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 정호승 시집 창비시선 362
정호승 지음 / 창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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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승의 인생 <여행>,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으므로...

 

시인은 있는 눈으로도 보지 못하는 우리의 눈이 되어준다. 더 많이 보기보다 제대로 보려는 노력, 타고나지 않았다면 시인의 눈을 빌려봄도 좋을 듯하다.

 

시인의 “시”를 통해 동시대를 사는 한 사람의 마음을, 인생을 여행하고 더불어 내 영혼을 울린 시구에서 나를 반추해 본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의 정호승 시인이 등단 40주년을 스스로 기념하며 낸 11번째 시집 「여행」이다. ‘시’가 자신 인생 여행의 동반자라는 그의 시집은 시집 제목과 동일한 시 “여행”으로 말문을 연다.

 

“사람이 여행하는 곳은 사람의 마음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오지뿐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떠나라
...
설산의 창공을 나는 독수리들이
유유히 나의 심장을 쪼아 먹을 때까지.."

 

아흔넷의 아버지 죽음을 앞둬서 일까, 시인의 시는 어느 때보다 죽음과 이별에 관한 시가 많다.

 

“잘 있어라 눈빛은 차마 너를 보지 못하고 잘 가거라 마른침을 삼키며 손을 흔든다는 것..

그래도 어디에서든 그 어느 때든 다시 만나자는 것”

<손을 흔든다는 것>

 

“당신이 떠난 지 언제인데 아직 신발 정리를 못했구나..

산 자의 신발을 정리하는 것과 죽은 자의 신발을 정리하는 일이 무엇이 다르랴”

<신발정리>

 

“토요일이 되면 모자를 벗는다. 구두를 벗는다.

호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버린다...

인생이란 낯선 여인숙에서의 하룻밤...

잠들다 일어나 잠들지 못한다”

<토요일>

 

“면도를 더 정성껏 해드려야지 손톱도 발톱도 깎아드리고 내가 누구냐고 자꾸 물어보아야지.

웃지는 말아야지.. 가시다가 뒤돌아보지 않으셔도 된다고..

텅빈 아버지의 입속에 마지막으로

귤 향기가 가득 아버지의 일생 채우도록 귤 한 조각 넣어드리면서..”

<아버지의 마지막 하루>

 

유독, 손과 발에 관한 시가 많다.

 

언젠가 사라질 존재와 돌아오지 않을 여행에 대한 고찰이, 살아있는 동안 해야 할 일들로 이끈 것인가. 손과 발의 행위, 묵상과 예의로 이어진다. 손과 발에 대한 이야기는 ‘신’과 ‘이웃’에 대한 감사와 자신의 무관심에 대한 후회로도 비쳐진다.

 

“가장 먼저 어머니의 손등에 입을 맞출 것

일년에 한번쯤은 흰 눈송이를 두 손에 고이 받을 것

들녘에 어리는 봄의 햇살은 손안에 살며시 쥐어볼 것..

손에 쥔 칼은 항상 바다에 버릴 것

손에 많은 것을 쥐고 있어도 한 손은 늘 비워둘 것

내 손이 먼저 빈손이 되어 다른 사람의 손을 자주 잡을 것..

노동의 굳은살이 박인 두 손을 모아 홀로 기도할 것”

<손에 대한 예의>

 

“인생을 돌아다닌 내 더러운 발을 씻을 때 나는 손의 수고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배가 고파 허겁지겁 밥을 먹을 때에도 손의 고마움을 고마워하지 못하고...

발을 씻을 때 손은 발을 사랑했습니다”

<손에 대한 묵상>

 

“굵은 핏줄이 툭 불거진 고단한 발등과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 같은 발바닥을 쓰다듬으며

깊숙이 허리 굽혀 입을 맞춥니다.

그동안 다른 사람의 가슴을 짓밟지 않도록 해 주셔서

결코 가서는 안되는 길을 혼자 걸어가도

언제나 아버지처럼 함께 걸어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발에 대한 묵상>

 

죽음을 목전에 둔 아버지로 인해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다는 자연의 섭리를 깨닫은 시인은, 지나간 인생을 반추하는 자기반성적이고 때론 혹독한 비판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시로써 토해낸다. 시인 덕분에 나의 손과 발을 성찰한다. 가족의 죽음을 앞둔 이에게 선물하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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