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연애소설의 봇물 속에서 희귀한 소설 하나를 읽었다. 바로 이책 ‘왜 나는 너를 사랑할까’다. 나오는 작품마다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읽는 작가 김영하의 찬사도 그 책을 읽기 시작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영국판 원제는 Essays In Love이고, 철학도인 저자가 25살 때 쓴 처녀작이라 한다.
작품은 매우 지적이고, 유치하며, 섬세하고, 재미있다.

12월의 어느날 파리발 런던행 비행기에서 만난 클로이라는 여성을 만나 사랑을 느끼고, 구애하고,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 자체는 기존 의 로맨스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1인칭 서술사의 사유가 깊고 재미있다. 사랑하는 여자의 벌어진 치아의 배열을 ‘칸트적 치아’로 명명하데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곳곳에서 꽤 까다로운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주인공들이 벌이는 사건과 대화보다 1인칭 서술자의 지적이고 때로 변덕스러운 서술 방식이 우리의 영혼과 마음, 가슴 곳곳에서 울리는 소리를 잘 잡아낸 듯 섬세하고 촘촘하다. 그리고... 정말 재미있다.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짜증을 내지 않고 끝까지 다 읽은 것은 내 인생에서 처음 있는 일이며 나름대로 철학(과 심리학)에 대한 흥미까지 생겼다.

비행기 옆자리에 앉은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고(낭만적 운명론) 전화를 해 그이를 만나면서 주인공은 상대방이 원하는 이상형에 맞추기 위해 미친 듯이 외적 자아를 수정하기도 하고, 결국 잠자리를 함께하고 여자의 사랑을 얻은 직후 “나같은 불한당 같은 놈을 사랑한다니”하면서 갑자기 변덕을 부리기도 한다.(마르크스주의) 사소한 말다툼 속에서 사랑은 커져가고 사랑하는 상대방이 자기의 자아를 비추는 거울로 생각이 들만큼 둘은 가까워진다. 어느 순간부터 내 사랑하는 천사가 애정을 가식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되돌리기 위한 노력을 감행한다.(낭만적 테러리즘) 바로 질투심 유발, 삐치기, 죄책감주기 등이다. 테러는 성공했지만 그에 대한 응답은 허무한 것이어서 이 둘은 1주년이 되는 날 파리발 런던행 비행기 안에서 요란스럽게 헤어지게 된다. 여자는 남자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유로 자신을 비도덕적이라고 규정해버리지만, 남자는 사유를 통해 그것은 칸트의 생각에서 보면 도덕과 비도덕으로 나눌 수 없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자가 일방적으로 떠나버린 데 대한 충격으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살을 감행한다. 다행히 수면제가 아닌 비타민만 한웅큼 털어넣고 크리스마스에 홀로 한적한 호텔방에서 하찮은 남자에게 가버린 가엽은 여자에 대한 연민을 느낀다.(예수 콤플렉스) 그리고 사랑에 대한 허무를 느끼며 유령처럼 살아가다 한 디너 파티에서 아름다운 레이첼을 만다 다시 빠져들어간다.

본격적으로 사랑이 한 사람에게 어떤 감정과 변화와 의미가 있는지 남녀간의 사랑이란 영원할 수는 없다는 전제아래, 사랑이 생의 한 순간 빛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고 있다.

연애중일때 가끔 여자가 전 남자친구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때 남자는 가끔 “나도 전남자친구가 될까?”라는 불안감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런 때문에 다소간의 가식이 수반되더라도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만들어 현재의 사랑을 영원하게 만들려고 하나보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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