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 - 타인을 대상화하는 인간
존 M. 렉터 지음, 양미래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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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왜 잔인해지는가[타인을 대상화 하는 인간]_존M.렉터/양미래 옮김

오랜만에 각잡고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책. 인간이라는 같은 종 안에서 넬슨 만델라와 아돌프 히틀러만큼의 다른 이들이 나타나게 되었는지 의문으로 부터 시작된 내용. 대상화라는 방식으로 삶을 바라보게 되면 자신뿐 아닌 타인의 진실까지 왜곡하며 악행을 저지르게 될 수 있다고 집필자는 주장한다. 이를 위해 인간종에게 주어진 유일한 희망에는 깨달음에 있다. 모든 인류가 평화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재생 가능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으로서.

그렇다면 나는 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할까? 저자의 저서인 학문의 집약체를 정보로서 받아들일 것인가, 도덕과 합리적 사회에 대한 가치판단까지 포괄하여 규정할 수 있을까.
칸트의 사상에 따라 인간은 이성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역량 및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능력을 갖추었다고 본다면, 현대사회 속 악인이라 규정짓는 범죄자들은 이성적 사고가 부족한 지능을 가진이라 보면 되는 것일까.

대상화라는 개념을 다루면서, 이 개념이 페미니즘 철학자들 사상과 이어진다는 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 남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감시당하고 관찰당한 여자들이 결국 본인을 대상화하고 본인에 의해 대상화를 당하는 역할 모두를 맡게 된다는 것"이며 비단 남자뿐 아니라, 동료, 연인, 성별과 무관한 모든 보호자, 교사, 미디어 등은 모두 여자가 외모에 끊임없이 집착하는 행동이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현상이라는 인식을 조장하기에 여성들이 자기대상화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바트키는 언급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악'이라는 주제가 어디까지 침투해있고, 그 범주를 지정하기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번 도서는 공부하는 마음으로 다시 천천히 재독해야할 필요성이 있다고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나아렌트의 저서들이 떠오르는 것은 예견된 수순일까싶다.

✏️타인의 고통으로부터 감정적인 거리를 두는 인간의 선천적인 능력. 다름의 본질을 이해함에 있어 '대상화' 타인을 정신과 신체를 가지고 있는 주체가 아닌, 사물로 인식하고 있는 현상이라는 개념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 신성한 상태에 최대한 가까이 가닿았던 순간에는 현재라는 시간과 연결되는 아주 찰나의 경험, 겉모습이란 대부분의 경우 상당히 기만적일 수 있다는 깨달음, 수 많은 곳에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한 감사, 나의 내면과 타인의 내면이 복잡하다는 사실을 인전하는 건전한 존중, '무엇이든' 더욱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싶다는 욕망, 보다 타인의 이익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는 의지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심리학과 학부생이던 시절에 배웠던 한 격언은 "복잡한 행동에 대해서는 언제나 과잉 결정이 이루어진다"라는 것이었다. 이는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지나치게 단순한 해답을 제시하려고 하는 인간의 경향을 지적한 구절이었다. 인간의 복잡다단한 행동(우울증, 성 정체성, 정치적 신념 등)에 대한 추정은 대체로 지나친 단순화를 초래한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대상화를 악의 주된 원인으로 못박고 싶은 유혹을 경계하고자 했으며, 대상화는 하나의 영향력이 있는 요인이라고 주장하는 입장이다.

✏️이 책의 목적에 맞게 악을 '자기보호라는 목적에 비추어볼 때 불필요하고 다른 존재의 생명과 삶을 앗아가기 위해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행위이며,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사회규범에 따라 결정되는 공공 이익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 방식으로 수행한 행위(수단)'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인간은왜잔인해지는가 #존m렉터 #교유서가 #교유당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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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죽음 - 살아가면서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에 대하여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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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게 고백해보자면 '자유 죽음'이라는 정의조차 무지했던 시절, 존엄사에 대한 생각을 여러번 그리고 깊이 해본 적이 있다. 물론 죽음이라는 단어는 각종 사회, 문명, 윤리, 도덕, 신앙, 또는 종족보존과 관련된 단어들과 현시대가 끈끈하게 영유하는 한, 타협의 여지가 거의 없는 주제라고도 볼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주제를 생각해보았다는 자체로 나의 정신건강과 가치관에 대한 염려 및 검증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것이 현대사회가 여기는 죽음에 관한 일상적 관념일테다.

