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울 따뷔랭 - 작은책
장자끄 상뻬 지음,최영선 옮김 / 열린책들 / 199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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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끄 상뻬의 짧고 간단하면서도 철학이 담긴이야기...그는 자전거를 타지 못하였다. 최고의 자전거 수리공이지만 그는 자전거를 타는 법을 몰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가 당연히 자전거 타기의 명수라고 여겼다. 그는 그 사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너무도 두려웠다. 결국 그는 종말에 병원 신세를 시게된다.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이 자전거를 잘타는 사람이 아니었기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 인간의 편견과 색안경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어떠한 직업에 대한 편견...

이러한 직업을 가진 사람은 마땅히 이러한 모습이어야 한다. 이러한 사고가 얼마나 우리 사회에 만연한다. 이러한 사람들의 시선에 맞추기 위하여 할 수 없는 한계를 넘어서는 일들을 하기 위하여 발버둥치는 주인공의 모습과 같은 어리석은 모습이 우리에게는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르겠다. 해학적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자 하였으나 이 채안에는 결국 우리의 인간의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어정쩡한 삶의 모습을 꼬집고자 한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된다. 한번쯤 웃으면서도 그 안에 있는 생각으로 눈물도 함께 흘릴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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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의 여인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7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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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지식이 거의 없는 분야의 책을 읽을 때마다 막막함을 느낀다. 이미 가진 선입관이라도 있어야, 새롭게 알게 된 것에 대한 신선함도 있을 것이며, 재해석 되는 것에 대한 통찰도 깨달을 수 있을텐데 말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 대한 글을 읽을 때 역시 동일한 난감함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세계사에서만 읽었던, 그것도 고등학교 교과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던 나의 배경 지식은 그 시대를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그 시대의 인물에 대한 경이와 감격을 느끼는 시오노 나나미의 생각을 따라가기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특히 이 책이 4명의 여성은 일찍이 들어본 적도 없었을 뿐더러, 그 배경과 시대적 상황이 쉽게 매치되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책을 읽으면서도 자꾸만 혼란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여기고 포기할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번득이는 그녀만의 재치, 통찰.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읽으면, 언제 그런 재치와 통찰을 만날까 기대감 가득하게 책을 읽게 된다. 과연 그런 통찰들은 기대를 버리지 않고 나타난다. 다만 이 책이 그녀의 처녀작임에도 불구하고, 로마인 이야기 까지 이어오는 동안 사상의 전환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은 놀라울 따름이다. 이것을 그녀의 일관성에 대한 경의로 결론지어야 할지, 성숙의 부재로 보아야 할지는 쉽게 결론내리지 못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현실 자체를 긍정하고, 선악의 개념 보다는 정치의 예술성을 추구하는 그녀다움은 여전히 번득이고 있는 책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책을 다 읽어보긴 해야겠다. 르네상스 저작집의 7권까지 끝나는 시점에서 다시금 되돌아보며 이 책을 다시 뒤적거려 본다면 새롭고, 입체적인 통찰 또한 다시 솟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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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6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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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대를, 짧은 문장으로 압축해서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그러나 시오노 나나미는 그 어려운 작업을 무난하게 풀어낸다. 대화체로 이루어진 내용은 여행 가이드를 받는듯한 느낌을 주며, 쉽게 그 시대를 이해하도록 해주는 것 같다.칼라로 삽입된 각종 사진 자료들은 더더욱 현장감있는 해설을 가능케 해주고 있다. 독자는 정말로 자신이 작가와 함께 여행을 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시오노 나나미가 갖는 그녀만의 필력이 아닌가 한다.

비록 정치적 상황이나, 그 시대 정신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들은 다른 시리즈에서 충분히 나타났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대의 배경이나 정지적 상황등이 축약적으로 나타나고 때로는 생략되어 있음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있어 약간의 장애가 되었다. 그러나 이 또한 그녀의 다른 저작들을 보게 만드는 나름의 유혹이 되는 것 같아 불쾌하지는 않다.
때때로 나타나는 역사에 대한 과감한 재해석은 그녀의 글을 읽는 또 다른 매력이다. 기존의 해석과는 전혀 다른, 때로는 도덕적이길 강조하는 기존의 사관의 벗어나, 정말이지 냉철한 현실 인식 위에 세워진 그녀만의 역사관은 전율을 일으킬만큼 감동을 얹어주기도 한다.

르네상스는 잘 모르는 영역이다. 알려져있지도 않다. 관심을 갖는 사람도 드물다. 그러나 정말 재미있는 시대인 것 같다. 한번 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격동의 세월이 주는 교훈은 언제나 우리를 진지하게 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시오노 나나미의 글들을 읽기 시작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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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가의 토토 - 개정판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김난주 옮김, 이와사키 치히로 그림 / 프로메테우스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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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스승의 길을 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고 한 아이의 부모가 될 모든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책에서는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며 그 아이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능력과 자유를 있는 그대로 펼칠 수 있도록 하여주는 기차모양의 작은 학교가 나온다. 토토가 일반 공립학교에 입학하였을때 선생님들 사이에서는 토토를 더이상 가르칠 수가 없는 이상한 아이라고 하였다.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순종하지 않는 아이인 것이다. 수업시간에도 토토는 쪼르르 창가로 달려가서 지나가는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눈다. 토토는 수업의 방해꾼이며 더이상 선도의 여지가 없는 아이인것이다.

이렇게 문제아라는 꼬리표를 달고 학교를 나온 토토가 입학한 학교는 기차모양의 학교였다. 토토에게는 기차에서 수업을 하게 된다는 것이 너무 신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토토를 신나게 한 것은 토토가 무엇을 하더라도 누구도 토토에게 잘못되었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방종은 아니었으며, 자신이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한 것을 해내는 아주 수준 높은 자유였다.

토토라는 아이는 그 모습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졌고, 사회에서 문제아라는 칭을 받았던 그 아이는 사랑스런 아이가 되어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찾게되었고 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삶에 기쁨과 자신감과 활력을 갖게되었고, 이 세상의 낙오자가 아닌 필요한 존재로 자라갔다.

토토라는 아이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시대의 획일적이고 규격화된 삶에 아이들을 끼워맞추려고하는 교육의 모습을 반성해야할것이다. 교육이란 맹자가 진심편에서 말하였듯이 자라도록 하고 끌어주는 것이다. 아이의 존재와 그 아이의 독특한 개성을 이해하며 그 독특함에 반응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오늘날의 시대에 필요한 교육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며, 가장 최상의 모습으로 자라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살아갈 모든 사람에게 정말 필요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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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벨라르와 엘로이즈
강계순 / 제삼기획 / 198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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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와 여자가 부부에서 수사와 수녀의 관계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운 비극이 이 책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생각은, 결단코 음울하거나 슬프지는 않다는 것이다. 도리어 한 인간과 한 인간이 서로에 대한 사모함 속에서 더욱 깊은 사랑의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종교인이기에, 각자의 위치를 지키며, 서로에 대한 사랑에 절제가 첨가되며, 신의 사랑이라는 절대 사랑 안에서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가, 세속인들에게는 사뭇 어색하게 느껴지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의 수준 높은 대화들 속에 숨어져 있는 섬세한 배려와 사랑을 읽어낸다면,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가장 아름다운 진리가 다시금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하며, 인간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족쇄인 종교적 계율 마저도, 인간의 이런 근본적인 사랑의 관계를 지배할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종교에 의해 제단된 사랑이 아니라, 종교조차도 제단하지 못한 깊은 사랑.바로 아벨라르와 엘로이즈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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