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 - 개정판
채만식 지음 / 창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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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만식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면 나는 항상 풍자와 해학성을 생각한다. 물론 이 작품도 그의 특성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이 작품의 주인공인 윤직원 영감은 그야말로 풍자의 대상이었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머리맡의 요강을 가지고 나와 손바닥으로 받아 눈을 씻는다. 매일 아침 소변으로 눈을 씻으면 안력이 쇠하지 않는다나? 그 뿐인가? 음양을 알기 전의 어린애의 오줌을 심지어 마시기도 한다. 아마도 인간의 '불로장생'의 꿈은 선천적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예전부터 남자들은 정욕을 위해서 개구리니, 보신탕이니, 뱀이니, 웅담이니 하는 것들을 찾았나 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자신의 몸과 건강, 그리고 운명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아마도 인간의 과다한 욕심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선 후기에는 평민들의 재산이 많아져서 양반이 되려고 했다고 한다. 여기서 윤 영감은 가히 심벌이라고 하겠다. 족보 도금하기, 자신의 직함을 얻기, 양반과 통혼하기, 자손 중에서 군수나 경찰서장 만들기...... 그는 아직 모르고 있다. 아무리 돈과 재물이 많다고해도 얻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선비의 절개와 강직함이다. 항상 윤직원 영감은 이 세상이 '태평천하'라고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본의 발끝에서 고통받는 민족을 너무나 등한시하고 있다. 난 그에게 비록 내가 나이는 훨씬 어리지만 '개인이 있기 전에 국가가 있다.'는 말을 해 주고 싶다.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었고 그의 '자린고비'인 모습을 가장 잘 풍자한 부분을 꼽으려면, '춘심'이가 필요하다. 내 나이 뻘인 춘심이는 윤 영감의 소위 '애인'이다. 물론 예전에 텔레비전에서 나이가 40이나 차이가 나는 어느 노부부를 본 적이 있지만, 춘심과 윤 영감의 관계는 아무리 생각해도 인정할 수 없다. 이건 현대말로 옮기자면 '원조 교제'이다. 만약 윤 영감이 오늘날의 인물이었다면 그는 구속되거나 신상이 공개될 지도 모른다.

가지가 많은 나무는 바람이 그칠 날이 없다고 하던가? 윤 영감의 아들 윤 주사는 맨날 첩과 도박질만 한다. 군수감으로 여기던 맏손자 종수는 고향의 군 서기이지만 술과 계집질만 일삼는다. 어쩔 수 없이 작가와 윤 영감이 가장 이상적으로 내세운 둘째 손자 종학이.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격으로 그는 윤 영감의 뜻과 다르게 '사회주의' 운동으로 피검된다. 부르주아를 타도하자고 외치는 사회주의자들, 다시 말하자면 손자 종학은 그의 할아버지 윤 영감을 거부하는 것이다. 믿었던 만큼 아픔도 큰 것처럼 윤 영감의 실망도 매우 크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 윤 영감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적막감으로 묘사한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이 있다. 윤직원 영감은 그의 재산으로 세상의 태평함을 판단했다. 그러나 굶주리는 백성들에게 과연 '태평천하'는 존재했을까? 아마 모든 것은 자신의 생각에 달렸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물질적인 것이 그 기준이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윤직원 영감에게 마지막으로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행복의 기준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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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 이청준 문학전집 연작소설 2
이청준 지음 / 열림원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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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초등학교 재학시절, 음악 시간 우리 가락을 배울 때면 음악 선생님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얘기가 있다. 우리 가락의 근본은 바로 '한'이라는 것이다. 당시 마이동풍격으로 지나친 말이었지만, 이 '서편제'라는 작품을 보고 '한'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서편제는 어느 주막에서 한 사내가 주인의 소리를 들으며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당시 과부였던 그의 어머니는 떠돌이 소리꾼이었던 유봉과 야반도주를 한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해산 도중 숨이 끊어지고, 유봉은 동호와 송화에게 각각 북과 소리를 가르쳐주며 마을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외국 노래에 밀려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상놈이라는 핍박에 못 이겨 동호는 가출을 하고, 이에 송화는 소리를 거부하나, 유봉이 지어준 한약에 넣은 부자라는 약으로 인해 눈이 멀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송화는 다시 소리를 시작한다. 시간이 흘러 동호가 천신만고 끝에 누이를 찾았을 때에는 술집의 소리꾼으로 전전하는 상황이었다. 동호는 북을 잡고 누이에게 소리를 청한다. 둘은 마주 앉아 심청가를 부르며 서로를 확인하고 회한의 눈물을 흘린다. 이튿날 동호는 떠나고 송화 역시 유랑의 길을 떠난다.