앞서 우선적으로 '자유 죽음'은 자살을 추구하거나 방조 혹은 지지하는 사상이 아님을 명확하게 밝혀두고 싶다. 그렇다면 '자유 죽음'은 죽음을 미화시키는 것이 아닌 것인가? 아니면 삶을 살아가기 벅찬 이들의 변명과 같은 태도는 아닐까? 그러나 자살로 규정되는 근본적 타살의 경우도 간과해서는 안되기에, 우리는 '죽음'에 보다 겸허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물론 저자 역시 그러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나는 '자유 죽음'에 대해서 논하기 전에, 과연 저자보다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또는 심도있고 처절하게 사유해본 자가 얼마나 있을까라는 의문을 접을 수 없다. 그는 자살과 관련된 사회적 현상, 심리학적 요소(자유죽음에 있어서는 이는 완전히 벗어난 문제라고 저자는 분명히 밝힌다.), 철학적 요소 및 시대적으로 자살을 택한 유명인과 일반인들의 사례들을 통해 다음 문제(자유죽음에 관한 정확한 의미)에 대해 다루기 전 염두해야 할 중요한 사실들에 대해서 명확하게 짚어낸다.

아주 간단한 사례로 우리는 삶에서 뛰어내리고자 하였던 사람들의 배경과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본적이 있었는가? 사회적으로 암시되는 자살의 이유가 아닌, 당시 뛰어내리고자 하였던 자의 내면 속의 자발적 행위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없다. 작가는 아주 간략한 사례들을 통해 그동안 자살을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할 사안처럼 여겨왔던 사회적 현상에 대해 통찰력있게 직시할 수 있도록 만든다.

창조적 정신력의 소유자(주로 철학자 및 대문호들의 예시로)들이 갑자기 생명력이 끊어지면서 아쉬움과 분노를 토하게 만든 일도 '자연스럽지' 못한 죽음이다. 근본적으로 죽음은 결코 자연스러울 수 없다. 내 죽음은 논리학과 생각 습관의 저편에 있는 것이다. 죽음이 아무리 자연적이라 한들 내 죽음은 나에게 최고로 반자연적이다. 남의 일로만 여겼던 자살이 내 인생 안으로 구체적인 모습을 띠고 들어옴으로써 죽음을 자연적인 것으로만 보았던 생각은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된다.

이제 중요한 것은 저 높은 곳에서 '존재의 욕망 덩어리' 즉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에 어디까지 저항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자살하려는 자의 일부분은 여전히 인생 논리에 죄책감을 가지고 매달려 있다. 사회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그를 다시 구출하려 들 것이라는 사실이 저명하고, 우리 또한 그것이 통용되는 인식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죽음은 '스스로 목숨을 끊음' 이라는 관점에서, 의심의 여지가 없이 문법적으로나 실제로나 적극적인 행위이다. 죽음을 향해 마지못해 나아가는 인생과 자유죽음이라는 자발적인 행위는 간단하게 우위를 나누거나 비교될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실세계에서는 그토록 허락하지 않던 그것을 뛰어내림을 통해 현실로 이루어낸 인물들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죽음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밖에 없다.

다음으로 글의 본문 중 자유 죽음에 대한 나의 시각을 변화시킨 글들, 즉 죽음에 관한 끊임없는 고찰과 사유를 해나갔던 이들의 말을 옮김으로서 마무리를 대신하고 싶다.

"삶이 탄생의 순간부터 죽어감이었던 것처럼 죽기로 각오한 당당함은 삶의 길을 열어준다."

[장아메리]
유럽 중부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는 젊은 여인이 단지 자신의 자유죽음 의도를 발설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회의 죄수복을 입고 정신병자들 사이에 섞여, 세상 물정 모르는 몇몇 멍청이의 심판을 기다려야만 했다. 일면식 없는 위원들로 이뤄진 위원회가 그녀를 풀어줘도 좋은지, 풀어준다면 언제가 적당한지, 결정을 내리는 어처구니 없는 작태를 어찌 받아들여야 할까? 죽음을 두고 그저 빙 돌려 이야기할 뿐인 이런 믿지 못할 월권이라니!
저마다 자신의 척도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모든 경험을 통틀어 문제 삼지 않는 한, 내 판단은 맞는 것으로 인정해줘야만 한다. 나는 다음과 같이 말할 자격이 있다. 너희에게는 별것 아닌 돌발 사건일 수 있다. 이를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그것은 인생의 결정적 사건이다. 너무나도 결정적인 나머지 나는 나 자신에게 죽음을 선고한다.

