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로드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나는 좀 다른 것을 보았다 

<더 로드>는 2007년 풀리처상을 수상한 코맥 매카시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매카시가 일흔이 넘겨 아홉 살 아들과의 여행에서 문득 수십, 수백년 후에 이 곳은 어떻게 변했을지 상상하다가 탄생시킨 소설이라고 한다. 아마도 자신이 죽은 뒤 남겨질 아들을 생각한 것 같다.

소설을 읽지 않았기에 원작과의 비교는 않겠다. 사실 소설을 영화화 것은 이미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보는 것이 좋다 생각한다. 읽은 사람이라면 비교가 될테지만.

감독에 말에 따르면 아버지와 아들에 관한 이야기라 한다. 태그라인 ‘전세계를 사로잡은 인류 마지막 사랑!’을 보더라도 이 영화가 내세우고 있는 것은 ‘부성애’ 그러나 나는 조금 다른 것을 보았다.

* 남겨진 문명이라곤 코카콜라. 

나무도 쓰러져가는 잿빛 세상, 이유는 중요치 않다  

유난히 환한 햇살, 금발의 사랑스런 여인의 얼굴 뒤로 보랏빛 꽃내음이 풍긴다. 그러나 이건 꿈이다.

유난히 ‘행복한 순간을 꿈꾸는’ 아버지(존 힐코트)와 ‘악몽을 꾸는’ 아들(코디 스미스 맥피).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한다.  ‘악몽을 꾸는 건 살아있다는 증거야‘ 
 

나무도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불타고 쓰러져가는 잿빛 세상.

이렇게 살 수 없다며 어린 아들을 남기고  ‘죽음’ 앞으로 걸어간 사랑스런 아내.

하지만, 나(아버지)는 살아야 한다. 그에게 신과 같은 아들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세상이 멸망하게 되었는지 설명은 없다.

사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언젠가 그런 날이 올테니까.
세상이 멸망했다고 느낄,
모든 걸 잃어버렸다 느낄 순간은 언제든 올 테니까.
그리고 우린 ‘죽음’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

 

모든 걸 잃었을 떄,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살아야 하기에 ‘절망’을 느끼는 것조차 사치스럽다

인간에게 사냥 당하고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살’을 선택한다. 

인간이기에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선택이 ‘자살’이라니.

어두운 화면과 침울한 주제에 유난히 극장은 말 한마디 새어나오지 않는다.

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나라면, 저와 같은 죽음의 세상에서 과연 ‘삶’을 선택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쥐어진 인간다운 선택, ‘자살’ , 무엇이 더 인간적인가

각기 다른 쓰임을 보이는 ‘총’에 주목한다.

인간을 사냥하기 위해 쓰는 총, 다른 이를 죽이긴 하지만 본인들은 산다.

아버지와 아들에겐 권총이 있다. 두발의 탄알이 든. 이 총은 타인에 의한 죽음의 순간 자살을 위한 것이다. 인간답지 않은 고통의 죽음에서 인간답게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게 하는 총이다.

마지막 가족이 가진 산탄총?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사람을 경고하기 위한 총 같다.

똑같은 ‘총’을 각기 달리 사용하고 있다.

특히 아버지와 아들의 총은 인간적으로 죽기 위한 도구가 된다.

아버지는 그에게 남겨진 의무 ‘아들을 지키기 위해’ ‘남쪽’으로 가야 하기에 ‘죽음’도 미뤄진다. 남쪽에 어떤 희망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그저 막연한 기대를 안고 간다. 아버지가 거는 단 하나의 기대는 '아들'이다.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삶의 목표가 될 수 있을까. 

존재 자체가 희망인 아들이 던지는 질문 ‘당신은 착한 사람인가요’ 
아버지와 달리 아들은 그 존재 자체가 ‘희망’이다. 아흔의 노인이 천사로 봤다는 말처럼.
그 밖에도 아들은 늘 ‘기대와 희망’을 갖고 있다. 또래 아이를 만나고 싶어한다거나 어딘가에 먹을 것이 있을 거라는 기대. 어떤 사람들은 착할 수 있지 않느냐는. 도울 수 있다면 도와야 한다는.
아버지는 그저 아들이 전부이기에 위험을 무릎 쓰고 누굴 구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반드시 복수한다. 순간. 아들이 끊임없이 던지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런 아버지는 착한 사람인가요? 어떤 상황에도 사람을 먹진 않을 거죠? 당신은 그럴 수 있나요?’
아이에게 '착한다'는 무슨 의미일까.

살아가면서 한번도 생각치 않았던 질문을 던지는 <더 로드>  

영화를 보면서 너무 동화된 탓일까. 아니면 원래 그랬던 것일까. 저기 멀리서 다가오는 사람. 행색을 보아하니 나쁜놈 같다. 아니 나쁜놈이다. 단정해도 좋을 찰나 아이는 묻는다.
‘당신은 착한 사람인가요?’
‘당신이 착한 사람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죠?
‘그저 믿을 수밖에’

아들이 어딘가에 희망이 있다고 그저 믿는 것처럼. 그저 믿을 수밖에. 살아간다는 건 결국 그런 것인가 보다. 남쪽엔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끊임없이 그쪽을 향해 나아가는.

 

자연도 버린 세상. 간간히 보이는 무지개가, 목욕이, 약간의 음식이 삶의 행복한 순간임을 깨닫게 한다. 소리없는 눈물이 눈가를 빈번히 적시고 울음소리도 먹먹해지는 잿빛 세상, 세상을, 모든 걸 잃었다고 느낀 순간. 나는 '삶'을 선택하고 그렇게 길을 떠날 수 있을까? 나 여기있다고 끊임없이 말할 누군가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을까. 죽음을 앞두고. 모든 걸 잃었을 때, 생존자로 믿는 순간, 삶은 더욱더 강하게 뿌리내린다.

인간다운 삶이란 살아있기에 가능하다. 살아가면서 한번도 생각치 않았던 질문을 던지는 영화 <더 로드>를 생각하고픈 그대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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