이 작품을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에서 떠나지 않은 생각이 있었다. 한, 한은 무엇인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대주제인 한은 무엇인가. 우리의 소리에, 아니 우리 민족 정신의 근본에 자리잡은 한이란 무엇인가. 유봉이 송화의 눈을 멀게 하면서까지 집착했던 한이란 과연 무엇인가? 나는 이 '한'이라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생각해 보기로 하였다.
한의 의미는, '원한, 한탄' 정도의 뜻을 지니지만 여기서의 한은, 그런 단순한 감정 이상의 것이다. 판소리의 근간이 되는'한'은 이 비극적 가족사에서 어느 정도 그 모습을 구체화하고 있다. 우선, 당시 천대받던 소리꾼이라는 직업이,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좋든 싫든 그들 모두에게 어느 정도 한스러움을 가져다 줄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두 부녀와 달리 '밥도 안나오는' 소리를 달갑게 여기지 않던 동호의 가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재인이라는 신분적인 차별에서가 아닌, 판소리가 받던 업신여김 또한 그들의 한스러움을 부채질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유봉의 '언젠간 판소리가 판을 치고 말껴!'라는 호기 있는 외침은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공허한 울림이요, 절박한 다짐으로까지 들리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한'이란 정말 이런 절망에서 오는 한탄에 불과한 것일까. 송화 개인에게 눈을 돌려보자. 송화는 동호가 떠난 뒤 식음을 전폐한 후 소리까지 금하였으나 눈이 먼 후 다시 소리를 시작한다. 그러나 원망의 기색이 완연해야 할 송화의 소리에는 그러한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송화가 자신의 한을 원망으로 지니지 않았음은 훗날의 유봉의 말에서도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또 송화와 동호가 재회하여 회포를 푸는 장면에서도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 그녀는 자신을 눈멀게 한 유봉을, 자신을 매몰차게 떠나간 동호를 원망의 감정 속에 가두어두지 않고, 그 모든 한을 용서하는, 초월하는 '한'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지금까지 우리가 찾던 해답이 조금이나마 드러난다. 판소리의 화신인 송화-술집작부로 전락한 그녀의 모습조차 지금의 우울한 판소리의 현실을 나타내는 듯한-는 세속적인 차원의 '한'을 뛰어넘는 '한',그 자체가 된 것이다. 그렇다. '한을 뛰어 넘는 한', 불만스러운 현실을 한탄하는데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나아가 그것을 초월하여 아름답게 승화시킬 수 있는 한의 세계, 이것이 우리 소리의, 아니 우리 민족 가슴 깊이 자리잡아온 한의 실상이었던 것이다. 이 작품은 나에게 우리 민족의 가장 중요한 정서인 한의 세계에 대해 많은 점을 깨닫고 반추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지금껏 이 작품을 한번도 보지 못했던, 그래서 아름다운 한의 세계를 이제야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된 나를 질책하며 이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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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로버트 제임스 월러 지음, 공경희 옮김 / 시공사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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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도 알려져 있는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라는 책에 나의 눈은 멈추게 되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일까? 하며 한장한장 읽어 내려간 것이 어느새 이렇게 독후감까지 쓰게되었다. 물론 좋은 내용도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이책이 실화라는 말에 나는 귀가 더 밝아졌었다. 어느 조그마한 시골 동네에 로버트 킨케이드라는 사진기사가 오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런 시골동네에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이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프린체스카라는 40대 중반의 여인이 살아 가고 있었는데, 로버트킨케이드가 사진을 찍을 장소를 물어보면서 프란체스카와 로버트킨케이드의 만남은 시작되게된다.

이 이야기에서는 50대 남성과 40대 중반의 여성이 각자 자신의 가정이 있지만 서로에게 끌려 사랑하게 되는, 조금은 분위기가 이상한(?) 이야기이다. 비록 사흘간의 짧은 만남이였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어느 날들보다 아니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였다. 그러나 여자에게는 가정이라는 책임과 의무가 있었기에 그들은 결국 헤어져 살아간다. 여자는 가정으로 돌아와 할일을 다하지만 마음속 한구석에는 오로지 로버트 킨케이드의 생각만으로만 가득했다. 로버트킨 케이드도 역시 마찬가지로 프렌체스카를 너무 사랑하였기에 그녀를 대리고 어디론가 떠나가고 싶었지만 로버트 킨케이드는 그녀가 책임을 끝까지 지킬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였다.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자신의 몸보다 마음보다 사랑하였지만 죽을때까지 다시한번 못보고 죽어간다. 그리고 그들은 이 생애에서는 이루지못한 사랑을 하늘에서라도 이루고 싶었기에 그들이 처음만났던 한마디로 사랑하게 된 장소인 로즈먼다리에다가 뼈가루를 뿌리게 된다. 그들의 사랑은 인내의 사랑이였던 것이다. 서로를 사랑하지만 참고 견뎌내는 모습의 너무 감동적이였다. 처음에는 중년의 아저시와 아줌마의 사랑이야기라는 점에서 찜찜하고 왠지 불륜같아서 기분이 이상했지만 나중에는 그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이세상을 살면서 그들처럼 멋있는 사랑을..가슴아픈 사랑을 과연 나는 할수있을까?
삭막한 이세상을 살아가면서 메말랐던 나의 마음에 시원한 소나기가 되어준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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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보는 허클베리핀의 모험 중학생 독후감 세계문학 (중학생 독후감 따라잡기, 필독선) 35
마크 트웨인 지음, 전봉룡 옮김 / 신원문화사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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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들은 너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놓고 놀 시간도 없고 장소도 없다. 아침 일찍 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면 쉬지도 못하고 두세 군데씩 학원에 가야 한다.그래서 나는 허크가 무척 부러웠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허크처럼 살아 봤으면 하고 생각했다. 허크의 행동은 불량스러웠다. 거지처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고, 학교는 아예 다니지도 않고,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담배를 피웠다. 얼굴을 씻거나 머리를 빗지도 않았고, 빈둥빈둥 하루 종일 노는 것만 좋아했다. 그러나 허크의 마음은 착하고 순수했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상처 주는 일은 하지 않았었다. 너무 순진해서 톰이 더글러스 아주머니 네 댁으로 들어가야 도둑놈 잡기 놀이를 할 수 있다고 하자 뛰쳐나온 곳으로 다시 돌아갈 정도였다.

