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혜법어 - 道는 마음을 깨닫는 것이다 현대인을 위한 선어록 읽기 9
김태완 지음 / 침묵의향기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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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낯선 곳은 저절로 익숙해지고 익숙한 곳은 저절로 낯설어질 것입니다. 어떤 것이 익숙한 곳일까요? 총명하고 영리하게 생각으로 헤아리고 견주어 살펴보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낯선 곳일까요? 보리, 열반, 진여, 불성이니 사유와 분별이 끊어져 어떻게 헤아릴 수 없고, 그대가 마음을 써서 처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갑자기 때가 되면, 혹은 옛사람이 도에 들어간 인연 위에서, 혹은 경전을 보다가, 혹은 생활 속 인연에 응하는 곳에서, 좋을 때든 좋지 않을 때든, 몸과 마음이 산란할 때든, 순조롭거나 거슬리는 경계가 나타날 때든, 잠시 심의식이 편안하고 고요할 때든, 어느 때든 상관없이 문득 마음의 회전축을 뒤집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대혜종고 저, 김태완 역, <대혜법어> p.331 중에서


고대 인도에서 발흥한 불교는 서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들어와 중국식 변용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탄생한 새로운 양식의 불교를 북방불교, 중국불교라고 하는데 그 중국불교의 정점에 있는 것이 선불교이다. 선불교는 6세기 달마에 의해 시작되어 5가지 종파로 발전하는데, 그중 오늘날까지 존속한 종파는 임제종과 조동종 둘 뿐이다. 일본 선불교에서는 조동종이 두각을 드러내지만, 선종사의 전체적인 맥락을 두고 볼 때 선불교의 주류는 언제나 임제종이었다. 임제종은 주로 선종의 공안(화두)을 참구하는 간화선 수행을 하는데, 이 간화선 수행을 체계화하여 보급한 사람이 바로 대혜종고 선사이다.


대혜종고는 어릴적 향교에서 벼루를 던지며 장난치다가 선생의 모자를 맞힌 적이 있는데, 이 일로 그의 부모가 삼백 냥의 벌금을 물었다고 한다. 대혜종고는 이에 향교 공부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불법을 공부하였다는데, 대선사의 출가 기연치고는 조금 시시하고 독특한 맛이 있다. 그는 16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20세에 조동종 선승들에게서 선을 배웠으나 만족하지 못하고 임제종 선승들을 참문 하였고, 서른 중반이 되어서야 원오극근 화상 밑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선불교를 거론할 때 대혜종고는 결코 빠져선 안 될 선지식으로, 오늘날 까지 현대 선불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요한 인물이다. 그가 창시한 간화선은 임제종의 독자적 수행법으로 발전한다. 그렇다해서 간화선 수행에 어떤 차제나 단계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생각의 작용을 멈추는 것, 그리하여 생각의 테두리 밖을 눈치채게하는 것이 간화선 수행의 시작과 끝이다.


간화선에서는 여러가지 공안들을 제시하는데, 그러한 공안들은 모두 생각이 더 이상 이어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이를테면 간화선 수행자는 '나는 무엇인가?', '어째서 부처가 마삼근인가?', 또는 '태어나기 전에 나는 무엇이었는가?', '개에게는 어째서 불성이 없는가?' 하는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이에 대한 질문들의 의도는 생각의 작용을 멈추게 하는 데에 있는 것으로서, 생각으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려 하는 것은 수행이 의도하는 바에 반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질문들을 참구할 때 생각의 작용은 문득 문득 끊어지며, 이윽고 생각의 공백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대혜종고는 제자들에게 이러한 간화선 수행법을 지도하면서도 한편으론 수많은 서신을 통해 상세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수행을 독려하였는데, 아마도 이런 방편들이 수많은 제자들의 안목을 여는데 직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추측된다.


