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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하는 힘
강상중 지음, 이경덕 옮김 / 사계절 / 2009년 3월
평점 :
그의 얼굴이, '고민하는 힘'을 대변해 준다
날카로운 눈빛,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서린 그의 얼굴에 시선이 꽂혔다.
책 표지로 인물사진, 그의 얼굴은 '고민하는 힘'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상중의 힘으로 '나쓰메 소세키', '막스 베버'와 동행하다
그에겐 여러 수식이 있지만 내가 가장 인상깊게 기억하는 건 '극우파의 칼침을 우려해 배에 신문을 대고 다닌다'는 일화다. 그의 진지한 얼굴과 달리 그의 글은 마치 1:1 인터뷰 하는 마냥 차분하고 깊이있게 나의 궁금증을 풀어내 주었다. 또한 마치 한국인이 쓴 글처럼 색다른 표현을 읽는 재미도 한몫했다. '싱싱하게 읽히는 남녀의 모습'. '결혼, 쓰다 버린, 그래서 차갑고 딱딱해진 것처럼 변한' '정보량에 트림이 나오는'
그의 우울했던 청춘시대 의지가 되었던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는 그의 책에 선뜻 동행해 주며, 글속에서 새롭게 피어나고 있었다. 그의 예리한 지성과 시대를 아우르는 통찰력으로 채워진 아홉가지 주제를 읽으며, 그간 이유없이 방황했던 내 내면을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책을 덮으며 그의 깊이 있는 고민을, 책 한권으로 읽게된 것이 무척 미안해지기까지 했다. 한권을 읽은 댓가로 너무 많은 것을 보고 가진 것 같아서.
그의 책의 힘은, 누구나 고민해 봄직한 주제를 깊이 있게 꿰뚫어봤다는 것
한번쯤 이런 고민을 한다. 왜 살아야 하나. 왜 죽으면 안되나. 왜 일해야 하나. 사랑이 대체 무언가.. 이런 물음에 이 책은 '답'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무엇이 잘못되었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사유한 문학적, 사회적, 철학적, 경제학적 관념들을 끌여들여 아홉가지 주제를 꿰뚫어 풀어주고 있다.
이 아홉가지 물음이 많은 독자를 이끌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한번쯤 해 봄직한 물음임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게 고민스럽게 생각하고 살진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10대 20대 50대.. 세대를 망라해서 그 어느 시점에서든 한번쯤 멈춰서서 '왜'라는 질문을 하게 하는 의미있는 작업이라는 점이, 그의 독자층을 앞으로도 넓혀주리라 생각된다.
아홉가지 주제 중에, 유독 나의 이목을 끌었던 주제의 의미있는 구절을 다시 살펴본다
나는 누구인가?
- 나는 '자아'가 강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중심주의자'였다.
''자아중심주의자'라는 말을 듣는 사람들은 사람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지만, '자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은 대개 '타자'의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때문에...'(31p) 이 구절을 읽고 깨달았다. 나는 자기중심주의자였음을. 왜 타자와 이어지기 힘들어진 것인지를 '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너'를 이해해야 했다.
제대로 안다는 건? (내가 가장 감명깊게 읽은 부분이다)
- '무엇을 알아야 하느냐의 문제는 곧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람인지 묻는 물음'
'과다한 정보량에 트림이 나올 듯한 기분' (65p) 아주 정확한 표현에 놀랐다.
과다 정보로 열정적으로 탐구하지도 호기심도 없어졌다는 그의 말은 통찰력 있다
'과학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과학은 그 행위의 궁극적이고 본래적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대답하지 못한다'(68p) '뿐만 아니라, 인간 행위의 소중한 의미를 하나씩 빼았아 간다' 현실의 육체나 감각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세계를 확대할 것이 아니라, 적당한 형태로 자기 신체에 맞춰 한정하는 것 필요하지 않겠는가. '무엇을 알아야 하느냐의 문제는 곧 어떤 사회가 바람직한 사람인지 묻는 물음' 우리는 조직과 제도를 만들 때,(특히 교육제도) 이 뼈져린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믿음'에 대한 논의에서 '자유로부터 도망쳐 절대적인 것을 찾는 인간의 본능'과 '인생이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들의 집적, 결국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고민하고... '의미'를 얻어야 한다는 말은 '구원'의 또 다른 해석으로 다가왔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행복하고 싶다와 사랑을 착각하고 있는 것, 결국 사랑에는 형태가 없으며 시시각각 변한다는 것, 결국, 사랑은 끊임없는 상호작용의 결과, 한쪽이 행동을 취하고 상대가 응하려고 할때 성립되는 것, 그런 의지가 있는 한 계속되는 것이 사랑' 특히,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든지 대체 가능한 사랑이 되기 쉽다'는 말은 내 머리를 크게 울렸다. 나는 지금껏 행복해지기 위한 에고이즘적 사랑을 했던 것 같다.
자신의 내적 반성의 시간, 이제 내가 고민할 차례
이 책은, ‘자신을 지탱해 온 가치나 삶에 방식에 대한 그 뿌리 깊은 내적 반성의 시간’을 갖게 할 것이다. 책을 덮고 나니, 나만의 '깊은 고민'에 빠지고 싶어졌다. 그러나, 어디서부터 어떻게 고민해야 하는 건지 난감했다... 비로소 깨달았다. 우리는 ‘생각한 것을 취하기만 했지,생각하는 방법을 배우진 못한 것이다.'
나도 '나쓰메 소세키'를 찾아가야겠다. 그는 내 인생에 어떤 질문을 던질까.
'영혼이 없는 전문가, 마음이 없는 향락인'(막스 베버)이 되기 보다는 '확신'이 올때까지의 끊임없는 '고민'끝에 인간답게 하는 '존재보다 본질'을 더 탐구하는 인간다운 영혼과 마음을 지닌 나이고 싶다.
'고민의 힘'을 통해 뻔뻔하고 배짱두둑해진 그처럼, 나 역시 몇년 뒤 그런 삶을 살길 바라며. 강상중 교수의 '끊없는 관계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찾으라'는 말을 당신에게 전한다.
'영혼이 없는 전문가, 마음이 없는 향락인'(막스 베버)이 되기 보다는 '확신'이 올때까지의 끊임없는 '고민'끝에 인간답게 하는 '존재보다 본질'을 더 탐구하는 인간다운 영혼과 마음을 지닌 나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