그러나 이 책속에서도, 주인공 허크에게 고난과 시련은 닥쳐왔다. 허크가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붙들려 통나무 오두막집에 갇혀 채찍을 맞을 때는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통나무 오두막집을 탈출해 술주정뱅이 아버지에게 벗어났을 때는 너무 통쾌한 느낌을 맛볼수 있었다. 허크는 학교에 많이 다니지 않았고 책을 읽지 않았는데도 지혜가 많았고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는 침착하게 일을 잘 처리해 나갔다.

도망친 노예 짐과 함께 뗏목을 타고 카이로로 모험을 떠나는 허크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짐을 자유의 몸이 되게 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허크는 자기보다도 짐을 더 먼저 생각하는 따뜻한 마음과 사랑을 가진 소년이었다. 짐이 톰의 이모네 집에 붙잡혀 있을 때도 톰과 함께 목숨을 걸고 구출 할 정도였다. 허크는 또 뗏목을 타고 카이로를 향해 가는 도중 두 사기꾼을 만나 그들의 시중을 들며 생활하지만, 결코 나쁜, 그리고 다른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짓을 하지 않는 정직한 마음을 가졌다. 무엇이 옭고 그른지 바로 알고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결정해 나갔던 것이다.

허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생활하는 방식이 매우 다른 소년이라고 생각한다. 나 같으면 거지처럼 찢어진 옷을 입고,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고, 드럼통 집에서 생활하는 일은 도저히 못 할 것이다. 그런데 허크는 깨끗하고 편한 생활을 버리고 자기에게 맞는 생활과 자유를 찾아 모험을 계속한다. 과연 이런 허크의 강한 의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 까닭은 의외로 간단하다. 우리와는 달리 어릴 적부터 가난하고 모진 고생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문명이라는 독기를 쐬지 않은 야생의 자유를 찾아 모험의 길을 떠나는 허크의 정신을 본받아 진정한 사랑과 영기가 무엇인지를 깨닫고 사회의 나쁜 병폐를 과감하게 물리칠 수 있는 정의감과 용맹 심을 키워 나가야 하겠다. 모험이란.. 조금은 위험해 보이기도 하지만 좋은 경험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수 있었던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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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20
에밀리 브론테 지음, 안동민 옮김 / 범우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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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폭풍의 언덕' 이라는 작품을 읽으면서 그리고 이렇게 나의 느낌을 글로 표현하는 도중에도, 인간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순과 거짓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았다. 또한 사람들의 한없는 욕망과, 진실을 찾고자 하는 양심의 소리에 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자신을 학대한 핸들리에 대해 품게 되는 히드클리프의 복수심. 그것은 끝내 언쇼 집안은 물론이고 린튼 집안까지도 불행속으로 빠져들게 하고 만다. 이 소설은 한 인간의 그릇된 마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불행을 몰고 오는지를 생생히 보여 준 작품이기도 하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인간의 마음과 자연이 한덩어리가 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람들이 우울한 마음일 때는 비구름 낀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밝고 유쾌한 마음일 때는 온화한 9월의 밤을 그리는 것 등이 그렇다. 이 작품을 읽고 나는 히드클리프의 복수심만을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히드클리프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 있는 힌들리나 에드거에게도 책임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따뜻한 사랑과 애정의 마음을 갖고 히드클리프를 대했더라면, 그 같은 엄청난 불행이 발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히드클리프는 이 소설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악한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실제로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지게 한 악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그는 끝내 자신의 양심을 되찾고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나는 히드클리프가 괴로워하며 양심을 되찾게 되는 장면을 통해 가슴이 뭉클한 감동을 맛볼 수가 있었다.

정말 '폭풍의 언덕' 이라는 작품은 누구나 한 번쯤은 꼭 읽어봐야 할 훌륭한 대작품인 것 같다. 어린이들이 이해하기엔 조금 어려운 면이 없지 않아 있는 작품이기도 하지만, 다른 친구들에게도 한번쯤 권해서 나와 같은 감동을 맛볼 수 있게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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