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10월
구판절판


웃기는 일이야. 살날이 며칠이나 남았다고 여태껏 본 적도 없고 얼마 안 있으면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하는 소리에 매달리고 있는 거지? 그런데도 속이 상하고 화가 나. 싸움이라도 한바탕 하고 싶어. 아냐, 뭐 하러 그딴 일에 시간을 낭비해?"
하지만 사실 그녀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의해 강요된 법칙을 따르고 싶지 않다면 격렬하게 저항해야만 하는 이 이상한 공동체 안에서 알량한 자존심 싸움을 하느라고.
"이건 말도 안 돼. 난 이런 적 없어. 절대 그딴 바보짓 때문에 싸운 적이 없었다구."
그녀는 꽁꽁 언 정원 한가운데 멈추어 섰다. 그랬다. 그녀가 삶이 자연스레 강요한 것을 결국 받아들이고 만 것은 그녀 자신이 모든 것을 '그딴 바보짓'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춘기 시절, 그녀는 뭔가를 선택하기에는 아직 때가 너무 이르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었을 때는, 뭔가를 바꾸기에는 이제 너무 늦었다고 체념했다. 지금까지 무엇 하느라 내 모든 에너지를 소비한 거지? 그것도 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게 하느라고.-67쪽

삶에서 기대했던 거의 모든 것을 마침내 얻게 되었을 때, 베로니카는 자신의 삶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매일 매일이 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죽기로 결심했다.-69쪽

그녀의 부모는 어쨌거나 그녀를 계속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들에게 상처를 줄까 두려워 감히 자신의 꿈을 계속 밀고 나가지 못했다. 그녀의 기억 깊숙한 곳에 묻혀버린 그 꿈은 연주회에 간다거나 우연히 좋은 음악을 들었을 때, 가끔씩 되살아났다. 하지만 매번 그로 인해 엄청난 실망감만을 맛보았기 때문에 그녀는 곧 그 꿈을 다시 묻어버렸다. ~
"나는 좀더 미친 짓을 했어야만 했어."
하지만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듯, 그녀에게도 깨달음은 너무 늦게 찾아왔다.-135쪽

그녀는 자신이 곧 죽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두려워하지? 두려워한다고 해서 그녀에게 도움이 될 것도 없고, 곧 발생할 치명적인 심장 발작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며칠 혹은 몇 시간을 그 동안 하지 못했던 것을 해보는 데 사용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147쪽

"아마 그래야겠지. 사실, 일생을 사는 동안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은 오로지 울 잘못에서 비롯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똑같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들은 다른 방식으로 그것에 대응했어. 우리는 격리된 현실이라는 쉬운 길을 택했던 거야."-216쪽

~난 소위 '정상적'이라는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앞서 많은 의사들이 그 연구를 했고, 정상적인 상태라는 것은 사회적 합의의 문제에 불과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달리 말하자면, 대다수 사람들이 어떤 것을 올바르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올바른게 되는 거죠. 어떤 것들은 가장 초보적인 상식에 의해 좌우됩니다. 단추를 셔츠 앞쪽에 다른 논리의 문제겠죠. 단추들을 옆에 달아놓는다면 채우기가 아주 어려울 테고, 등 뒤에 달아놓는다면 아예 불가능할 테니까요.
하지만 다른 것들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그것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여기기 때문에 정상으로 치부되는 겁니다.-237-238쪽

~개개의 인간은 모두 유일해요. 자기 자신만의 자질, 본능, 쾌락의 형태, 모험을 추구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죠. 하지만 사회는 집단적인 행동 양식을 강요해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이 왜 그런 식으로 생동해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게 되죠. 그들은 그걸 받아들여요. 타자수들이 아제르트 자판이 최선의 자판이라는 사실을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듯이. 시계바늘이 왜 왼쪽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돌아가느냐고 물어보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으세요?"-240쪽

"아니요. 부인은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다른' 사람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닮기를 원하죠. 그건 내 관점에서 볼 때 심각한 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르다는 게 심각한 병인가요?"
"모든 사람과 닮기를 자신에게 강요하는 게 심각한 거죠. 그건 신경증, 정신장애, 편집증을 유발시켜요. 자연을 왜곡하고 하느님의 법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심각한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숲에 똑같은 잎은 단 하나도 창조하지 않으셨어요. 하지만 부인은, 부인이 다르다는 걸 미친 걸로 생각하죠. 그래서 빌레트에서 지내기로 작정하신 겁니다. 여기서는 모두가 다 다르기 때문에, 부인은 모두와 닮아 있다는 겁니다. 이해하시겠어요?"-241쪽

<인간 게놈6부작> '죽음의 비밀'

'인간은 죽음의 자각을 통해 더욱 치열한 삶을 살 수 있다."-301쪽

~ 역자의 부친은 수년 전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혼수상태에 빠지기 얼마 전, 거절하리라는 것을 짐작하셨기 때문일까, 유난히 간절한 눈망울로 담배를 피우고 싶다고 하셨다. 일순 망설였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왜 그랬을까? 아마 병자를 죽음으로 떠밀 수는 없다는 경직된 도덕관념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는 결정을 일반적인 관념에 기대이 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역자는 수년이 지난 지금도 결정의 옳고 그름을 떠나 부친께 마지막 담배의 여유를 앗은 나의 가혹한 결정을 후회하고 있다.-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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