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의 지혜 - 혼돈의 세상에서 평온함을 찾기
앤디 메리필드 지음, 정아은 옮김 / 멜론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주말에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덕분에 몸은 피곤했지만 수많은 참새소리, 꽃피기 전 도라지풀(항상 꽃만 봤거든요 ^^), 단감씨로 자란 내 키만큼의 나무, 송사리떼 등을 한참 들여다 볼 수 있는 여유있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오늘 제가 읽어드릴 책은 이번 여행 길에 버스와 기차에서 저와 함께한 책, '당나귀의 지혜' 입니다. 

책 제목만 보면, 당나귀에 대한 '우화'같은 느낌입니다만, 이 책은 여행 길에서 저자가 목격하게 되는 저자의 과거의 기억과 당나귀에 대한 여러 사유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뉴욕에서 고생 끝에 성공한 교수 앤디 메리필드는, 어느날 끝도 없이 경쟁을 부추기는 뉴욕이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고 남부 프랑스 오트오베르뉴 지방을 여행하게 됩니다. 그 여행길엔 '그리부예'라는 초콜릿빛 털을 가진 당나귀가 동행을 합니다. 

'당나귀'는 단순히 짐을 운반하는 혹은 탈 것으로서가 아니라 '동행자'입니다. 그리고 이 책의 중심이며, 대부분의 이야기입니다.

이 책은 초반부부터 당나귀의 예찬으로 가득합니다. 당나귀의 자태, 울음소리, 심지어 풀뜯어먹는 소리까지.

당나귀에 대해 전무한 저는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독자에게 좀체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 혼잣말은 당나귀가 등장하는 돈키호테의 대플, 알퐁스 도데의 교황의 당나귀 등 소설, 시, 영화, 회화, 음악으로 까지 번집니다. 당나귀를 주제로 한 것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새삼 놀라게 됩니다. 

당나귀의 새로운 일면도 확인합니다.

 



자신의 의지가 없이는 절대 움직이지 않는 고집있는 당나귀에게는 '고삐'를 당기는 것이 아니라 '부탁'을 해야 합니다.

낯선 곳을 지날 때는 경계심마저 깊습니다. 혹자는 이런 당나귀를 보고 '까다롭다'하는데, 저자는 '주위 환경에 대해 배우고 싶은 마음과 생존본능이 강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당나귀가 정원에 있는 꽃은 절대 먹지 않고 오직 들판에 야생화만 먹는답니다. 신기합니다. 

너무 신중한 당나귀는 똑같은 거리에 있는 양쪽 건초를 어느 것을 먹을까 고민하다 굶어죽는다고도 하네요. 이건 뷔리당의 당나귀 인데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고 해결책을 제시한 것은 결국 인간이므로 당나귀는 이런 문제에 익숙하지 않으니 당나귀와 실제 상관은 없다라고 한 것이 인상적입니다.

당나귀가 흥분한 말에게서 저자를 보호하기 위한 행동과 당나귀와 동행하고 있을 땐 양들도 말들도 모여드는 사실도 놀랍구요.  

 

저자는, 당나귀가 부드러움과 애정 넘기는 분위기, 평온을 가져다 주는 전염성 강한 느린 동작과 약하고 불상해 보이는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 덕분인지 그의 여행길은 평화로웠고 종종 그의 과거 한자락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영락없이 성공하고자 하는 도시인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당나귀와 동행하면서 그를 통해 행복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됩니다.

* 곰돌이 푸우의 당나귀입니다.
 

'남들이 생각하는 행복이 평생을 거쳐 추구하고 실현해야 할 진정한 행복은 아니다.(저도 공감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예기치 않은 곳에 놀라운 우여곡절 끝에 정직한 통로로 찾아온다' - 118p
 
후반부로 가면, 그의 독특한 이야기법이 조금씩 적응되어집니다. 

'당나귀와 함께 걸어서 여행하면서 깊은 교류 가진 사람은 결코 예전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저자는 아마도 당나귀의 '느림' 속에서 새로운 삶을 본 것 같습니다. '느림'은 '인내'를 동반하기에 삶에 대한 고찰도 깊어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느림은 기억과 대면을 동반한다'  - 밀란 쿤테라의 소설 '느림'의 글귀처럼 '느림'을 맛보기에 '당나귀'와 동행도 참 좋을 듯 합니다. 

여우와 어린왕자와 같은 교감을 나눈 그와 그리부예, 꼭 당나귀가 아니어도 '교감'을 나눌, 지금까지의 생각의 속도를 바꿔줄 계기가 되는 무언가가 있다면 거북이어도 상관은 없겠지 합니다. ^^ 

생소했던 당나귀에 대해 호감을 갖게하고, 당나귀를 주제로 한 방대한 문학을 간단히 나마 맛볼 수 있었던,
읽는 이로 하여금 약간의 인내심을 갖게 하는 '당나귀의 지혜'였습니다. 

아, 이제 빗방울이 내리기 시작합니다. 
대전 수통골 빈계산 계곡의 목마름은 조금 가시겠네요.

책읽는 여자, 영혼울림의 멘토의 목마름은 언제쯤 해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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