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 지음 / 돌베개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는 늘 숨을 쉰다. 그래서 우리는 공기의 존재를 쉽게 망각한다. 그러나 공기가 없는 위급상황에 놓인다면 공기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애타게 원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국민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랬기에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차라리 국제난민의 길을 택하는 소말리아 국민이나, 바다에 떠돌아다니다가 굶주려 죽어가던 보트피플들은 애타게 국가를 원했을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이 축복이었음을 느꼈다. 물론 우리 주위엔 더 나은 국가를 꿈꾸고, 다른 국가를 택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국가의 시민권을 획득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개인이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국가의 존재가 필수요소이며, 그래서 우리는 후손들이 더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도록 더 훌륭한 나라를 물려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떠한 국가가 훌륭한 국가인지를 먼저 알아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플라톤부터 소로까지 많은 철학가와 정치학자들의 이론을 근거해 저자는 훌륭한 국가에 대한 정의와 올바른 진보정치의 자세, 정치인 나아갈 길을 제시한다.

 

이 책을 보면서 가장 인상 깊은 내용은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정의와 인간의 보수성에 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포퍼를 통해 민주주의는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정치제도를 조직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산물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의 꽃이라 부르는 '선거'보다 사악하거나 무능한 인물이 국민의 지지를 얻어 지도자로 선출되었더라도,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정치제도임에 더 방점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보다 정치제도의 정비가 더 중요함의 일례로 독일국민의 보통선거로 선출된 히틀러가 인류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음을 지적한다.

또한, 베블런의 입을 빌려 인간은 모두 보수적임을 말한다. 우리는 모두 사회의 과거 어느 시점에 맞게 만들어진 수많은 제도 속 살아간다. 따라서 과거에서 전승된 정신적 태도에 따라 사유하는 보수성향을 자연히 갖게 된다. 이에 반해 진보주의는 "생활환경의 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사유습성과 생활방식, 그에 따르는 제도의 조정 필요성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정신적 태도이다."라고 정의한다. 보수주의가 구심력이라면 진보주의는 원심력이라고 할 수 있으며, 보수와 진보가 함께 공존해야 안정성을 기반으로 혁신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토론 문화보다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문화에 익숙해져 있다. 그래서 일단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틀렸다고 생각하고, 내 의견을 강요하기에 급급해하는 경우가 많다. 나와 너의 다른 의견을 아우르는 새로운 의견을 머리 맞대고 찾는 사회가 건강한 민주사회가 아닐까? 국가도 국가의 의견을 무턱대고 국민에게 강요하지 않고, 의견이 다른 국민과 머리 맞대고 고민해준다면 훌륭한 국가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차고 넘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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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을 최소화하는 방법- 민주주의)
~ 대한민국은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민주주의 정치제도를 어느 정도 잘 갖춘 나라이다. 이 제도들을 제대로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이 어떻게 하면 훌륭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을지를 고민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뽑아놓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민주주의가 좋지 않은 제도라고 불평할 이유가 없다. 그들이 일시적으로 악을 저지른다고 해도 위축될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원래부터 그런 위험을 적절하게 관리하기 위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은 언제든, 임기가 정해져 있는 정부를 해고하고 새로운 정부를 세울 수 있다.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국민이 정부를 교체할 가능성이 열려있는 한, 그 나라의 정부는 민주정부이다. 이 가능성을 말살하면, 그 정부는 독재정부가 된다.

(인간은 모두 보수적이다 - 베블런)
~ 전통적으로 유한계급은 정치, 종교, 전쟁, 스포츠 분야에 종사한다. ~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한계급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하위 소득계층 유권자들이 보수적 태도를 보인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들은 선거를 할때 주로 진보정당이 아니라 보수정당에 표를 준다. 어떻게 된 일인가? 배블런의 이론에 따르면 그것 역시 유한계급제도와 관계가 있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 때문인 것이다. ~ 유한계급은 부유하기 때문에 혁신을 거부한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해서 보수적이다.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기존의 사유습성을 바꾸는 것은 유쾌하지 못한 일이며 상당한 정신적 노력을 요구한다. 변화된 환경이 무엇인가, 나의 정신적 태도가 어떠한지,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기존의 사유습성을 바꾸는 데 대한 본능적 저항감을 극복하려면 힘겨운 노력을 해야 한다. 지배적 생활양식에 순종하면서 일상적 생존투쟁을 견뎌내는 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이 과업을 수행하기 어렵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인 반면,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생활환경 변화에 적당한 압력을 느끼면서도 학습하고 사유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에서 주로 가장 뚜렷한 진보주의 성향이 형성되고 표출되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고령층이 청년들보다 더 보수적인 현상도 마찬가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기존의 제도와 사유습성에 노출된 기간이 짧으며 지적 활동이 상대적으로 왕성하다. 기존의 사유습성에 대한 집착이 덜하고 그것을 바꾸는 데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풍부하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기존의 사유습성은 더욱 강력한 지속성을 지니며 그것을 바꾸는 데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는 부족해진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생물학적 필연이다. 역사의 중대한 고비마다 청년층이 낡은 제도와 지배적 사유습성, 전통적 생활양식에 반기를 드는 주체로 나선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모든 사회에서 청년은 진보적이며 노인은 보수적이다. 고령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난다. 보수주의는 생물학적 본능이고 진보주의는 목적의식적 지행이다. 보수가 구심력이라면 진보는 원심력이다. 사회도 진보와 보수가 있기에 유지되고 발전한다. 진보주의자만 있는 사회는 안정성이 없을 것이다. ~ 반면 보수주의자만 사는 세상에서는 혁신이 불가능할 것이다. 그 사회는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절멸되는 종이 될 것이다.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둘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한다.

<맺음말, 훌륭한 국가를 생각한다>
~ 나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내가 바라는 국가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수립하는 국가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는 국이다. 국민을 국민이기 이전에 인간으로 존중하는 국가이다. 부당한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거나 방관하지 않으며 선량한 시민 한 사람이라도 절망 속에 내버려두지 않는 국가이다. 나는 그런 국가에서 살고 싶다. 그렇게 하려고 나는, 소로가 말한 것처럼 "먼저 인간이고 그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시민이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런 국가를 만들 수 있고, 또 그런 나라에서 살 합당한 자격이 있다고 믿는다.
대한민국이 지금 그런 국가가 아니라고 해서 국가를 증오하거나 비하하거나 냉담하게 대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국가 안에서 국가와 관계를 맺으며 산다. 국가를 떠나서는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훌륭한 국가 없이는 시민의 삶도 훌륭하기 어렵다. 그리고 세상 그 무엇도 국가를 대신하지 못한다. 우리에게는 능력 있는 국가가 필요하다.
~ 어떤 훌륭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정의를 실현할 능력 있는 국가를 만들어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이것은 헛된 기대일 뿐이다. 훌륭한 국가를 만드는 것은 시민들이다. 공화국 주권자라는 사실에 대해서 대통령이 된 것과 똑같은 무게의 자부심을 느끼는 시민, 존엄한 존재로서 자기에게 주어진 권리와의무가 무엇인지 잘 아는 시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설계하고 책임지면서 공동체의 선을 이루기 위해 타인과 연대하고 행동할 줄 아는 시민, 깨어 있는 시민이 훌륭한 국가를 만든다.
~ 사람은 누구나 낯선 것에 대해 경계심과 적의를 품는다. 서로 좀 더 잘 안다면, 국가권력을 둘러싸고 벌이는 불가피한 정치적 투쟁이 수반하는 증오와 적대감이 조금이라도 덜어질 수 있지 않을꺄 하는 희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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