대혜종고 이후 간화선은 시대와 지역을 거치며 약간씩 변형을 이루었다. 원대에는 좌선과 선정의 힘을 빌린 간화선 수행이 발전하며 이러한 선풍은 한국의 조계종이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반면 일본의 임제종은 공안의 즉각적 타파를 중요시하는데, 공안의 낙처를 통찰함으로써 공空에 대한 직관을 얻는 것에 중점을 둔다. 일본 임제종의 이러한 참구 방식은 공안에 대한 이해를 중시하는 경향성과 여러 공안에 대한 단계적 타파의 수행방식으로 발전하여 일각에서는 의리선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공안의 타파가 보통 화두 참구 이후 최종적 깨달음을 공인하는 것이라면 일본에서는 공안 타파가 단계적 수행으로서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의 화두참구가 임제종의 전통적 간화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다면, 일본의 화두참구는 일본 특유의 방식으로 변용을 이뤘다. 흥미롭게도 현재 서구권 선센터에서 행해지는 간화선은 대부분 일본 임제종의 방식을 따르는데, 아마 공안의 단계적 타파라는 자기 점검의 기준이 수행자들의 구미에 더 당기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북미나 유럽에 진출한 선센터에서는 조동종 계열이든 임제종 계열이든 보통 하나의 수행법 보다는 여러가지의 수행법을 병용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일본 조동종의 야스타니 하쿤 선사는 애초부터 임제종과 조동종의 수행법을 결합하여 삼보교단이란 새로운 수행단체를 설립하였고, 이는 서구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대만 법고산의 성엄 선사 또한 미국에 진출한 선사들 중 한 명이었는데, 그도 임제종의 간화선과 조동종의 묵조선 수행을 같이 가르쳤고 북방불교식의 속보 경행이 아닌 남방불교식의 위빠사나식 경행을 도입하는 등 다양한 수행법을 동시에 제시하였다. 미국에서 관음선종을 세운 숭산스님 또한 간화선 이외에도 다라니, 주력과 같은 염불수행을 제시하였고 '오직 모를 뿐'이라는 독특한 간화선풍을 창조하기도 했다.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한국의 전통적 간화선 수행을 거친 숭산스님이 미국 현지에서 미국인들에게 간화선 수행을 가르칠 땐 일본 임제종 식의 공안의 단계적 타파 방식을 차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 유럽과 같은 서구권 또는 다른 이방 국가에서 선을 전파할 때, 수요자들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선사들이 다양한 방식의 수행을 도입한 모습으로 보인다. 이는 선사들이 모국의 전통적인 불교 문화권을 떠나 타국에서 선을 이야기할 땐 철저히 수요자의 입장에서 전법을 고민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머리를 밀고 가사를 입은 '전업수행자'들은 수행지원비를 받으며 평생의 시간을 수행에 바칠 수 있기 때문에 수행의 성과에 관해서 조금 느긋한 자세를 취하지만, 별도의 생업이 있고 자비를 내야 수행할 수 있는 재가수행자들은 선센터에서 하루빨리 수행의 가시적 성과를 얻길 바라는 경향성이 강하다. 때문에 해외에서 선센터를 운영하는 선사들은 현지 재가수행자들에게 빠른 시일내에 성과를 얻게 할 수 있는(또는 성과를 얻은 것처럼 보이게끔 하는) 수행법을 제시하는 데에 몰두했다.


이러한 점들은 오늘날 간화선의 현대화를 어떻게 이뤄야하는 가에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한국의 간화선은 원대 간화선의 원형을 그대로 계승하여 보존하였다는데 자부심을 갖지만, 수행자로 하여금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얻게 하는 데 실패하였다. 간화선의 세계화, 간화선의 현대화는 곧 간화선의 시장성, 상품성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일본 임제종의 간화선은 공안의 단계적 타파와 스승의 지속적이고 정기적인 점검 수행 방식으로 세계화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한국의 간화선은 세계 시장에서 철저히 외면받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의 간화선은 어떻게 해야 현대화를 이룰 수 있을까? 이제와서 일본 임제종의 간화선을 모사하는 방식은 무의미할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어쩌면 답은 시작점에 있을지도 모른다. 잠이 오지 않는 밤.. 대혜어록을 읽으면서 간화선의 현대화를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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