으므로 해서 동요가 완화된다. 연속성만 인지하는 사람들에게 공동의 운명에 호소함으로써 현재는 강화되기 때문이다. 갈망뿐만 아니다. 어처구니없게도 행복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갑작스런 공포감은 안헤도니아라는 병까지 일으킨다. 내 삶에서 행복을 빚어낸 요소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비극을 무하마드 2세 이야기를 통해 보자. “하렘의 한 아내를 사랑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자 즉시 그녀를 죽이게 했다. 다른 사람에게 영적으로 종속되어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인간에게 기초하여 자신의 삶을 구축한다면 위험은 피할 수 없다. 사랑하면서 생기는 불안은 사랑이 사라질 수 있는 상황에서 오는 불안을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연애에 있어 우리가 의식적인 통제를 할 수 없단 사실. 사랑의 종말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인 충돌 사이의 충돌(선악을 넘어)임에도 불구하고 윤리적인 잣대로 재단되며 사랑과 배신을 함께 겪어야 하는 예수콤플렉스에 빠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에 대한 응답을 강요하는 낭만적 테러리스트가 되고 왜 나에게만 하면 이런 아픈 일이 생기나 하며 세상을 놓아버리는 낭만적 운명론에 빠지기도 한다. 극단적 운명론은 내 죽음에 대한 타인의 반응을 보자고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이후 '영혼은 낙타의 속도로 움직인다'는 아랍 속담처럼 노스탤지어에 젖어 느릿느릿 따라오던 영혼도 뒤따라오지만 어느 순간 생략(지우기)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우린 그 일을 반복한다...
사랑에 대한 냉정하지만 아픈 교훈
다른 사람을 험담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겐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충성을 지키지 않아야 서로에게 충성해지는 사랑. 사랑의 이름으로 상대의 자유를 뺏으려거나 방해하기도 한다. 자기혐오에 빠진 사람은 어떤 상대를 만나게 되더라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누군가를 찾아 헤맨다. 사랑하는 사람은 객관적 실재와 관련 없는 내적 환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원했던 것은 사랑이 아니라, 그저 믿을 수 있는 어떤 사람일지도.
사랑에 대해 ‘왜’로 질문해, ‘어떻게’로
책을 읽고 난 뒤의 느낌을 비유하자면, 주황색 표지를 벗겨내고 마주한 양장본 본연의 모습이랄까. 한 쌍의 남녀가 판타지의 한장면처럼 허공에 떠 서로에게 잇닿기 위해 손을 내미는 표지를 벗겨내니 하얀색에 가까운 단단한 양장의 모습이 드러난다. 멀어져간 사랑이 아니라 좀 떨어져서 바라본 사랑, 평온함마저 느껴진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라는 대책 없는 질문으로 시작된 사랑 이야기가 끝났다. 문제를 파악하는 것과 문제를 해결하는 것. 지혜와 지혜로운 인생은 크게 다르다. 사랑이 미친 짓임을 안다고 해서 그 병으로부터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그래서 금욕주의가 되기도 하고 프로이드의 이름으로 자기자신을 분석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은 비합리적인 만큼 불가피한 것이다. 그래서 유치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깊은 고찰이 어떤 결과를 낳을까. 사랑도 기술이라면 그 본질을 보는 것이 공부의 첫걸음 아닐까. 보이면 깨닫나니, 판타지는 깨지더라도, 반복되는 실수와 후회되는 사랑은 멈출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