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 그리고 또 다른 <재즈 시대 이야기들>, 펭귄 클래식 펭귄클래식 11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박찬원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총 11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내가 읽고자 했던 것은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였다. 그래서 일단은 그 소설만 읽었다. *^^*
최근 20~30대 여성층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김애란 작가의 <두근두근 내 인생>을 보면서 이 책이 자꾸 겹쳐져 다 읽자마자 다시 한 번 찾아 읽게 되었다. 등장인물과 주제가 흡사해서였다. 그러나 이 책의 내용이 이미 충격적으로 느꼈었던 때문인지 <두근두근 내 인생>을 몰입해서 읽을 수 없었다. 나에겐 <두근두근 내 인생>의 아름이 보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벤자민의 삶이 더 가슴 아프고, 나의 삶을 성찰할 기회가 되었다.
아직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거꾸로 살아가다 결국 마지막엔 모든 것이 지워지며 끝을 맺게 되는 결말에 눈물까지 글썽였던 기억이 난다.
다시 읽으면서 그때와는 또 다른 무게감을 느꼈다. 왜 삶을 거꾸로 거슬러 살아가느냐며 그만두라는 아내의 말에 "하지만, 힐데가르드,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오."라는 벤자민의 말이 아픈 체념으로 다가왔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에 못지않게 거스르기 어려운 운명 또한 많다. 그때 우리는 그 운명에 순응할 수밖에 없다. 벤자민의 삶을 보면서 운명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가는 슬픔을 느꼈다. 그러나 벤자민은 거꾸로 거슬러 가는 삶에도 매시간 충실히 살아간다. 묵묵히 자신의 처지에서 온 힘을 다해 사는 것만이 삶에 주어진 해답이리라. 
그래서 그의 죽음은 앞을 향해 흘러간 삶과 별반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주변인물과 환경을 위주로 담담히 그려낸 탓인지 벤자민의 마음과 동화되어 그의 읽을 수 있었다. 100년 전에 출간된 도서이지만 세월을 아우르는 힘이 있는 명작이다. 우리는 모두 끝이 있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종종 아니 거의 그것을 잊어버린다. 그것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해주고, 삶을 반추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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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6
"있잖소." 그가 가볍게 말했다. "사람들이 다 내가 전보다 젊어 보인다는군."
힐데가르드가 냉소를 머금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그게 자랑거리라고 생각해요?"
"자랑하는 게 아니오." 그가 불편한 마음으로 말했다.
그녀가 또다시 코웃음을 쳤다. "그 생각." 그녀가 말하고는 잠시 기다렸다. "난 당신이 자존심을 갖추고 그 일을 중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이오?" 그가 물었다.
"난 당신과 논쟁하지 않겠어요." 그녀가 쏘아붙였다. "하지만 세상일에는 옳은 방법이 있고 그릇된 방법이 있어요. 당신이 다른 모든 사람과 달라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면, 나로서는 당신을 멈추게 할 수 없겠지만, 당신의 행동은 정말이지 사려 깊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힐데가르드, 나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오."

p.287-
과거는, 산후안 고지에서 부하들의 선두에 서서 지휘했던 거친 돌격, 사랑하는 젊은 힐데가르드를 위해 여름날 어둠이 질 때까지 분주한 도시에서 늦게까지 일하던 신혼 시절, 그 시절 이전, 먼로가에 있던 음침한 옛 버튼 저택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앉아 밤늦도록 시가를 피우던 날들, 그 모든 것들이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일들처럼 그의 정신에서 비현실적인 꿈이 되어 희미해지고 있었다.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지난번에 먹었던 우유가 따뜻했는지 차가웠는지, 또는 어떻게 나날들이 지나갔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아기 침대와 나나라는 친숙한 존재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배고프면 울었다. 그게 다였다. 낮에도 밤에도 그는 그저 숨을 쉬었고, 그의 위에서 부드러운 중얼거림과 소곤거림만이 간간이 들려왔다. 그리고 희미하게 구분되는 냄새들, 빛과 어둠.
그리고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하얀 아기 침대와 그의 위에서 움직이던 흐릿한 얼굴들, 우유의 따뜻하고 달콤한 내음, 그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그의 마음에서 점점 희미해지다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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