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좌 적명 - 봉암사 수좌 적명 스님 유고집
적명 지음 / 불광출판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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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경황없이 일어났듯, 죽음 또한 예고없이 찾아온다. 지난 동안거를 날 때였다. 반철이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석달의 안거기간 중 한달 보름이 되었을 때를 반철이라 이야기한다. 한 철 안거의 반이 지났다는 이야기다. 이때 선원에서는 보통 반철산행을 간다. 그동안 집중수행으로 누적된 피로와 긴장을 산행으로 풀어주는 것이다. 적명스님은 반철산행으로 희양산을 올랐다가 입적하셨다. 사인은 실족사였다. 덕망높은 선승의 갑작스런 죽음에 선원이 술렁였다. 스님들 모두가 황망해했다.


일전에 적명스님 법문을 몇번 들은적이 있었다. 직접 가서 들은 것은 아니고, 영상으로 보았던 것인데. 비슷한 세대의 다른 스님들과는 다르게 법문이 상당히 세련되서 인상 깊었다. 한 번 찾아가야지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다. 동안거를 들어가기 직전에도 봉암사에 연락해 수좌스님을 뵐 수 있는지 여쭸지만 아쉽게도 기회가 되지 않아 뵙지 못했다. 그리고 그 해 동안거에 그렇게 입적해버리셔서 이제는 영영 뵐 수가 없게 되었다.


적명스님은 제방에서 손꼽히는 선승들 중 한 분이시다. 한 평생을 수행에만 바쳤다. 콧대 높은 선승들이 모인 봉암사에서 수좌로 추대된다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여러모로 선원 수도승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면 오를 수 없는 자리다. 몇해 전부터는 계속해서 조실로 추대하자는 요청이 있었지만 당신께서 거절하셨다고 한다. 너도 나도 조실 방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 애를 쓰는 세태에 비추어 보면 정말 보기 드문 겸양을 지니신 분이다.


적명스님이 입적하신지 얼마 되지 않아 이렇게 유고집이 나왔다. 적명스님의 일기와 법문집을 엮은 책이다. 평생을 수행에 바친 고승의 내밀한 일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드물고 또 드문 일이다. 적명스님의 일기는 1980년 때부터 2008년 때까지의 기록이다. 40세에서 70세까지의 수행 일기가 담겨져 있다. 일기를 읽는 내내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비로굴에서 십이 년 만에 비로소 자리를 옮기기로, 올겨울 결제부터는 백장암으로 옮겨 살기로 작정한 마지막 여름 결제인데 모든 게 한심하고 암담할 뿐이다. 젊은 수좌들이나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를 자신 있고 똑똑한 사람으로, 공부에도 그 오랜 경륜으로 보면 일가를 이루었을 사람으로 그렇게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강해 보인다."라는 말을 가끔 듣게 되는 이유도 그래서 그렇다 싶다.


그러나 실상은 그와 얼마나 다른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자신 없고, 처처에 상처 입고, 자기 자신을 지탱하기에도 힘겨워하는가? 지금도 가끔 자살을 생각하고, 어쩌면 머지않아 자살이나 자살 비슷한 종말을 맞게 되지 않을까 하는 비참한 생각을 하곤 한다. 나이 탓이라고 생각되는 건망증을 자주 경험하면서 또는 여타의 감각 기관의 둔화(노화)를 보면서 이렇듯 서서히 다가오는 노쇠는 결국 금생에서의 공부 성취를 불가능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오랫동안 나를 두렵게 하기도 했다.


이런 사황에서 대중처소로 간다. 실제의 내 모습과는 다른 대단한 존재로 과대 포장하고 잔뜩 기대를 하고 기다리는 숱한 젊은 눈들, 속일 수 없는 눈들 앞으로 간다. 그리고 이어 실망과 분노를 일으키고 나아가 연민과 경멸의 감정까지도 갖게 될 냉엄하고 차가운 존재들 앞으로 간다. 실로 두렵다.


공부, 갑갑해 죽겠다. 어디라고 마음 붙일 곳이 없다. 이젠 영 안되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이 일면 가장 절망스럽고 고통스럽다. 해서 알 수 있는데, 공부에서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이 바로 가장 큰 공부 성취라고 할 수 있겠다. 힘들어 죽겠는데도 예전과 비교해 보면 진보된 느낌이 드는 것은 이게 어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정말 진보처가 있는 것인지, 착각일 뿐인지.


