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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테
박범신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세상이 화안...해요"
이 말이 "세상이 캄캄해요."로 단호하게 바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땅에서 여성, 장애인, 동성애자보다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피부빛 짙은 이주 노동자들이다. 백인들은 피부색과 영어를 한다는 이유로 호의적인 대우를 받지만 피부색 짙은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먼 얘기일 뿐이다.
노동인권을 다룬 한국법은 단지 한국 노동자에게만 해당될 뿐이다.
그들의 표현대로 "우리... 사람 아네요...", 그런 대우를 받는 곳이 이곳 한국에서 그들의 삶이다.
이 소설에서는 현실적이어서 더 슬픈 생계, 삶, 고통, 사랑 이야기가 오롯하게 담기어 있다.
미국에서 십대를 보내면서 무국적인 삶을 살았던 선우는 LA 흑인 폭동을 겪으면서 백인 사회에서의 차별을 뼈져지게 겪고 돌아온 서른살 이혼녀다.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떠난 가족들은 아버지와 막내형제를 잃고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와 이십대 전반을 둘째 오빠 공장에서, 이십대 후반을 동대문 옷가게에서 보낸다.
친구도 동료도 없다.
짧은 결혼생활이 준 상처도 적지 않아 삶을 유폐시키며 그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네팔인 카밀.
사랑하는 여인을 찾으러 한국으로 들어왔다가 온갖 시련을 겪으면서도 "나마스테"를 합장하던 스물 다섯의 청년.
이 둘이 만나 사랑하는 이야기가 이야기의 한 축이다.
선우는 카밀을 만나면서 마치 구원받은 듯이 사랑의 묘약을 삼킨다. 그래, 어떤이에게는 사랑이 부활이구나.
또 한축인 이주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 우리 사회의 부끄럽고 치욕스런 편견이 빚어내는 차별 그리고 그들의 외롭고 고통스러운 투쟁과 죽음.
그리고 조국과 가족 이라는 또 하나의 한계에 대해서도 치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내 안의 모순과 싸우는 일은 그래서 힘들다.
책을 읽다 잠든 여러 밤에 카밀과 사비나와 선우를 꿈꿨다.
미몽간에 불타고 있는 몸뚱이를 보았다.
작가는 이주 노동자가 한명 한명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선우가 아이를 업고 농성장을 드나들때, 병들고 지친 그들에게 쉴만한 곳으로 자기 집을 기꺼이 내 놓을 때 사랑의 부활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네팔 불교에 대한 알 수 없는 '향수'와 성찰은 책장 가득히 배어 있어 취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다.
주인공 선우가 그랬듯이 마치 내 고향인 듯한 그 고즈넉하고 따사로운 카밀의 고향에 나도 가고 싶었다.
카밀을 보호할 사람이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힘을 내어 몸을 챙기는 선우를 볼 때 내가 나보다 약한 자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진정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이르고는 마음을 다잡았다.
사랑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은 때문에, 소설에서 그들의 딸 애린(네팔 이름 마야)은 아버지의 고향 카일라스를 찾지만 과연 그들의 카르마는 끝난 것일까.
그들의 노동이 필요하면서도 그저 기계처럼 부리고 편한대로 버리려는 정부와 그 정부를 알게 모르게 뒷받침하고 있는 편견들. 그것에 대한 통렬한 성찰과 반성 그리고 변화가 없을 때 우리는 캄캄한 세상을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작가의 말대로 성냄과 욕망과 무지는 삶의 세가지 독약이다.
책이 주는 것은 그저 감상 뿐이 아니라 의식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참 좋은 소설이다.