[니체]
"죽음이란 경멸받아 마땅한 조건 아래서 벌어진 경우에만 자유롭지 못한 죽음이다.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찾아온 죽음, 이는 겁쟁이의 죽음이다.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택한 죽음은 다르다. 아무런 사고 없이 똑똑한 의식을 가지고 택한 죽음, 이것은 자유죽음이다."

[에피쿠로스]
"죽음은 우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없으며, 죽음이 들어서자마자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장 배슐러]
"인간성과 존엄성, 자유죽음은 인간의 특권이다."
"자살은 자유와 존엄성 그리고 행복 추구권을 확실하게 증명하는 행위라는 점을 나는 사실을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자살과 관련해볼 때 문명은 그 자살자가 받아 합당한 가치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유죽음을 부끄러운 짓으로 비난하며, 심지어 이웃들은 자살자와 직접 살을 맞대고 산 주변 사람들을 못마땅한 눈초리로 흘겨본다. 교회나 국가와 같은 제도권은 공개적으로 비난하거나 다그치기를 삼간다. 하지만 여론은 자살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는 간격을 좀체 좁히려 들지 않는다. 여론에는 낡은, 의심할 여지 없이 기독교 전통에서 비롯된 금령이 시퍼렇게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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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디자인하라
유영만.박용후 지음 / 쌤앤파커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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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에 대해 한 마디로 정의하라고 한다면, 비트겐슈타인의 문장을 빌려오고 싶다.
"내 언어의 한계는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이 책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에다가 몰랐던 사실을 더해 자꾸만 나의 뼈를 때리는 듯한 얼얼한 문장으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읽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회피하는 자가 되고 싶지는 않았으니, 곱씹고 곱씹어 실천하고 실현해내는 자가 되리라.

내가 왜 닥치는대로 글을 읽어내리는 것에 빠졌는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내 독서에 잘못된 점은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짚어가면서 독서에 대한 현실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내가 애정하는 단어들을 떠올리고 생각하며 나의 삶의 핵심가치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되짚어보고, 이미 낡아 버린 단어를 포기하고 날 선 생각과 단어들을 품어보리라는 야망을 가지게 만든다. 가치롭다!

✏️저자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깨달음이 시작된다. 그것이 독서다. [장 그르니에]

✏️우리가 책을 읽는 목적은 나와 다른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의 낯선 사유체계에 접속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책을 읽을때는 의도적으로 시간을 내어 '깊이 읽어야'한다. 깊이 읽기란, 개념을 곱씹고 문장의 의미를 해석해하며 자기 나름의 생각과 주장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꼭꼭 씹어 소화하고 흡수하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줄거리는 파악할지 몰라도 내 생각을 색다르게 표현하는 능력은 생기지 않는다.

✏️독서는 읽기만 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쓰기까지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책을 다 읽고 난 다음 자신이 느낀 점을 바탕으로 독서일기나 에세이를 써보는 것이다. 쓰기를 목적으로 책을 읽는 사람은 출발부터 다르다. 쓰기라는 목적을 가진 사람은, 한 문장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다. 낯선 개념도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나에게 익숙한 개념을 저자는 어떻게 다르게 사용하는지 비교해보고, 혹여 다른 저자의 다른 주장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근거로 펼쳐지는지 확인한다.

✏️처음 만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다면 그가 사용하는 언어를 살펴보면 된다. 한 사람의 언어는 삶 속에서 숙성된 사고를 반영한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내가 쓰는 언어 이상으로 타인에 대해 생각할 수도, 세계를 다르게 보거나 느낄 수도 없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를 반추해보고 나의 체험적 느낌과 깨달음으로 재정의해보는 노력은 사고혁명의 중요한 시발점이다.

✏️유독 여러분의 심장을 뛰게 만드는 단어가 있는가? 있다면 그게 바로 여러분의 핵심가치다. 그 언어들은 나만의 언어로 재정의해서 모으면, 세상의 그 어떤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 나만의 가치사전이 된다. 이제 남은 일은 그 가치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면서 나만의 스토리를 만들어가는 것뿐이다.

✏️현명한 사람은 그저 발견되는 것보다 더 많은 기회를 스스로 만든다. [프랜시스 베이컨]

✏️타성에 젖은 식상한 언어는 너무 오래 써서 닳아지고 무뎌진 칼과 같다. 새로운 칼을 쥐면 더 수준 높은 사고를 하게 된다. 나의 사고방식에 들러붙은 문제나 한계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다른 사람의 생각에 접속해서 그가 구사하는 언어를 배우는 것뿐이다.