온 세상이 나무라도 경멸하고 박해를 가해도 적명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쓰러지고 부러지고 차라리 미칠지언정 스스로 그만두지는 못할 것이다. 이루지 못할지라도, 진전이 도무지 없을지라도. -----p.101~102 <비로굴을 떠나다-1996.7.15.>


진척없는 수행, 반복되는 욕망과 망상, 감정의 질척거림. 불안한 내면의 심리들이 가감없이 기록되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견처는 얻지 못했다. 절박한 마음으로 구도심을 다그친다. 이따금 본질적 통찰들이 전광과 같이 스치지만 깨어남으로는 이어지지 못하셨는지 스님께선 계속해서 깨달음을 향해 자기 자신을 다그치고 또 다그친다.


<종용록>에 혜홍 각범의 관음찬송을 소개했다.


'내 마음 밝음이 열악함을 민망히 여기노니/ 시시로 종자가 현행을 일으키도다/ 마치 술로 인해 발광한 사람이/ 술을 끊으려는데 더 좋은 술을 만남 같도다/'


고승의 이런 게송은 충격적이라 할 내용으로 고금의 선사들에 대한 생각을, 특히 한국의 근대 선지식들에 대한 평가를 달리하게 만든다. 깨달았다 해도 그토록 심한 갈등을, 욕망의 유혹을 느낀단 말인가? 선지식들의 쉬지 못한 이런 모습은 사람의 잘못이기보다 법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법의 문턱이 사바의 수준으로는 너무 높아 있는 것이다. 설사 거친 행동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이들이라 하더라도 시시로 느끼는 내면의 갈등이야 그들이라고 어쩌겠는가? 그런 점에서 자신의 내면을 서슴없이 토로하는 각범 스님은 용기있는 선지식이라 칭찬할 만도 하다. -----p.118~119 <선지식의 공부거리-2000.1.28.>


깨달음과 화두 수행에 관한 스님의 흥미로운 고민들이 진지하게 담겨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나이 60이 되도록 공부의 견처를 제대로 얻지 못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자조하는 모습도 보인다. 너무나 솔직하고 진지한 구도일기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을 떠난 선승의 슬픈 구도일기를 읽으며 마음을 촉촉히 적시는 것으로 만족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선원에 몸 담고 있는 필자로서는 저자의 일기가 너무나 씁쓸하다. 여기 선원에서는 수행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수좌들의 고향이라 일컬어지는 봉암사에서 선승들의 우두머리로 꼽히는 수좌라는 소임을 맡으면서도 견처를 얻지 못하고 방황하는 모습이 현재 제방선원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간화선을 지도하면서도 간화선으로 당신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이 자조섞인 슬픔을 단순히 감상적으로 받아들이기엔 선원의 현실이 너무나 적나라하다. 글쎄... 알지 못하겠다. 적명스님의 일기는 2008년을 끝으로 더 이어지지 않았다. 2008년 이후 스님의 수행이 어떤 식으로 이어졌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하지만, 2008년까지의 수행 일기는 너무나 참담하다. 깨달음을 향해가는 구도자의 절박함, 처절함. 그뿐이었다. 그 이상은 없었다. 이따금 법의 그림자는 보였지만 법은 보이지 않았다.


적명스님 당신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울림과 감동을 주었다. 그것은 깨달음을 향해 묵묵히 나아간 삶의 발자취가 그 누구보다도 진지했기 때문이다. 세상은 수행에 평생을 바친 구도자의 삶을 예찬한다. 그러나, 그러나, 참선이, 깨달음이 이런 식으로 소모되어서는 안된다.


적명스님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 적명스님은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수행해오셨다. 그 진지한 구도의 삶은 쉽게 흉내내기 어려운 삶이다. 그 삶으로, 그 진지함으로 스님께선 봉암사의 수좌가 되셨고, 콧대 높은 제방 선승들의 스승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런 삶만이 구도자의 전형이며 깨달음으로 다가가는 유일한 길이게끔 여겨지는 현 선방의 세태다. 어떤 선지식은 제자들에게 "수행하다 죽어라"라고 이야기한다. 그 비장한 정신만큼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정말 수행만하다 죽는 것이 모범이 되어서는 안될 일이다. 수행을 했으면, 선원에 들어갔으면, 좌복 위에 앉았으면, 깨달아야 한다. 깨달아서, 자기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참선의, 깨달음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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