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한기
이지민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보는 내내 작년 신종인플루가 유행했을때 손쓸 수 없이 쓰러져 가는 사람들(?)을 보고 느꼈던 막막함이 떠올랐었는데, 역시나 작가 후기에 그때 구상했던 소설이라고 하더군요..
판타지와 유머와 청춘 또는 사랑에 대한 통찰이 들어간 술술읽혀지는 재미있는 소설이었습니다. 시니컬한 주인공이 나중에 본인의 이름을 따게될 OTS바이러스에 맞선 본 연구원에게 감염되면서 벌어지는 전개는 황당무계하지만 구절구절 젊은시절(?)을 돌아보게 해주는 맘에드는 책이었습니다.
뭐 이런 바이러스라면 수명에만 관련이 없다면 온 인류가 감염되어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자신의 과거를 술술 남에게 풀어놓아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게되고, 서로를 좀더 이해하게 되고, 미래가 불안보다는 희망으로 다가오게 되어 세상살이가 많이 편안해지고 서로를 생각해주게 될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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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2
문득 나는 어떤 유품을 남기게 될가 궁금해졌다. 내가 좋아하던 책들, 주성치와 에릭 로메르 DVD, 아이북과 아이팟, 낡은 아이키 조깅화와 어그 부츠, 빛을 보지 못한 작품의 메모들, 이 빠진 머그잔, 내 머리 냄새를 가장 잘 아는 쿠션...... 어째 그것들은.....
내가 남길 것들은 내가 만든 것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기껏해야 나란 존재에 대한 힌트에 불과했다. 나의 기쁨과 상처, 환희와 후회 등 생생한 진실은 고스란히 내 육체에 갇힌 채 사라져버릴 거라 생각하니 온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p.145
"사장님! 저 실패자 아니거든요! 전 단지 실패랑...... 조금 친할뿐이에요! 바이러스에 전염왰어도 바이러스는 아니고요! 바이러스랑 조금 더 친할 뿐이라고요!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병자는 병이랑 조금 더 친한 거고, 가난뱅이는 가난이랑 조금 더 친한거고, 난쟁이는 땅바닥이랑 조금 더 친한 거고, 장님은 깜깜한 우주랑 좀더 친한 거고, 왕따는 고독이랑 좀더 친한 것일 뿐이라고요!" 

p.185
"남의 운명이라고 쉽게 말하지 말하지 마세요."
그러나 한 마디라도 지면 그가 아니었다.
"그건 유감입니다만, 불행히도 사람이란 남의 운명에만 목소리를 높이는 비겁한 겁쟁이들이나까요."
그렇다. 나 역시 타인의 삶을 놓고는 이래라 저래라 쉽게 떠드는 인간이었다. 그러나 내 인생 앞에서는 이것이 진자 나의 삶이라고 인정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의 현재를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주먹을 꼭 쥐게 되는 용기이고, 아픔이고, 피 끓는 응전이었다.

p.199
"사람마다 면역체계가 다르다고 했잖아요. 택선 씨에게 희망은 택선 씨 자신이 되어야죠."

p.204
"미안하네요. 괜히 앞에서 얼쩡거리다 사랑이나 받고."
이균이 겸연쩍어했다.
"제가 미안하죠.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해서."
우리의 대화는 제3자는 절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요상한 것이었다.
"어쩔 수 없죠. 병이니까요. 그 사랑은."
"사랑이 아닌 줄 알면서도 사랑하니 미치네요. 사랑이란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열 받네요."
"그러게요. 저는 이제 사랑이란 말만 들어도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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