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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너에게 가면
설재인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내가 너에게 가면_설재인
한국문학의 이런 점이 참 설레이고 좋다. 큰 사건사고 없이 흘러가지만, 고만고만한 위로를 전달해주는 인물들이 있는 따숩고 자연스러운 글(그런데 이제 재미까지 곁들인)🌿 그런 점에서 처음만난 설재인작가님의 장편소설은 취향을 저격당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장편소설이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저력이 느껴져, 금세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자 아쉬운점이다. 아까운 페이지들:) 장서가라 생각하기에 모두 읽은 후, 책장에 남기는 책들이 많지는 않은데 그 중 하나의 책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나의 할머니가 떠올라 울컥하기도 하고, 킥킥 소리가 나는 글맛도 참 좋았던 작품.
무해하고 따뜻한 것들이 모여, 상처를 돌보고 앞으로 나아가는 이 책이 참 마음에 든다:)
✏️성주가 사랑하는 건 그냥 평범한 공주가 아니라 '이기는 센 공주'였다. 드레스를 벗어던진 채 공룡들 사이에서 투구 쓰고 헤딩하던 축구 천재나 힘이 장사여서 남자애들을 마구 집어던지던 여고생 전사.
✏️그 친절과 다정, 열정과 공평함이 상처에서 나온 거라는 사실을 성주 자신도 전혀 몰랐다. (...) 실수하지 않고, 기분에 따라 행동하는 어른이 되어 어리고 약한 아이들을 헷갈리게 하지 않고, 종옥처럼, 종옥이 해줬던 걸 물려주는 것처럼 그렇게 일하겠다고.
✏️속도가 빠르고 발음을 뭉개는 항만군의 한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부모들에게 핸드폰의 글이 얼마나 필요한지 항만군 토박이인 인봉은 잘 실감하지 못할 터였다. 변역기를 돌려 모국어로 다시 빚은 글을 통해 더듬더듬 자기 자식의 하루를 되짚은 부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러나 정작 보는 사람은 그 글러브의 안쪽이 얼마나 헐었는지, 보호받지 못하는 손이 얼마나 아플지 알지 못한다. 직접 사용하는 사람만이 느낄 뿐이다.
✏️내가 남에게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어. 도연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하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밀가루 반죽하고 굽는 거, 몇 시간, 혹은 며칠 동안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든 결과물을 주인공의 입에 넣어주는 것.
✏️사랑의 크기가 어찌되었든 받는 이에게는 자신이 딱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게 참 재미있으면서도 야속한 세상의 작동원리였다.
✏️종옥에게 한탄해봤자 뭐가 달리지겠는가. 남 상처 한 번 안 입히고 퍼주기만 하며 산 양반을 앉혀놓고 세상의 잔인함을 토로해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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