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이 쉬는 것이다 - 옛길박물관이 추천하는 걷고 싶은 우리 길
김산환 글 사진 / 실천문학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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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20대, 내게는 이상한 버릇이 있었다. 

슬프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동네를 몇바퀴씩 쉴새없이 돌며 너무 지쳐 내 자신을 돌볼 즈음, 아니 그 아픔이 탈색이라도 되듯 무덤덤해질 때 즈음, 다시 집으로 돌아오던.  

세상과 인간의 무서움을 좀 일찍 겪게 되면서 이른 운전을 시작한 뒤로 내게 '걷는 것'은 피곤하도 두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자리잡게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 '걷는 것'에 대한 동경은 그치지 않는다. 신마저 '운명'이라는 작업에 손을 놓을리만치 복잡한 세상, 좀 단순해지기 위해서라도.

김산환의 책 '걷는 것이 쉬는다'가 내게 남다른 이유다. 

김산환은 서문에서 '걷기여행은 걷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는 게 목적이라고 한다'  아마도, 걸으며 자연의 바람, 하늘, 땅을 통해 온전히 내 몸과 마음을 살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나 친철한 김산환의 책'은 나와 같이 하루에 몇키로도 걷질 않는 사람들까지 배려하여 코스의 난이도를 별표로 표시해주고 찾기 좋은 계절도 표시해 주었다.  

모든 장소에는 이야기가 있다. 시인의 마을이면 시인의 시와 이야기가 또 바위의 일화가 옛시조가 등장하여 지역의 과거, 현재를 볼 수 있다. 길 소개가 끝나면, 코스를 안내하는 지도가 있으며, 교통, 별미, 볼거리, 숙박까지 자세히 안내되어 있다. 

초행길이어도 오래된 길잡이와 함께하는 것처럼 편안한 여행길을 안내하는 책이다. 

책은 3부로 나눠있다. 1부는 물의 길, 2부는 고갯길, 3부는 사람의 풍경이 있는 길. 

두툼한 책 속에 내가 가본 길은 단 하나.

책 맨 뒤에 소개되는 봉화 청량산, 거기 숫불돼지갈비가 유명한데 역시나 잘 소개되어있다. 으슥해진다. 하지만, 이외에 내 유년시절을 보냈던 영주 죽령 옛길은 아직 내가 닿지 않은 길이다. 그래도 영주길하면 빼놓을 수 없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빨간 사과를 보니, 또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나도 몰랐던 다자구 할머니 일화를 보니, 정말 여행전문가이다. 영주가면 인삼으로 만든 갈비를 꼭 먹어야겠다. 

내 이목을 끄는 길은 시인 김용택을 낳은 임실 섬진강.. 시인의 어머니와 마을분들이 잘 묘사되어 있어서 꼭 가보고 싶게 했다. 서편제의 길 완도 청산도의 당리 돌담길의 포장을 걷어내게 한 사람들도 인상적이다. 김선우의 <대관령 옛길> 시도 인상깊다 

나는 특히나, 숲에 마음이 간다. 자작나무 껍질에 편지를 쓰던 자연 원시림은 태고의 어머니 품을 연상케한다. 프랑스 소설가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는 사람> 같은 주인공이 있었다는 사실도 놀랍다. 춘원 임종국. 지금은 볼 수 없는 춘원의 손길을 느끼기 위해 장성 축령산에도 들러야겠다. 거기서, 장 지오노와 같은 짧고도 인상깊은 수필 하나쯤은 나올 것 같다. 

삶이 그러하듯 아름다운 길만 실려있진 않다. 정산의 화절령 일대의 석탄 채굴 현장도 있다.

그의 길에 대한 남다른 철학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얼마전 슬로시티 담양의 돌담길이 허물어졌다는 기사를 봤다. 가지 않는 길은 지워진다. 복잡한 세상,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또 얼마나 많은 옛길, 자연의 길이 없어질까. 부지런히 찾고 또 걸어야 겠다.  그의 수고스러움으로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가셨다. 이제 내가 걸을 차례다. 걷다보면, 내 안의 두려움과 마주하게 되겠지. 

'길은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 - 신경림의 <길>  

* 이 책에는 이루마의 Maybe가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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