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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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책은 시작된다. 각 장이 시작할 때 이 문장이 반복적으로 나온다. 주인공 한탸에게 폐지 압축공은 삶이나 마찬가지이다. 쓰레기 더미 속의 책들을 통헤 삶의 의미를 찾고, 주의 사람들과의 관계도 맺어간다. 그래서 이웃 도시 부브니의 자동 수압 압축기와 깨끗한 복장의 직원들은 그의 삶을 위협한다. 삶을 빼앗겨 버린 한탸는 최선의 선택을 한다. 나에게는 소름끼칠 정도로 끔찍했던....

나에게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 삽심오 년 동안 내 시간을 바칠 일은 무언인가. 그 일을 빼앗겼을 때 죽음을 택할 정도로 소중한 일은 무엇인가. 지금 내가 찾은 일은 '책 읽기'가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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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에서>

69쪽-
~ 기계가 멈출 때마다 칸트의 <천계론>을 읽었다. 한 불멸의 정신이 침묵 속에서, 밤의 절대적인 침묵 속에서, 그때가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언어로 말하고 있었다. 물론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정녕 설명할 수 없는 개념들이다. 너무도 놀라운 글귀들이어서 나는 저 높은 곳의 별이 총총한 하늘 한 자락을 보려고 건물의 배기갱까지 뛰어가야 했다. 그러고 나면 역겨운 종이 더미와 솜뭉치에 둘러싸인 생쥐 가족들에게로 돌아왔고, 그들을 갈퀴로 찍어 압축통 속에 던져 넣었다......
~ 매 순간 일손을 멈추고 <천계론>을 읽으며 짤막한 글귀들을 낚아채 캐러멜처럼 빨아먹으련서 장엄한 미에 도취되었다. 무한한 다양성이 사방에서 나를 엄습해왔다. 머리 위로는 뻥 뚫린 배기갱 너머로 별이 총총한 하늘이 보였고, 발밑에서는 프라하의 하수구와 시궁창마다 두 쥐 종족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105쪽-
삼십오 년 동안 나는 내 압축기로 폐지를 압축해왔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일할 거라 생각했다. 은퇴를 해도 내 압축기는 나와 함께할 거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부브니의 그 거대한 기계를 보고 온 뒤로 사흘 만에 내 모든 꿈과 정반대되는 일이 현실이 되는 것을 목격했다.
~ 나는 계속 나아갈 수 없었다. 더 걸어갈 수도, 내 압축기를 다시 볼 수도 없었다. 나는 홱 돌아서서 보도로 다시 나왔다. 햇빛에 눈이 부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채 그곳에 남아 있었다. 내가 신봉했던 책들의 어느 한 구절도, 내 존재를 온통 뒤흔들어놓은 이 폭풍우와 재난 속으로 나를 구하러 오지 않았다. 나는 타테우스 성인이 기도대 앞에 털썩 주저앉아 양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잠에 빠져들었다...... 그저 잠이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 존재를 오롯이 덮친 모욕으로 말미암아 실성해버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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