✏️낯선 단어는 날 선 생각을 낳는다. 벼르고 별러 골라낸 한 단어는 골머리를 앓던 생각의 물꼬를 터준다. 벼리는 과정에서(생각지도 못한) 벼르던 언어가 떠오른다. 그 순간 내 생각은 그단어에 꼭 맞게기가 막힐 정도로 정밀하게 담긴다.

✏️언제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늙어가는 생각이 낡아지지 않도록 익숙한 단어가 낯선 개념을 잉태하도록 꾸준히 벼리는 것이다. 벼리고 벼린 단어가 색다른 신념을 품고, 우리의 생각도 새로운 생각의 자손을 출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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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의 웅변
빌 프랑수아 지음, 이재형 옮김 / 레모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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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어리의 웅변_빌 프랑수아

내가 읽어 내리는 글이 교양과학인지 인문학인지, 혹은 해양생태보존과 관련된 글귀인지 그 경계가 모호했다. 그것은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는 경이로운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함께 살고 있지만 결코 쉽게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그들. 나는 하나의 '생물'로서 물고기보다는, '식품'으로 여겨지는 물고기가 더 익숙하고 편안하기에 외면해왔다. 그렇다면 그들의 삶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개체별로 살아가는 공간과 삶의 방식에 첨예하게 다르고, 그들만의 체계적인 생존방식.
때로는 종족의 번식을 위해 인간보다 더욱 희생적이거나 지혜로운 방법을 쓰는 그들의 이야기는 분명 현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
저자의 주장처럼 우리가 시간을 내어 바다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쓰는 데 동참할 수 있고, 이야기의 끝을 선택할 수 있다면 비로소 그 역할을 수행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예컨대 우리가 장소와 오래된 책, 계절, 사람들을 향으로 기억하면 그 향을 다시 맡게 될 경우 지울 수 없는 감정이 되살아나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고기의 기억은 후각과 관련된 것으로 가득하다.

✏️바닷물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해류의 관성과 대류 효과보다 물 분자의 확산 운동이 우세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작은 생명체에게 물은 덩어리로 이동하지 않고, 분자 하나하나가 무질서하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인다. 몸집이 작으면 작을수록 무질서한 움직임은 그 생명체의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커지고, 그때 물분자들의 무질서한 움직임 탓에 생명체 주변 물의 유동은 느려질 것이다. 그래서 작은 생물은 물을 거의 움직이지 않는 점착상 유체로 지각한다.

✏️물고기는 성장하면서 헤엄치는 법을 끊임없이 다시 배운다. 다시 배우는 것, 다시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어떻게 보면 인간의 숙명이라 할 만 한데,

✏️작달막한 물고기 둑중개는 산란의 성공과 부모의 생존 사이에서 교묘하게 균형을 잡음으로써 딜레마를 해결한다.

✏️심해에는 태양이 없다. 따라서 식물도 없다. 식물에게서 풍부한 영양을 얻을 수 없어서 아주 천천히 자라는 동물들이 주된 풍경을 이룬다.

✏️인간은 오늘날의 먹이사슬에서 어떤 위치고 차지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이상 직접 먹이를 잡지 않으며, 심지어 음식을 음식이 아닌 다른 형태로는 인식하지 못한다. 먹고 있는 생물의 존재마저 서서히 잊어버린다.

✏️인간의 기술이 바다 생물의 기술을 모방해 발달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도 그들의 생존 원칙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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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 수업 - 인류의 성장 열망이 이끌어낸 열 가지 핵심 주제
안나 카타리나 샤프너 지음, 윤희기 옮김 / 디플롯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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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보다 나은 존재가 될 가능성을 믿은 인류의 역사, 그것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도 동일했던 것 같다. 그의 내적 갈등 중 폭소하게 만든 장면을 소개하고 싶다. "저에게 정결과 절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그러나 아직은 아닙니다." 역시 인간의 정신적 불안과 내면의 갈등, 욕망은 세대를 초월하는 주제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인간미까지 더해진 '자기계발수업'이 마음에 든다.

언제나 더 나은 존재가 되고 싶다. 그래서 '성장'과 '역량'이라는 단어를 참 좋아한다. 그래서 책을 통해 배움을 넓혀가고자 하는 의도 또한 있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사회적 성공에 국한된 이야기는 거부감이 든다. 보다 삶에 대한 성찰을 다루고, 생각의 기회를 남겨주는 책. 거기에 다정함도 한 스푼 들어간다면 더 없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책장 속에 쏙 넣어둔 후, 배움이 필요할 때마다 다시 꺼내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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