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優勝 열패劣敗의 신화 - 사회진화론과 한국 민족주의 담론의 역사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그동안 박노자가 내놓았던 칼럼, 에세이 위주의 책이 아니라 1800년대 후반 ~1900년에 불어닥친 사회진화론과 민족주의의 관계를 밝히는 학술서다.
그러므로 그저 읽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야 하는 내용이다.

우리는 현재 민족주의를 벗어나야 하는가 아님 제국주의의 틈바구니에서 이 퇴색한 사조를 붙들고 있어야 하는가 기로에 서있다. 게다가 민족주의의 근원으로 저자가 밝히고 있는 사회진화론은 지금의 미친 경쟁사회에 대한 책임까지 지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이다.
유길준, 윤치호, 량치차오, 가토 히로유키, 이승만, 서재필, 안창호 등 한말 엘리트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왜... 사회진화론이 우리에게 먹혀들었는가.
그 원인말이다. 

 

저자는 사회진화론을 한국에 처음으로 들여온 유길준과 윤치호의 영향력보다는 일본과 청나라의 학자들에 의해 당시 엘리트들에게 '상식'이 될 사상으로 굳어졌다고 보면서 이렇게 기술한다.

"사회진화론에 대한, 사회적 영향력이 큰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소개는 결국 유길준이나 윤치호 등 '힘 숭배의 선각자'에 의해 이루어졌다기보다 1900년대(특히 1904년 이후)에 주로 량치차오의 글과 가토 히로유키, 또는 그와 유사한 부류의 일본 논객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즉, 거시적인 안목으로 볼 때 개화기의 조선에 들어온 사회진화론은 역시 가토 등이 '국가화'.'집단화'하고 량치차오가 유교적인 수사로 장식한, '동아시아화'한 변종이라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1900년대 이전에 사회진화론의 원류를 수입한 친미개화파 세력이 그들의 세계관을 조선 지식인들에게 알릴 기회를 전혀 못 가진 것은 아니었다. '독립신문'에는 단편적인 논설의 형태로나마 '생존을 다투는 문명세계'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

 

기독교가 민족주의에 투입되어 어떻게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
"한국의 초기 민족주의자들이 종교를 '자강'의 도구로 삼은 배경에는 '자강'과 '생존'을 절대시하는 그들의 사회진화론적 신념이 작용하기도 했지만, 유교를 야만시하고 기독교를 '문명'과 동일시하는 구미 선교사들의 태도에서 받은 영향이 자리잡고 있었다."

 

박노자는 다원주의적 태도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끝을 맺는다.
"끝없이 다양할 수 잇는 과거에 대한 집단적인 기억의 중심에 국가의 발전과 민족의 생존을 배치하는 획일적인 서술의 틀과, 거기에서 발생하는 온갖 도그마들이 역사 서술을 지배하는 한, 같은 도그마를 신봉하지 않는 타자들과의 열린 대화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역사학계에서 차이의 인정과 생산적 대화의 민주적 분위기가 무르익어야 학계의 소식이 일반인들의 관심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다원화와 동등한 대화야말로 21세기 사학계가 나아가야 할 길인 것이다."
이 말을 보면 알수 있듯이 이 책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박노자 학문의 개진 즉 사학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위해 쓰여진 것이다. 나같은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고 위로를 해본다.

 

저자가 애정을 가진 민족주의자는 한용운이 거의 유일하다. 게다가 만해는 그 시대 '상식'이었던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이지 않고 평화주의로 일관한 거의 유일한 독립운동가다.
"한용운의 항일사상은 폭력, 살생을 거부하는 불교의 기본 정신에 확고한 기반을 두고 있었다. 일본에 대해 무조건적인 적개심을 가졌다기보다는 일본 제국주의의 악행을 부정하고 거부했던 것이다."

 

"비록 한 시대의 사회진화론적 사상 주류를 바꾸지는 못했지만, '불교'와 '비폭력', '사회주의'라는 다리로 약육강식의 언덕에서 평등, 자유를 위한 실천의 언덕으로 건너간 한용운의 사례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경쟁'과 '생존투쟁'이 비록 시대정신이 되었지만, 개인이 꼭 시대에 끌려다니는 것만은 아니다."

 

그렇지만 난 개화기 엘리트 중 개인적으로 빅토리아 신사 서재필이나, 우리의 인종주의적 한계에 괴로워했던 윤치호보다는 유교 사상과 사회개화론 사이에서 방황하며 조선 민족의 살길을 모색했던 유길준에게 애정이 간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책은 처음에 이렇게 시작한다.
"우리는 모두 노예다."

그 결론이 무엇이든 경쟁사회에서 평화, 안정, 자유를 추구하지 못하는 한 지금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그저 열심히 일만하고 앞만 보고 사는 한 우리는, 여전히, 노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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